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29일 귀국했다. 8개월 넘게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왔다. 지난 6일 <오마이뉴스>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독일 사민당의 딜레마는 우리나라의 진보정치도 깊이 성찰해야할 타산지석"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얼큰한 김치찌개와 간단한 맥주로 식사가 이어지면서,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 역시 베를린서 국내 상황에 대해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태와 재보궐 선거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선 에둘러 답하거나 답변을 피했다.
그는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 의원에 대해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번 일로 득을 보는 것 같지만 오버하면 실수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신 구체적인 평가는 유보했다.
지난 대선 이후 자신과 연대설이 꾸준히 제기됐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그는 지난 8월 형수상(喪)으로 국내에 일시 귀국했었다. 이어 다시 출국하면서 "우리 사회와 정치가 분열로 치닫고 있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 통합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손 고문이 독자세력화 방침을 기정사실화한 안 의원에 대해 선을 그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는 "당시 공항에서 한 말은 그저 인사말이었다"면서 "통합이야 항상 내가 하는 얘기"라고 손사래를 쳤다. 당장 귀국하더라도 곧바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의사가 느껴졌다. 손 고문은 지난 7월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많은 사람이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를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이야말로 지금 제게 맞는 말 같다"면서 현실 정치 참여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은 바 있다.
오히려 국내 정치에 대한 손 고문의 생각은 독일 총선 경험담 속에서 생생히 묻어났다. 그는 총선 기간 유세장을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독일의 민심을 체감했다. 특히 그가 느낀 '사민당의 딜레마'는 곧 '민주당의 딜레마'이기도 했다.
"현실정치 참여하라고? 독일 사민당을 타산지석으로"그는 "사민당 지지층들의 이탈로 좌파당의 지지율이 8%대로 성장했다, 홀로 집권하기 어려운 좌파당이 사민당이나 녹색당에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사민당 입장에서 쉽게 응할 수가 없다, 좌파당과 연정할 경우 당내의 중도적 지지층마저 이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진보정당과 '안철수신당'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민주당의 상황과 딱 맞는 얘기였다.
무엇보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사민당이 기민당에 패배하더라도 양당의 정책과 이념 차이 때문이 아니면 양당의 총리 후보에 대한 지지도 차이 때문일 것"이라며 메르켈 총리의 '통합적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다. "지난 대선 당시 우리 상황과 비슷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야권의 정책 이슈인 경제민주화·복지 이슈를 선점하면서 대선 승리의 발판을 닦았다는 얘기다.
"독일에는 '메르켈 이스트 알레스(Merkel isst Alles)'라는 말이 있어요. '메르켈은 무엇이든 다 먹는다'는 뜻이지. 메르켈 총리가 야당의 이슈나 정책을 다 흡수하다보니 사민당이나 야당이 내놓을 이슈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딜레마죠. 심지어 녹색당 지지자들 중 60%가 자신들의 탈핵정책을 수용한 메르켈 총리의 3선을 원하고 있어요."손 고문은 지난 9일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서도 "다양성과 통합의 기초 위에 민주주의의 기본을 튼튼하게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당면한 최대 과제임을 절실히 느낀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또 "메르켈의 통합 정치에 이슈를 빼앗긴 사민당의 딜레마는 우리나라의 진보정치도 깊이 성찰해야 할 타산지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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