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 반면교사"... 그렇게 잘못된 말일까?

[게릴라칼럼] '금도' 언급은 어불성설... 3·15 부정선거와 워터게이트의 진짜 교훈

등록 2013.08.26 20:20수정 2013.08.2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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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태(鬼胎)' 발언에 이어서 또 설화사건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꼬리 잡기'다. 사건의 발단은 국정원 대선 개입 국정조사 위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한 서한에서 "3·15부정선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한 것을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대선불복이라며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3·15 부정선거 발언, 정쟁거리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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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야당 위원들이 21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국정원 개혁, 김무성 권영세 증인채택을 요구하며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민주당 전해철 정청래 박범계 의원. ⓒ 남소연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2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대선을 3·15 부정선거에 빗대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 선택을 왜곡하고 현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 "의도적으로 대선불복 행위를 하는 것" 등의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사과와 공식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을 통하여 "(민주당이) 지난 대선을 3·15 부정선거에 비유하는 것은 국민들의 수준을 60년대 수준으로 보는 것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자 국민들을 모독하는 행태"라고 민주당을 강하게 비난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23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3·15 부정선거 비유 발언은) '귀태(鬼胎)' 발언에 이어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대국민 흑색선동을 자행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도 23일 기자에게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3·15부정선거'를 거론한 것에 대하여 "금도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금도는 말 그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다.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작금에 부정선거까지 언급하는데 저는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부정선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말에 발끈해 이를 정쟁거리로 삼는 우리의 정치현실이 우습고 놀랍기만 하다. 귀태발언과 3·15부정선거 발언 모두 정권의 정통성 시비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에서 진짜 넘어서는 안 되는 금도란 부정선거 의혹을 과거의 부정선거 역사에 빗대어 교훈을 얻자는 말이 아니라 국정원·경찰청과 같은 국가 최고 권력기구가 여당의 대선 캠프와 짜고 선거에 개입해 민심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도를 넘은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국정원, 경찰청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있는 댓글을 달고, 경찰청이 이를 왜곡 축소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새누리당 캠프와 사전 담합 의혹이 제기된 것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사실 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있고, 이것이 대통령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 같다.

지난 대선을 3·15 부정선거와 비교하는 것은,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여론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듯 하다. 그래서 이런 언급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정말로 3·15부정선거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최근 축구 한일전에서 응원 현수막으로 내걸렸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3·15 부정선거와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

대한민국 역사에서 대표적 부정선거로 기록된 3·15부정선거와 대통령까지 하야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은 부정선거 시도 자체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선거의 영향력은 별개로 하고) 부정선거 시도에 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의 사후 처리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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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진상규명 특검으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제9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새누리당의 방해로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며 특별검사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3·15부정선거 당시로 돌아가 보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는 개헌을 하면서지 12년 장기 집권을 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다시 대선에 출마한 상황이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로는 자유당 이승만 대통령과 민주당의 조병옥 후보가 나섰고, 부통령 후보로는 자유당의 이기붕과 민주당의 장면이 나섰다.

그런데 선거 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2월 12일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갑자기 사망한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은 떼놓은 당상이 돼 버렸고, 대통령 선거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돼 버렸다.

문제는 부통령 선거였다. 사람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이승만 대통령의 연임보다는 누가 부통령이 될 것인지에 모아졌고, 선거전은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유당 정권은 대리투표, 공개투표, 사전투표 등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를 기획하여 진행한다.

선거인 수가 유권자수보다 많기도 하고, 투표함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대놓고 공개 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명백한 부정선거에 3월 15일 투표 당일부터 국민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마산에서 투표당일인 3·15 부정투표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있었다. 학생들도 시위에 대거 참가하였는데 그중에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도 있었다.

자유당 정권은 부정선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궐기를 최루탄과 경찰 몽둥이, 정치깡패로 탄압했다. 특히,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을 협박하고 사주하여 공산당의 사주를 받고 데모를 벌였다는 용공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권은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공산주의자로,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며 색깔론을 펼치는 것은 똑같다.

공산주의 선동이라는 빨간 딱지에, 경찰과 정치깡패들의 폭력에 전국적으로 시위가 잠잠해지던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최루탄이 눈에 박힌 참혹한 모습의 김주열 학생 시신이 떠올랐다. 그 최루탄은 벽을 뚫기 위해 만들어졌던 최루탄이었다. 김주열의 시신은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여 4·19 의거로 이어졌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이기붕 일가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자유당의 몰락을 가져왔다.

지금까지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3·15 부정선거를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자유당 정권 차원에서 장관과 경찰, 정치깡패들까지 조직적으로 선거부정을 한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나 재가 여부와는 상관없이 최고 책임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고, 이들에게 몽둥이와 총칼을 휘두른 경찰과 정치깡패들을 곧바로 처벌하였다면 국민들이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했을까?

이승만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인지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면 아마 국민들은 하야 요구 대신 그에게 박수를 보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4·19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해 죽는 날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불행한 최후도 없었을지 모른다. 결국, 문제는 부정선거보다는 사후처리였던 셈이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마찬가지다. CIA와 FBI가 개입한 도청 미수 사건인 워터게이트 사건은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에도 닉슨 대통령이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부정선거의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만약, 닉슨이 워터게이트 도청 미수사건을 인지한 즉시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국민에게 사죄하였다면 그는 탄핵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불명예 퇴진한 첫 대통령이라는 오명으로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3·15부정선거와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은 바로 이런 것이다. 부정선거 자체도 민주주의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부정선거에 대한 사후처리도 그만큼 중요하여, 그것이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정선거의 진상 규명 노력을 가로막고 이를 은폐하려고 하는 세력은 그 누구라도 부정선거 세력만큼이나 역사적 단죄를 피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3·15 부정선거 언급에 발끈하여 이를 정치쟁점으로 몰고 갈 것이 아니라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한다. 부정선거 자체만큼 부정선거에 대한 사후처리,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어떻게 하느냐가 정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3·15부정선거가 박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던지는 역사적 교훈이다.
#3.15 #국정원 #박근혜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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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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