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어렵다고 아이 밥그릇부터 빼앗는 나라

[주장] 무상급식은 공짜밥이 아니라 '두레밥'이다

등록 2013.08.24 16:13수정 2013.08.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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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기도지사(왼쪽에서 두 번째). 1월 25일 6인조 걸그룹 달샤벳과 함께 경기도 오산의 어려운 이웃 가정을 방문했다. ⓒ 해피페이스 엔터


경기도가 무상급식 예산 860억원을 죄다 깎는다니까 기다렸다는 듯 인천시와 경상남도도 내년부터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던 계획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뒤이어 경상북도와 대구시도 무상급식 대상을 더는 늘리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금은 무상급식이 좋다 나쁘다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실시할 돈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고.

다들 세수 부족으로 지자체 살림이 어려운 까닭에 아이들 밥값을 깎았다는 말인데 뒷말을 들어보면 꼭 그래야 했을까 싶다. 경기도는 수원 광교 신청사 옆에다가 1420억 원을 들여 문화공연장을 검토하고 있고, 이틀 동안 113억 원이 드는 '경기국제보트쇼'도 도지사 역점사업으로 2008년부터 해왔다.

인천시는 중학교 무상급식을 하려면 200억 원쯤이 든다고 했다지만 21일 감사원 발표를 들어보면 그도 아닌 듯싶다. 인천시는 2014 아시아경기대회를 준비하면서 필수 시설이 아닌 시설을 짓거나 이미 있는 시설을 두고 새로 짓는 바람에 1770억 원 넘는 돈을 헛되이 썼다고 한다. 들리는 말로는 아시아경기대회에만 모두 2조29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아이들 밥그릇은 빼앗으면서 지역 발전을 빌미로 이런저런 행사를 열거나 국제대회를 유치하면서 대책없이 판을 키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런 허튼 데 들어가는 돈만 줄여도 아이들 눈치 안 보고 밥 먹게 할 수 있다.

무상급식 예산 깎으면서 행사·건축 예산은 '펑펑'

학교에서 밥은 '인권'이고 '평화'다. 잘사는 집 못사는 집, 잘난 아이 못난 아이 가리지 않고 정성을 다해 지은 밥을 한데 모여 먹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 먹는 것으로 차별받은 일은 두고두고 마음에 상처가 오래 깊이 남는다.

지금도 무상급식을 '공짜밥'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 하지만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밥이 어찌 공짜인가. 공짜밥 하면 덜어주는 사람이 따로 있고 얻어먹는 사람이 따로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마련한 밥이다. 십시일반으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은 '두레밥'이다.


아닌 말로 아이들 밥값은 아깝고 허튼 데 쓰는 것이라며 나무라는 사람들이 22조 원이나 쏟아부은 4대강사업이나 2조2500억 원이나 들인 아라뱃길사업 같은, 어마어마한 세금을 들여 사람이고 나무고 풀이고 뭇짐승이고 삶의 터전을 마구 짓밟는 일들에는 어째 귀를 틀어막고 몰라라 입을 꾹 다무는가.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한 해에 1억4천만 원 가까운 세비를 받으면서 댓글 범죄를 두둔하고 얼토당토않는 말로 방패막이 노릇을 일삼는 저들한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아이들 밥그릇을 빼앗지 말자. 누가 뭐라고 해도 보편 복지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분배 원칙이 정직하게 지켜져 보편 복지가 확대되기만 하면 누구라도 세금이 느는 데 싫은 소리 내지 않을 것이다. 많이 버는 사람은 좀 더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조금 덜 내게 하자. 아이들 밥그릇을 지키는 일은 아이들 뒷날을 든든하게 지키는 일이면서 이 나라 살 길을 열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무상급식 #보편 복지 #경기도지사 #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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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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