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 득을 보는 자 대체 누구인가

[주장] 실효성 없는 교원평가제도 이대로는 안 된다

등록 2013.09.30 17:07수정 2013.09.3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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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 시즌입니다. 전라북도교육청에 속해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지난 주부터 학생만족도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만족도조사는 10월 11일까지 진행됩니다. 이번 주가 2학기 1차 고사 기간이니 다음 주쯤에 본격적으로 시작되겠지요.

학생만족도조사는 초등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가 참여 대상입니다. 지난해 학생만족도조사의 참여율은 전국적으로 80%가 조금 넘었습니다. 그간 학생만족도조사는 감정적인 평가나 또래집단의 영향을 받는 집단평가 등의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인기 투표로 진행될 가능성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나왔지요.

그래서 올해는 교감이 평가 시작 전에 평가의 취지, 목적, 문항의 의미, 결과 활용 등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보완책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이런 사전 교육이 과연 학생들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지 회의적이기만 합니다.

학부모만족도평가는 10월 14일부터 11월 1일까지 3주에 걸쳐 진행됩니다. 교사들은 학부모만족도평가를 위해 이미 각자 공개 수업 일정을 계획·지정하고, 수업지도안을 작성하여 제출한 뒤 공개 수업을 했습니다. 다른 학교도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전에 학부모들에게는 공개 수업 참관 희망 여부를 조사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냈습니다. 저는 올해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학부모가 교원 평가를 위한 공개 수업에 참관한다는 게 조금 우스운(?) 일입니다. 정해진 교과 과정은 제쳐두고 수능 문제풀이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는 고3 교실 현장에서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이겠지요. 우리 반 34명의 학부모 중에서 수업 참관에 희망하겠다는 학부모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른 반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상 졸업 학기에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가 담임이나 교과 담당 교사의 공개 수업에 참여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교원평가, 학부모들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평가를 하나


다른 학년도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적어도 한 나절 일정을 따로 떼내어 공개 수업에 참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초 조사를 할 때는 수업 참관을 하겠다는 학부모가 반별로 서너 명씩은 되지만 막상 당일이 되면 아예 한 명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결국 학부모만족도조사는 아는 학부모로부터 전해 듣는 말에 의존하는 '귀동냥'이나 정체 없이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귀동냥·소문 평가'로 교원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될 리 만무하지요.

이마저도 일부 학부모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지난해 교원평가 참여율은 학부모가 49.6%였습니다. 반올림을 하면 절반 정도 되니 유의미하다고 봐야 할까요. 하지만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평균치임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역이나 학교급별로 차이가 나는 상황을 고려하면 극소수의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곳도 상당수일 것입니다.

극히 일부라도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학부모가 그 교육 철학이나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전혀, 또는 거의 알 수 없는 교사를 대체 어떤 재주로 평가할까요. '소문'이 근거 없이 나돌지는 않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평가 근거는 충분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백 번을 양보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극히 일부 학부모의 평가만으로 이뤄지는 평가 결과를 그 어떤 '너그러운' 교사가 흔쾌히 받아들이겠습니까.

학부모만족도조사의 평가 문항도 문제가 많습니다. 학교 방문은커녕 공개 수업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학부모가 어떻게 선생님이 효과적으로 학습지도에 임하는지, 또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무슨 재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평가를 위한 평가가 아니고서야 이런 평가 시스템을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교원평가 시스템은 인정사정 없이 '점수'를 내놓습니다. 위에 소개한 학생만족도조사와 학부모만족도조사 외에 동료교원평가까지를 합산한 점수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장·단기 직무연수 대상자는, 작년에 통과한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에 따라 교원평가 결과(점수)를 기준으로 선정됩니다. 그 결과가 기준미달 점수에 해당하면 장·단기 능력향상연수를 받습니다. 보통 교원은 평가지표별로 맞춤형 연수를 받고, 우수 교원은 학습연구원 특별연수의 혜택을 받습니다.

