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버스 운전하며 노래하는 가수 '정표'

장흥교통 운전원 정표씨... '뚝배기 사랑'으로 가수활동 시작

등록 2013.09.03 17:58수정 2013.09.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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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흥에서 군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정표씨. 그가 최근 '뚝배기사랑'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를 했다. 운전하는 가수인 셈이다.
전남 장흥에서 군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정표씨. 그가 최근 '뚝배기사랑'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를 했다. 운전하는 가수인 셈이다.이돈삼

"노래가 삶의 전부"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다. 시쳇말로 노래에 죽고 노래에 사는 사람이다. 그가 최근 음반을 냈다. 생계를 이어갈 직업은 군내버스 운전원이다. 버스 운전을 하는 가수인 셈이다.


전남 장흥의 (유)장흥교통 운전원 정표(53·본명 최정표)씨. 그는 2년 전 고향 장흥으로 돌아왔다. 30년 넘게 타향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하면서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긴 방황의 시작이었다.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의지한 곳이 고향이었다.

"현실이 어쩔 수 없었어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왔죠. 역시 고향이더라고요. 맘이 편했어요. 산과 들도 푸근했고. 공기도 좋았고요. 친구도, 선후배도 모두 반갑게 맞아주고요. 다시 한 번 해보라고 용기를 준 곳이 고향이었습니다."

 정표 씨의 근무처인 장흥시외버스터미널 전경. 정표 씨는 여기서 장흥군내를 오가는 군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정표 씨의 근무처인 장흥시외버스터미널 전경. 정표 씨는 여기서 장흥군내를 오가는 군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다.이돈삼

 정표 씨가 운전하고 있는 장흥교통 버스의 내부. 승객들이 대부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다.
정표 씨가 운전하고 있는 장흥교통 버스의 내부. 승객들이 대부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다.이돈삼

빈집을 고쳐 보금자리로 꾸민 정표씨는 버스운전을 시작했다.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운전이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다. 고향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차츰 생활이 안정되자 노래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났다. 가수는 그의 어릴 적 꿈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버려본 적 없는, 평생의 목표였다. 타향살이를 하면서 경기민요를 익힌 것도 이런 연유였다.

"노래가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무작정 상경한 것도 가수가 되고 싶어서였고요. 별명이 '라디오'였거든요. 입만 열면 노래가 나온다고.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 알고 나이도 먹었지만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정표 씨의 데뷔 앨범 표지. 대표곡으로 '뚝배기사랑'과 '내님이여'를 담고 있다.
정표 씨의 데뷔 앨범 표지. 대표곡으로 '뚝배기사랑'과 '내님이여'를 담고 있다.이돈삼

정표씨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손님이 다 내리고 빈 버스가 되면 목소리를 높여 노래연습을 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산과 들은 무대배경이 됐다. 노래연습장에 드나든 것도 다반사였다. 퇴근 후엔 타 지역에 있는 녹음실까지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피곤한 줄 몰랐다. 지난한 준비과정을 거쳐 최근 나온 게 그의 1집 앨범이다. 김낙관 작곡의 '뚝배기사랑'을 대표곡으로 내세웠다.


'어제 만나 사랑하고 오늘이면 이별하는
하루살이 인생 같은 짧은 사랑 서글프구나
맨발로 가시밭길 걷는다 해도
내사랑 당신만은 업고 갈테야
아-아 세상은 바삐 돌아가도
사랑만은 서둘면 안 되지
오래 우려낸 진국 같은
우리사랑 뚝배기 사랑'

 정표 씨의 데뷔 앨범. 노랫말이 입에 착착 달라 붙고 목소리도 구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표 씨의 데뷔 앨범. 노랫말이 입에 착착 달라 붙고 목소리도 구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이돈삼

 지난 7월 말 열린 고향 장흥에서 열린 정남진물축제 무대에 오른 정표 씨. 그가 지역주민과 관광객들 앞에서 '뚝배기사랑'을 부르고 있다.
지난 7월 말 열린 고향 장흥에서 열린 정남진물축제 무대에 오른 정표 씨. 그가 지역주민과 관광객들 앞에서 '뚝배기사랑'을 부르고 있다.마동욱

음반이 나오자 가슴이 벅찼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나도 가수다'는 생각에 운전도 더 신이 났다. 버스 승객인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도 전보다도 더 친절해졌다.

"너무나 감사했죠.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꿈을 이뤘잖아요. 행복했어요. 그 동안 아픔도 많았고 그 사이 나이도 많이 먹었지만. 앞으로 열심히 해보려고요."

매주 토요일에 서는 정남진토요시장 무대는 그 출발점이었다. 지난 7월 말에 열린 장흥물축제 무대에도 섰다. 아내(안경숙)가 매니저를 자청했다. 얼굴 화장과 옷매무새도 아내가 직접 챙겼다. 고향사람과 관광객들도 흥겹게 어우러졌다. '노래가 입에 착착 달라 붙는다'며 모두들 좋아했다.

 정표 씨가 무대에 올랐던 정남진물축제 모습. 그의 본격적인 가수활동의 시작이었다.
정표 씨가 무대에 올랐던 정남진물축제 모습. 그의 본격적인 가수활동의 시작이었다.마동욱

"이제부터죠. 가진 건 없고, 직업상 제약은 많지만. 지역에서부터 한 계단씩 밟아가려고요. 선후배들, 특히 마동욱 선배님이 적극 돕고 있고요. 눈물겹도록 고마워요. 그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노력할 겁니다. 그래서 가수로 성공해야죠. 소도 사고 땅도 조금씩 사야 되지 않겠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기어 변속을 하던 그의 팔뚝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그의 노랫소리도 한층 높아진다.

'오래 우려낸 진국 같은/우리사랑 뚝배기 사랑〜'

 가수로 데뷔한 장흥교통 운전원 정표씨. 그가 장흥버스터미널에서 앞으로의 포부를 얘기하고 있다.
가수로 데뷔한 장흥교통 운전원 정표씨. 그가 장흥버스터미널에서 앞으로의 포부를 얘기하고 있다.이돈삼

#정표 #뚝배기사랑 #내님이여 #장흥교통 #운전원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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