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역사 4단체 소속 학자들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오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이 한국역사연구회 하일식 회장.
윤근혁
따라서 현재 이와 관련하여 가장 바쁜 곳은 국내 역사학계이다. 사실의 문제를 가치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서, 어쨌든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은 다름아닌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에는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등 4개 단체가 교학사 역사교과서 속에 잘못 기술된 사항이 최소 298군데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검정취소를 요구했다. 그러나 교과부는 틀린 내용 수정을 통해 검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현재 국내 역사학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교수, 강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역사연구학회 회장 하일식 연세대 교수를 지난 12일 만났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들은 자꾸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을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나, 정쟁으로 몰고 가려 하지만 그것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다. 우리가 볼 때는 객관적으로 상식과 몰상식, 보편적 휴머니즘 가치관의 문제다. 그런 지점에서 우리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위험한 교과서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과서라는 존재 자체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어쨌든 그 사회의 합의된 최소한의 사실을 싣는 것이 교과서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등을 거쳐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이런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는커녕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 마저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유리한 가치를 교과서에 싣기 위해 특정 사실만을 선택하고, 너무 많은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일 미화와 독재 찬양이 그 바탕에 너무 진하게 깔려있다. 그것을 위한 사실의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해서 버려지는 많은 사실. 예컨대 교과서에서 이승만은 거의 위인전 수준으로 묘사돼 있고, 안창호는 교과서 본문에 한 군데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자료와 기타 내용에만 언급) 단재 신채호는 이승만과 트러블을 많이 일으켰으니까 이 사람의 주장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냐며 혐오감을 조장하는 수준이다."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들이 식민지근대화론을 넘어 아예 일본의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본다는 사실이었다고 하 교수는 지적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은 일본 교과서보다 더 친일적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보통 다른 역사교과서들은 연합군의 입장에서 원자탄을 투하했다고 표현하는데 이 교과서에서만 유독 '피격'으로 나왔다. 피격은 일본인들이 태평양전쟁의 전범이면서도 원폭의 피해자라는 의미로 쓰는 단어다. 일본 교과서를 베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하 교수는 "역사교과서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담아서 균형 있게 서술되어야만 학생들이 이를 통해 올바른 사회관과 역사의식, 사회정의를 배울 수 있고, 마지막으로 잘 다듬어진 문장을 통해 국어공부까지 할 수 있다"면서 "이번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과연 그들이 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는 역랑 자체를 갖췄는지 회의가 들게 한다"고 총평했다.
"이승만 위인전 수준으로 묘사... 이건 교과서가 아니야" 다음은 하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교과서를 처음 본 소감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우선 놀라웠다. 여름에 문제 있는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검정과정의 절차와 규범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그래도 교과서로 나오면 좀 가지런한 내용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좀 위험한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도 있지만 검정과정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평소에 그들이 강조하고 선전하던 이야기들이 거의 안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교과서 검정과정을 거치면 필자들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범한 교과서처럼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실제로 읽어보니까 검정을 거쳤는데도 정말로 굉장히 놀라운 내용과 서술 문장들이 담겨 있더라. 요약하자면 친일미화와 독재찬양이 그 바탕에 너무 진하게 깔려있었다. 그것을 위한 사실의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해서 버려지는 많은 사실. 예컨대 이승만은 거의 위인전처럼 묘사되어 있고, 안창호는 본문에 한 군데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자료와 기타 내용에만 언급) 단재 신채호는 이승만과 트러블을 많이 일으켰으니까 이 사람의 주장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냐며 혐오감을 조장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