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 이미지는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전집>에 실린 것임을 밝힙니다.
민음사
김수영 선생님, 글머리에 이례적으로 '동시'(童時)라는 갈래명이 적혀 있는 작품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를 읽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작품들 중에서 동시는 1959년에 지어진 <자장가>와 이 작품이 전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견줘 보았더니 흥미로운 차이가 보입니다.
<자장가>는 1958년에 태어난 선생님의 둘째 아들 '우'를 바라보며 지은 작품이지요. 제게는 이 작품에서 "아가야 아가야 / 열 발가락이 다 나와 있네 / 엄마가 만들어준 빨간 양말에서"(1연)가 참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열 발가락이 다 나와 있"는 양말을 신은 아기의 귀여운 모습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선생님의 모습이 참 정겹게 그려졌습니다. 그 광경을 평안한 느낌의 연두색으로 칠하면 잘 어울리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는 작품의 색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짐작컨대, 이 시는 '아리조나 카보이' 같은 영웅의 활약상을 펼치는 서부 활극 영화에서 그 모티프를 따왔겠지요.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입니다. 광막한 선인장 사막을 무대로 활약하는, 구릿빛으로 검게 탄 강렬한 얼굴을 자랑하는 사내일 게 분명합니다.
그런 '나'는 '키크' '쨔키' '쬰' '메리' '쨈보' 등의 부하 무리를 이끌고 악인들('이성망' '홍찐구' 등)을 다스리려 합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이 작품이 '동시'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정말 놀랍더군요. '나'는 악인들을 향해 "빵! 빵! 빵!"(1연 2행) 하고 총을 쏘며, "그놈들을 물에다 거꾸로 박아놓"(3연 4행)는 형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점잖지' 않습니다. 대신 폭력적인 힘이 폭발하듯 분출합니다. 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강렬한 긴장감이 연상되는 빨강을 떠올리는 까닭입니다.
이는 아마도 온갖 부정과 비리와 폭력을 저지른 '이성망' 무리 때문이겠지요. 그들은 "돈보따리를 들고 달아나는"(1연 6행) 도둑들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우리 형님들"(2연 4행)을 죽게 만든 살인자입니다. "정동 재판소에서"(3연 3행) 재판을 받다가 도주한 것처럼 그려진 "홍찐구 놈"(3연 2행) 역시 엄청난 범죄 혐의를 갖고 있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개미구멍으로 다 들어가"(4연 2행) 평생 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죄인들입니다.
오욕의 역사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선생님, 작품속의 '이성망'은 자유당 정권의 독재자 이승만이겠지요. 그 '부하들'이 이승만의 권세를 등에 업고 온갖 행악을 일삼은 관료 모리배들이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제 눈길을 가장 강하게 잡아당긴 인물은 '홍찐구'였습니다.
'홍찐구'. 이 인물의 실제 모델은 아마도 홍진기(1917~1986)가 아닐까 합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한 후 1942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전형적인 친일 관료 출신 인사였습니다. 그가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배경이지요.
홍진기의 가계(家系)를 보면 모두들 금방 '아!' 하고 감탄사를 쏟아낼 것 같습니다. 홍진기의 장녀는 이건희 삼성회장의 아내인 홍라희씨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건희 삼성회장이 그의 사위라는 얘깁니다. 그의 장남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입니다. 그의 또 다른 아들들과 손자·손녀 상당수가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 홍진기가 어찌하여 '홍찐구'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조롱을 받고 있을까요. 홍진기는 이승만 독재 정권의 말기에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보냈습니다. 특히 그는 이승만의 충복으로 3·15 부정선거를 진두 지휘한 최인규 장관의 후임으로 내무부를 통솔했습니다. 4·19 혁명 당시 내무장관이 바로 홍진기였습니다.
홍진기는 4·19 혁명을 그 배후에 있는 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그는 4·19 혁명기에 학생과 시민에게 발포를 명령한 책임자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이 혐의로 기소된 그는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그를 징역 9개월형으로 감경해줍니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 정국에서 다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항소심에서 무기형으로 감형되고 이어 특사로 풀려납니다. 그 뒤 그는 이병철 전 삼성회장과 사돈을 맺고 언론계에 투신합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너 이놈 정동 재판소에서 언제 달아나왔느냐 깟땜!"(3연 3행)이라고 질책합니다. 이는 아마도 사형 구형을 받은 그가 징역형으로 대폭 감형된 상황을 빗댄 것이 아닐는지요. 폭력의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선생님께서 이 시에서 폭력을 생생하게 연출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으리라 봅니다. 폭력적인 방식 혹은 혁명적인 방식을 쓰지 않았을 때, 역사의 중죄인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법망을 빠져나갑니다.
선생님, 그러고 보면 이 시는 '동시'가 아니라 '격문'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역사의 죄인들은 철두철미하게 단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절박한 목소리가 작품에 담겨 있지 않는지요. 그것은 4·19 혁명으로 만들어진 피의 제단 앞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육법전서와 혁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