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4만 거대 협동조합도 이것 안 하면 망한다

[캐나다 협동조합⑤] 협동조합운동의 산 증인 해롤드 챕먼의 고언

등록 2013.09.06 21:15수정 2013.09.06 21:15
1
원고료로 응원
협동조합 붐이다. 작년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진 이후 더욱 또렷하다.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이미 수천여개의 협동조합이 세워졌고, 준비중이다. 특히 경기침체기 일자리 만들기의 새로운 경제모델로 떠오르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부터 협동조합 모델을 주목해왔다. 이후 이탈리아 볼로냐와 캐나다 퀘벡주 등의 해외와 국내 사례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번엔 국내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인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단장 이희한)에서 캐나다 협동조합의 원조격인 서스캐처원을 방문해 그들의 모습을 전하려 한다. [편집자말]
 올해 나이 96세인 헤롤드 챕먼씨는 캐나다 협동조합운동의 산 증인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나이 96세인 헤롤드 챕먼씨는 캐나다 협동조합운동의 산 증인으로 알려져 있다.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단언컨대, 협동조합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계속 이어질 수 없다!"

올해 나이 96세, 헤롤드 챕먼씨의 말이다. 그는 캐나다 협동조합 운동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불린다. 지난 5월 28일 그를 만난 곳은 서스캐처원주 새스커툰의 조용한 은퇴자 아파트였다. 90살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그는 지금도 후배들을 위해 책을 쓴다고 했다.

우리에게 들려준 건강한 노(老) 활동가의 협동조합 경험은 캐나다 협동조합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또 그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iCOOP(아이쿱)생협 활동가로서 조합원 교육의 한계성을 고민하던 하던 때에 챕먼씨의 이야기는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웠다.

그로부터 들은 협동조합 역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교과서였다. 챕먼씨는 특히 자신의 경험 속에서 협동조합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말을 적어본다.

"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죠.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없으면 (협동조합은) 1.5세대 이상 나아가질 못해요. 1세대 때는 협동조합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 졌는지를 알고 있죠. 또 사회적인 이슈와 함께 협동조합을 합니다. 하지만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 이후 세대의 경우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

96세 어느 건강한 노 활동가의 협동조합 이야기

그는 어떻게 협동조합을 하게 됐을까. 1930년 대공황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심한 불황은 그의 고향 서스캐처원의 새스커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챕먼씨의 아버지는 당시 밀생산자협동조합인 휘트 풀의 조합원으로 농장을 경영했다. 하지만 몇 해 동안 반복되는 가뭄과 대공황 시절 곡물 가격의 급락으로 결국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챕먼씨 가족은 새스커툰에서 150km나 떨어진 북쪽마을로 이사를 했다. 다시 농장을 시작했지만 경작할 수 있는 땅은 좋은 편도 아니었다. 챕먼씨는 힘들어진 가정환경 때문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우리로 따지면 고교 1학년까지만 다녔다. 이후 5년여 동안 그는 학교 대신 마을에서 협동조합을 직접 실천해 옮긴다. 자신의 마을회관(커뮤니티 홀)을 아예 협동조합 방식으로 새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서스캐처원대학 농대에서 농업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4학년 때는 협동조합 과목을 수강했다"고 말했다. 챕먼씨는 자신이 대학에 입학하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1939년 9월 9일에 제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했기 때문이다.


1940년대 중반께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당시 서스캐처원에선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1944년 6월 선거에서 북미 유일의 사회주의 정당인 시시에프(CCF, Co_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연방협동조합당)가 승리하면서 주 정부를 구성하고 사회보장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의료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미 더글러스가 주지사로 취임한 후, 공적 영역을 강화하기 위한 공기업과 공영 자동차보험회사 등이 만들어졌다. 이어 협동조합을 통한 지역 경제 개발과 보편적 복지로서 캐나다 최초로 의료보험의 도입을 추진하던, 큰 변화의 시기였다.

챕먼씨는 대학 졸업 후 서스캐처원 주정부 농업부 관리 담당자로 농민들에 대한 평생교육을 담당하면서 협동조합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서스캐처원 주정부는 정부 부서로 협동조합부를 두고 소비, 신용, 커뮤니티 세 분야로 나누어 협동조합을 지원했다. 챕먼은 이 세 분야 외에 농업이나 임업, 수산업의 생산자와 주택분야 협동조합 담당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했다.

