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별안간에 가만히 있었다
씹었던 불고기를 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니 그것은 불고기가 아니라 돌이었을지도 모른다
신은 곧잘 이런 장난을 잘한다
(그리 흥겨운 밤의 일도 아니었는데)
사실은 일본에 가는 친구의 잔치에서
이토추[伊藤忠] 상사(商事)의 신문광고 이야기가 나오고
곳쿄노 마찌 이야기가 나오다가
이북으로 갔다는 나가타 겐지로[永田絃次郞]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 김영길이가
이북으로 갔다는 김영길이 이야기가
나왔다가 들어간 때이다
내가 나가토[長門]라는 여가수도 같이 갔느냐고
농으로 물어보려는데
누가 벌써 재빨리 말꼬리를 돌렸다……
신은 곧잘 이런 꾸지람을 잘한다
(1960. 12. 9)
선생님, 기다란 한자어가 낯설기만 한 이 시의 제목이 이채롭습니다. '永田絃次郞'. '나가타 겐지로'로 읽는 일본어식 인명이지요. 이름이 제법 알려졌던 재일 교포 테너 가수 '김영길'이 그 주인공입니다. 1960년에 북송되었더군요.
한국식 이름과 일본식 이름에 모두 '영(永)'자가 들어가 있는 것은 일종의 뿌리 흔적 남기기의 하나입니다. 유신 독재자 박정희(朴正熙)가 최초로 창씨 개명한 일본식 이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에서도 그런 뿌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요. 물론 박정희는 훗날 좀더 완전한 일본식 이름인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또 한 번 변신하면서 자신의 '조선적 뿌리'를 완벽하게 없애버리지만 말입니다.
북송된 나가타 겐지로, 곧 김영길이 화제에 오른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2연을 보니 시적 배경과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화자는 일행들과 함께 일본에 가는 친구의 잔치에 모이게 되었나 봅니다. "그리 흥겨운 밤의 일도 아니었"(2연 1행)다는 진술로 보아 그다지 썩 내킨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친구와 먼 이별을 하는 자리니 의례적으로라도 몇 마디 말을 나눠야지요. 그래서 친구가 간다는 일본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이토추[伊藤忠] 상사(商事)의 신문광고"(2연 3행)와 '곳쿄노 마찌'(2연 4행) 들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지요.
'이토추 상사'는 1858년에 최초 창업을 하고, 1949년에 정식으로 회사가 설립된 일본 전통의 종합 상사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종합 상사가 되어 있지요. 아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토추 상사에는 전설적인 인물 세지마 류조가 있었습니다. 1958년에 이토추에 입사한 인물입니다. 그를 모델로 한 <불모지대>가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세지마 류조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씨를 비롯하여 박정희와 전두환 등의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두루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간 입지전적인 삶이 '돈'과 '권력'의 화신이었던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게지요. '제국의 귀태'인 기시 노부스케와 더불어, 방귀께나 뀌는 한국인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일본인 중의 한 명이라고도 합니다.
"곳쿄노 마찌"는 나가타 겐지로가 취입한 대중 가요 제목이지요. 그는 조선 출신이면서도 1930년대 일본 오페라계에서 최고 가수로 활동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그가 대중 가요를 취입해서 당대에 제법 소란이 있었다는데, 그 곡이 바로 '곳쿄노 마찌'입니다.
'이토추 상사'나 '곳쿄노 마찌'는 일본으로 떠나는 친구를 위한 자리에서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화제들입니다. 그런데 '곳쿄노 마찌'가 화제로 등장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흘러갑니다. '곳쿄노 마찌'는, 그것을 부른 가수 '나가타 겐지로'를 불러왔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이북', 곧 북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북송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북 얘기가 나오자 잔치에 모인 일행들은 "모두 별안간에 가만히 있"(1연 1행)게 됩니다. "씹었던 불고기를 문 채로 가만히 있었"(1연 2행)다니 일행들이 '이북'이라는 말에 얼마나 놀랐다는 것일까요. 심지어는 "내가 나가토[長門]라는 여가수도 같이 갔느냐고 / 농으로 물어보려"(4연 1, 2행) 하자, 일행 중의 누군가가 "재빨리 말꼬리를 돌"(4연 3행)리기까지 합니다.
북송된 재일교포 가수와 그의 동료 여가수가 일종의 '금기어'가 돼버린 이 놀라운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4월 혁명이 일어난 지 8개월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북한을 절대 금기의 영역에 남겨 두었다는 말이겠지요. 시에 나오는 '이북'이라는 말 때문이었을까요. 결국 이 시를 '×× 신문'으로 들고 간 선생님께서는 퇴짜를 맞고 말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이라는 말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의 금기어입니다. 북한이 남파 간첩을 통한 적화 전술을 버린 지 오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는 어디서 온 간첩들이 그리도 많은지 잊힐 만하면 간첩 사건이 터져 나옵니다. 얼마 전에는 현역 의원이 연루된 내란음모 사건이 터져 온 국민의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엊그제 국군의 날을 맞아서는 5년 만에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시가 행진이 있었습니다. "강한 국군, 튼튼한 안보"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지요. 4천 500명의 병력이 동원되었고, 그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기 위해 미스코리아 출신 여성들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이번에 대한민국 정부는 일심동체로 국가에 헌신하자는 국군의 날 이벤트를 정말 제대로 치른 것 같습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지배했던 1970년대의 유신 독재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사상과 이념 이전에 사람이 있습니다. 국가 체제는 한 명 한 명의 사람들로부터 비롯됩니다. 그것을 망각하는 순간 개인은 '신'의 못된 '장난'질과 '꾸지람'에 억울하게 노출됩니다. 그 '신', 사상과 이념과 국가 체제를 전부로 생각하는 그 망령들을 우리는 '농담'처럼 수시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북송된 재일교포 출신 가수에 대한 이야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가 결코 정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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