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 기자와 남편 더스틴
이수지
- 한국에서 외국인과 결혼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희 둘이 결혼하자, 해서 결혼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고요(그냥 손잡고 구청 가서 혼인신고하면 되니까). 많이들 궁금해하는 부모님의 반대는 강하지 않았어요. (남편이)미국인이니까 제가 미국으로 떠나 버릴까 봐 걱정하시는 건 있었는데, 제가 워낙 옛날부터 제멋대로인 애였으니까 처음부터 말린다고 말려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셨던 것 같아요.
어려운 게 있다면 가끔 맞닥뜨리는 어이없는 차별 같은 건데... 치킨집에서 치맥을 먹고 남편 카드를 주니까 외국인 카드를 안 받는다고 한다거나, 차를 빌리려고 하니까 외국인이어서 안 된다고 하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한 번은 술 취한 아저씨가 제가 남편이랑 같이 있는걸 보고는 "그럴 거면 미국으로 가!"라고 소리를 버럭 지른 적도 있고요, 남편이 집에 와서는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자기한테 그랬다면서, "수지, '양키 나가 죽어라'가 무슨 말이야?"라고 물은 적도 있어요. 근데 뭐 그런 분들은 매우 극소수이고요, 좋은 분들이 훨씬 많죠 ^^"
- 남편은 어떤 점에 끌려 한국에 정착하게 된 건가요?"사실 어떤 점에 끌렸다기보단 제가 여기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하하. 그래도 여기 사는 거 좋아해요. 사람들도 흥미롭고 음식도 맛있고, 문화적 즐길 거리도 많고. 근데 한국에서 살기로 '결정'했다기보단 둘 다 마음이 아직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상태예요. 내년에는 또 몰라요. 어디에 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지..."
- 남편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그림 솜씨도 수준급이시던데^^"영어 가르치는 일로 돈을 벌고 있어요. 그 외에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을 많이 하죠. ㅋㅋ 예술적 소질이 있어서 그림 그리는 것도 즐기고, 영화 보는 거, 영화 시나리오 쓰는 거, 요리하는 거, 그냥 누워서 머릿속으로 공상하는 거, 개그 치는 거, 저 붙잡고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 이야기하는 거. 뭐 그런 일 하는 사람?"
- 기사에 대한 남편의 반응도 궁금합니다."방금 물어보니까, '구글이 번역을 제대로 안 해줘서 별로야'라고 하네요. 끙. ㅋㅋ"
- 연재명에 '불량한 부부'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어요. 무슨 이유로 스스로를 '불량한'이라고 표현하신 건지요. "기준에서 탈피했다는 걸 불량하다고 표현해봤어요.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기준 같은 게 있는데. 학벌, 재산, 부모의 능력, 나이, 이혼력, 뭐 이런 것들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일렬로 세우잖아요. 저는 그냥 불량스럽게 탈피한 거죠. 더스틴은 더 그렇고요. 기준과 목표 자체가 없는 두 명이 하는 목적 없는 여행이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지었어요."
- 9개월여의 여행,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텐데요. 여행 후 인생의 목표 등이 달라지진 않았나요?"인생의 목표가 달라졌다기보단, 인생의 목표가 없어졌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여행에서 돌아와서 몇 달 후, 우연히 양희은님의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이라는 노래를 들었어요. 어렸을 때도 라디오에서 종종 듣던 노래인데, 어렸을 때는 그 노래가 왠지 무섭고, 가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거든요. 나는 지금 이렇게 목표를 찾고,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오르고, 노력하고 있는데. 더 큰 산이 있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니...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그 노래를 들었을 때는, 온 몸에 전율이 오를 정도로 공감되더라고요. 아무것도 아닌 봉우리를, 그게 전부인 양 주위의 것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올랐었는데. 양희은님의 가사처럼 그건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거 같아요. 여행을 통해서도, 어떤 목적을 이뤘다는 느낌은 전혀 없는데, 여행을 하면서 생고생한 경험, 만난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들, 그런 일련의 과정들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인생도 어떤 목표보다는, 주위의 사람들, 스치는 풍경, 뭐 그런 걸 순간순간 만끽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지금의 목표는, 목표 없이 오늘을 만끽하는 거예요."
- 여행하는 동안 소소하게 말고 크게 싸운 적도 있나요? 이유는요? 또 싸웠을 때 어떻게 푸는 편인가요."엄청나게 많죠. 근데 웃기는 건, 싸운 적은 많고, 싸운 것도 기억이 생생한데 도대체 왜 싸웠는지 그 싸움의 시초를 기억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냥 시답잖은 일이 시초가 돼서 이해를 못하는 서로가 답답해서 폭발하고 뭐 그러는 거 같아요. 저희는 싸웠을 때 하루 이틀 토라져 있다가 다음날 마음이 누그러져서 화해하고 이런 건 절대 없고요. 싸워서 감정이 폭발한 그 때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이상한 성격이라서... 감정이 수습이 안 돼서 싸움이 더 오래가고 이런 단점은 있는데 어쨌든 그날 싸운 건 그날 풀긴해요.
대화했다가 언성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가, 다시 대화했다가 하다보면 결국에는 어떤 선에서 서로가 만나고 풀어지게 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여행 때 계속 붙어 다니니까 더 많이 싸우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덜 싸웠어요. 그게 여행 때문인지, 서로에 대응하는 법을 좀 깨우쳐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남편 더스틴과 꼭 백두대간 종주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