 헤롤드 챕먼씨.
헤롤드 챕먼씨.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1960년대 캐나다 서스캐처원은 협동문화가 익숙한 협동조합 세상

챕먼씨는 "1950~60년대 서스캐처원은 진보적인 주 정부가 집권하면서, 협동조합이 만들어 내는 협동의 문화가 익숙한 사회였다"고 말했다. 당시에 새스커툰에선 협동조합이 크게 성행했다. 농부들이 농기계를 함께 사용하는 농기계협동조합을 비롯해 대학에서는 학생주택협동조합, 유제품협동조합, 북쪽 호수에서는 어민협동조합이 만들어져 물고기를 같이 잡고 공동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한때 서스캐처원에만 소비자협동조합이 930개나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협동조합의 세상이었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면 챕먼을 찾아왔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해결해 나갔다. 그는 "북쪽 호수에는 비버가 많았는데 (주민들이) 비버를 서로 잡으려고 하자 아예 '비버협동조합'을 만들었다"면서 "이를 통해 비버의 남획을 막았다"고 회고했다.

이같은 협동조합은 생산분야뿐 아니라 마을의 커뮤니티홀(마을회관), 스케이트장, 컬링장 등 문화시설에서도 만들어졌다. 특히 협동조합 세상이던 서스캐처원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휘트 풀(Wheat Pool, 밀생산자협동조합)이었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밀 생산지대인 중서부 대평원에선 가뭄과 밀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의 어려움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챕먼씨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 만든 것이 휘트 풀"이라며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연대를 강하게 이어갔고, 교육을 통해 협동조합의 문화를 만들어 갔다"고 설명했다. 85년 전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협동조합 청소년캠프'가 그렇다. 1928년 휘트 풀의 지원으로 시작된 청소년 캠프는 해마다 200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연수단이 서스캐처원에서 만난 협동조합 사람들 대부분이 청소년 캠프 출신들이었다. 그는 "휘트 풀은 이밖에 소비, 신용 협동조합을 잇달아 설립하면서 협동조합과 지역사회를 이어준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라고 말했다.

챕먼씨가 바라본 휘트 풀의 실패와 교훈

 서스캐처원은 캐나다에서 가장 일찍 협동조합이 발전한 곳이다. 캐나다 중서부의 광활한 대평원은 곡물 중심의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고, 휘트 풀은 북미 최대의 밀 협동조합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들면서 휘트 풀은 농업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의 길을 걷는다. 사진은 휘트 풀이 문을 닫은 후 개인소유로 바뀐 모습. 곡물 엘리베이터에 '풀(POOL)'명칭이 지워져 있다.
서스캐처원은 캐나다에서 가장 일찍 협동조합이 발전한 곳이다. 캐나다 중서부의 광활한 대평원은 곡물 중심의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고, 휘트 풀은 북미 최대의 밀 협동조합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들면서 휘트 풀은 농업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의 길을 걷는다. 사진은 휘트 풀이 문을 닫은 후 개인소유로 바뀐 모습. 곡물 엘리베이터에 '풀(POOL)'명칭이 지워져 있다.iCOOP생협 캐나다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그는 휘트 풀의 요청으로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반 농민 이외 경영자를 상대로 한 교육과정 등을 만들면서 평생교육을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1955년 가을에 협동조합교육원을 만들었는데, 당시만 해도 다양하고 많은 협동조합이 만들어졌지만 체계적인 교육시설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챕먼씨는 이어 "당시 남성들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이사장부터 임원에 이르기까지 일부 계층에서 독차지하면서 문을 닫는 협동조합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협동조합에 대한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협동조합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갈림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챕먼씨가 세운 협동조합교육원은 조합원 교육만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경영자까지 참여하도록 했다. 이어 신용협동조합을 위한 교육으로까지 커지면서 종합적인 협동조합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그는 "협동조합 교육은 협동의 원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면서 "오늘날 협동의 인문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교육이었고, 특히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협동조합 교육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통로였고, 삶을 살아가는 데 용기를 주었다"고 강조했다.

챕먼씨는 휘트 풀의 실패에 대해서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어 "휘트 풀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당시 휘트 풀은 조합원의 증가로 4만이 넘는 큰 조합이었지만,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회의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교육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협동조합의 성장 과정에서 소통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휘트 풀의 사례가 말해준다는 것이다. 또 협동조합이 지속가능한 모델로 이어지기 위해선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나이 96세, 캐나다 협동조합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 챕먼씨의 충고였다.
#캐나다 협동조합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