교원평가로 득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예외 없이 나오는 '성적'으로 장·단기 능력향상연수(장·단기 연수)를 받게 되는 기준미달 교원들입니다. 작년에 장·단기 연수 대상자는 1385명이었습니다. 이중에서 학교와 교육청 심의를 거쳐 608명이 연수 대상자로 확정되어 530명이 단기과정, 75명이 210시간의 장기기본과정, 3명이 6개월의 장기심화과정 연수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들 교사가 어떤 '능력'의 부족으로 낮은 점수를 받아 장·단기 연수 대상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들 각각에 맞는 연수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분석 자료를 교육부가 가지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직접 살펴보지 않아도, 각 시도교육청별로 진행되는 구체적인 연수과정 역시 '붕어빵' 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들 1385명의 교원들이 과연 교육부의 '선전'대로 장·단기 연수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능력에 대한 지원과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장·단기 연수 대상자로 지명된 교원들은 스스로를 실패자나 낙오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장·단기 연수를 일종의 '징벌'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공정하거나 객관적이지 못한 평가로 기준 미달 점수를 받았으니 그렇지 않은 게 이상하지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교사가 교육부의 장·단기 연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저는 그런 '공자님' 같은 교사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 3월 취임 직후, 현장의 원성을 사는 교원평가제를 개선해 달라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요구에 현장과의 대화를 통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교원평가 개선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교원평가제는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자문기구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국민의식조사에서 17개 핵심 교육정책 중 지지도가 가장 낮게 나타났을 정도로 형편 없는 제도임이 만천하에 드러나 있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 신뢰성 없고 객관성·공정성도 없는 교원평가로 득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학교 현장의 아우성에 직면해 있는 일선 교육청의 담당 장학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원평가를 총괄하는 교육부의 실무진들 또한 울며 겨자먹기로 교원평가 업무를 진행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법이 강제하니 하는 것일 뿐 교육적인 실효성이나 의의는 찾아볼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교원평가에 무관심한 학부모나 학생들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대안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서술식평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지난 몇 년 간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실시한 서술식평가가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여기에는 학생만족도조사만 포함해야 합니다. 실효성이나 객관성, 공정성 등의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학부모만족도나 동료교원평가는 배제해야 합니다.

학생만족도조사는 그 평가 항목에 해당 교사의 좋은(우수한) 점과 함께 부족한 점이나 개선할 점 등을 서술식으로 간단하게 적을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저는 재작년 평가에서 몇몇 학생들이 솔직하게 적어놓은 서술식 평가 내용들을 보고, 제 수업을 설계하고 교수 학습 내용과 활동 방법 등을 조직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감정에 휩쓸린 대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대답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는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로부터 완벽하게 '만족한다'라는 답을 들을 수 있는 교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신이 아닌 이상 그럴 수 없는 노릇이지요.

학생들의 대답이 당장 아프고 쓰라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 말들이 분명 교사들에게 큰 '약'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정에 휩쓸렸다고 하더라도, 실상 일상적으로 교사들을 관찰하는 학생들의 눈만큼 정확한 것도 없지 않을런지요. 멀리 길게 보면서 자신의 교육 철학이나 교수 활동을 자발적으로 성찰하는 데 학생들의 서술식 평가만큼 유효한 것도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전라북도교육청에서도 서술식 평가와 계량적 평가(정량적인 체크리스트 방식의 평가)를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난 5월, 전라북도교육청과 교육부의 법적 다툼 결과 법원이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전북교육청은 서술형 평가만을 고집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라북도에서도 어떤 식으로든지 기준점수에 미달하는 교사가 지정이 되고, 장·단기 연수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교육부가 계량적 평가를 고집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교사들을 점수로 줄 세우기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장·단기 연수자를 지명하는 것도 점수만 있으면 일도 아닙니다. 여하한 교사들이 어떤 부족한 능력 때문에 장·단기 연수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는 전혀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그 어떤 교육적인 취지나 의미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현장과의 대화를 통해 개선해 나가겠다는 서 장관의 말이 지금부터서라도 즉각 실천으로 옮겨지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원평가 #서술식 평가 #학생만족도조사 #학부모만족도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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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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