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윙스
갑식이가 '칼빵'을 하고 칼이나 자전거 체인을 휘두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초5부터 중3까지의 중2병 사례를 50개의 리얼 스토리와 100개의 솔루션으로 분석하고 있는 책 <중2병 엄마는 불안하고 아이는 억울하다>에 따르면 갑식이는 두 번째 유형인 '고집불통 꼴통 모드'에 속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모드에 속해 있는 아이들의 대표 외침은 "냅둬! 난 나야. 내가 알아서 한다고!"이다.
야하고 저잘스러운 '팬픽'에 빠진 아이, 거침없이 '지적질'하는 아이, '아이돌' 쫓아다니는 아이, 허세 작렬인 아이, '배 째라' 하고 교칙을 무시하는 아이들이 이 유형에 속해 있다. 내 중학교 동창 갑식이는 이른바 '가오'를 세우기 위해 칼빵을 한 것이므로 허세 작렬형에 포함된다.
저자에 따르면, 허세는 중2병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허세에는 특별한 대처법이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이야기다. 중2병의 아이들이 술이나 담배에 집착하고, 메이커 신발이나 의류에 몰입하는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허세 작렬인 아이들을 일단 믿고 기다려주는 게 현명한 부모의 대처법이라고 조언한다. 그게 불안하면 아이가 믿고 따를 만한 주변 사람을 찾아 '멘토' 역할을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중2병의 유형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반항아·친구 올인·연애 집착·외모 우선·공부 스트레스·진로 고민·가정불화·게임 및 스마트폰 집착·성 탐닉 모드 등이 그것이다. 이중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반항아 모드의 세부 유형 중에 방문 걸어 잠그는 아이가 있다. 저자는 이런 아이가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아이들이 점점 나이를 들면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아이가 중2병 증세를 보이는 순간 아이의 방은 이웃집이라고 생각하라고.
다음은 공부 스트레스 모드. 공부는 '성적 지상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최대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청소년 통계 자료에서 청소년이 고민하는 문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공부'(32.9%)다. 그만큼 부모와 아이가 느끼는 압박감도 어마어마하다. 저자는 공부 스트레스 모드로 분류되는 아이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난 더 잘 할 수 있는데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남탓을 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과연 공부만이 살길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계획표를 짜다가 시간을 다 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번엔 분명 100점 맞을 거야!" 하며 공부는 안 하고 큰소리만 친다(221쪽).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저자가 제안하는 '솔루션'은 지극히 일반적이다. 공부하는 이유를 함께 이야기하기, 몰아붙이지 말고 칭찬부터 하기, 공부는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아이 핑계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 '솔루션'을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령 아이들이 시험을 잘 못 보고 나서 핑계를 대는 이유는 뭘까. 그런 핑계를 대느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흥미진진한(!) 질문에 저자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자기 역할'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저자는 부모가 '공부, 공부' 하고 잔소리를 할 때 아이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말한다. 공부란 게 자기 자신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핑계를 늘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나 위해서 공부하니? 너 잘 되라고 공부하지"라고 말하는 부모의 잔소리를 아이들은 '새빨간 거짓말'로 느낀다고 단언한다.
자, 그렇다면 다양한 사례와 설득력 있는 분석 그리고 공감할 만한 '솔루션'을 가득 담고 있는 이 책을 끼고 있으면 중2병에 걸린 아이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는가. 사실 중2병은 어떤 심각한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태어나 성장해 나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기 마련인 '사춘기'와 비슷하다. 어느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저자가 중2병을 난치병이나 불치병이 아니라 한 시절을 훑고 지나가는 유행성 전염병과 같은 신드롬에 빗대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저자는 한철 유행하는 감기 같은 중2병을 정말 심각한 '질병' 같은 것으로 만드는데 부모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일방적으로 부모 중심이었던 권력 관계가 점차 균형점을 찾아 이동하는 것을(부모들은-기자) 원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늘 이기고 싶어한다. 어느덧 부모 자녀 관계가 기싸움판이 된 것이다. 아직까지 힘과 경제력 그리고 심리적인 부분까지 우세한 부모들은 자기 의견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문제아로 보기 시작한다. (39쪽)저자는 이런 기싸움에서 밀린 부모가 더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아이들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고 하면서 이를 '중2부모병'이라고 부른다. 중2부모병은, 기득권자인 부모가 아이들이 변화하는 '터닝 포인트'에 맞춰 새로운 관계를 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관계를 유지하거나 더 강화하려고 하면서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점을 꼬집는 저자의 용어이다.
"우리 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데 어떻게 칭찬해요?"(411쪽)자식 칭찬에 인색한 부모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가 인용한 말이다. 이 말 속에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평가'하지 말고 진심으로 '칭찬'하기가 그것. 물론 '칭찬'에도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해'나 '소통'과 같은 선결 조건도 필요하다. 이때의 이해와 소통은 또 어떻게 하나.
무섭게 반항하고 대들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이 두렵고 부담되는가. 이 책을 보시라.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이와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은 즐거운 충동을 갖게 되리라 장담한다. 현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을 만난 저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가슴이 콩닥거리게 해 보기 바란다.
중2병 엄마는 불안하고 아이는 억울하다
이진아 지음,
웅진윙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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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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