죽다 살아난 그, 이젠 아프리카 돕겠답니다

<우리의학 이야기> 증보판 낸 국제NGO 생명누리 대표 정호진씨

등록 2013.08.14 17:31수정 2013.08.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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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NGO생명누리 대표이자 목사인 정호진씨가 자신의 몸을 치유하고 수많은 환자들을 돌봤던 경험을 살려 <우리의학 이야기>책을 출판했다 ⓒ 오문수


오늘날 지구상 인류의 1/5은 굶주림으로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또 다른 1/5은 과식에 의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연간 의료비 70조 원을 쓰고도 600만 명의 당뇨병을 비롯한 5대 법정만성질환(암·고혈압·심장병·뇌졸중·관절염)으로 인해 평생 약 먹을 고민에 빠져있는 게 한국의 '오늘'이다.

정부는 '국민들 스스로의 치유 행위는 위험하다'는 판단으로 1962년 이후 지금까지 약 10만 명의 제도권 의료인들에게만 의료행위를 맡겨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법은 '국민이 하늘'이라는 전제와 천부적 건강행위를 국법보다 상위개념으로 여겨야 한다는 유엔인권위원회·세계보건기구의 정신에 어긋난다.


조선대 보건대학원 대체의학과 전홍준 교수는 "오늘날 병원이란 병만 고치는 곳이 아니라 외모나 피부를 관리해주고 노화를 예방하는 일도 하는 곳"이라며 "이제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생로병사의 많은 일들이 병원이 담당하는 생활의 의료화 시대가 돼 버렸다"고 개탄했다.

"오늘날 환자들의 7~80%는 식생활과 라이프스타일만 바꾸면 더 이상 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홍준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책이 있다. 8월 중순 증보판으로 다시 나온 <우리의학 이야기>가 바로 그것. 이 책은 국제NGO 생명누리 정호진 대표가 직접 썼다.

약자와 소외된 자 편에 선 정호진

경남 합천 출신인 정호진 대표는 한신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한신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는 연세대·서강대·성공회대 등에서 10년간 성서학과 생명농업을 강의했다. 거창과 합천에서 10년간 직접 생명농업을 실천하며 마을공동체 활동 및 생명농업 실천 모임을 결성하고 전국에서 100여 차례 '우리의학강좌'를 열었다.

이후 국제NGO 생명누리를 창립해 인도에서 10년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는 불가촉천민들의 빈곤 퇴치와 문맹 퇴치 및 자립을 위한 생명농업 순회 강좌, 지하수 개발사업, 행복한 마을공동체 만들기, 에이즈 퇴치운동 및 에이즈 아동센터 운영 등을 하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팔·중국·라오스 등 아시아 여러 나라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지구촌 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경북 문경에서 대안학교인 샨티학교(중·고 통합형 6년 과정)를 운영하는 그는 한국의 탈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지구촌 인디고 여행학교는 청소년들이 인도와 네팔·동남아·중국 등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현지 학생들과 사귀고 세계의 문제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움직이는 학교 프로그램이다.

자신의 치유 경험이 오롯이 담겨있어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이농 대열에 합류해 합천을 떠나 서울 변두리로 이주한 정호진 대표는 공사장 노동자·신문배달·야채장사·군밤장사·외판원 생활을 했기에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어렵게 사는 중에도 그가 희망을 버리지 않은 건 명문대 합격의 꿈이었다. 그러나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검정고시로만 공부했던 그에게 명문대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명문대 대신 택했던 한신대는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대학시절부터 몸에서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젊었는데도 만성피로가 따라다녔고 신경통과 관절염 증세도 보였다. 때로는 뒷머리에 피가 전달되지 못해 멍하게 보내는 경우도 생겼다. 워낙 가난해 잠자리가 없자 한겨울에도 신문보급소 사무실 책상위에서 자며 끼니를 굶었으니 온몸이 골병이 들었던 것.

대학 3학년 때 요가 지도자를 만나 요가를 하는 동안 호흡과 명상법 그리고 단식과 식사법 등을 제대로 배웠다. 7일간의 단식으로 만성위염과 만성피로도 사라지고 신경통도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군대가 문제였다. 워낙 부실했던 몸이 10km 완전 군장 구보와 힘든 훈련을 하니 견뎌낼 수 없었던 것. 명사수였던 눈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고 관절염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

군대를 전역한 뒤 복학, 이후 단식을 하면서 일본인이 쓴 니시(서식) 건강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간단한 운동과 음식을 끊는 단식과 바르게 먹는 방법과 관련된 니시 건강법은 일종의 일본식 요가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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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진 대표가 쓴 책 <우리의학 이야기> ⓒ 오문수


대학 졸업 후 마산에서 개척교회 목회를 하다 한신대 박사과정에 들어간 그는 공부를 이어가면서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나 책과 씨름해야할 시간은 많아지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 주에 3일은 강의로, 4일은 세미나로 버텨야 하는데 입안은 늘 헐어있어서 말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또한 신경은 항상 곤두서 있어서 신경질을 잘 내고, 인내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관절염은 더 심해져 류머티스성으로 발전했고, 오른쪽 무릎부터 왼 무릎·양 발목·팔꿈치·손목·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세브란스 병원 진료실과 물리치료실도 찾아봤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고.

그러는 동안 아는 침술사를 찾아가 침도 맞고 부항도 받고 뜸 치료를 받게 됐다. 그중 가장 효과를 본 것이 우리의학의 하나인 부항과 뜸이었다. 1980년대 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면서 농민들의 생활터전이 붕괴되자 농촌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기기로 작정한 그는 연세대학교 민주동문회사무실에서 당시 유행하던 수지침과 침뜸·부항을 배웠다.

서울을 떠나 거창읍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병원에 가기 힘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손침과 침뜸·부항치료를 시작했고 명의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거창지역 농촌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잘 알지 못한다"며 수차례 손사래를 쳤지만 소용없었다. 이때부터 전국으로 다니며 100여 차례 강의를 한 자료를 모으고 연구한 책이 그의 <우리의학 이야기>다.

정호진 대표는 동양의학만 공부한 게 아니다. 의사 친구로부터 서양의학 책을 빌려 인체해부학·생리학·병리학·약물학·공중위생·예방의학 등을 공부했다. 그는 서양의학을 공부하며 우리 의학과의 차이는 무엇이며 서로 도울 길은 무엇인가를 알게됐다.

소의(작은 의술을 베푸는 자)는 몸을 고치고, 중의(중간 정도의 의술을 베푸는 자)는 마음까지 고치고, 대의(큰 의술을 베푸는 자)는 병든 사회를 고친다고 했다. 지구촌 가난한 나라를 찾아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한 마을개발 운동을 실천해오던 정호진 대표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아우르는 대안의학을 표방하고 우리의학 대학원과정(비인가)을 개설했다.

그의 책 <우리의학 이야기> 출판기념회는 9월 5일 오후 6시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정호진 대표의 출판기념회를 통해 기부되는 후원 수익금은 아프리카 말라위의 가난한 마을 아이들을 위한 데이케어센터에 지원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다음 블로그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우리의학 이야기

정호진 지음,
생명누리, 2013


#정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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