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할아버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니...

[시민기자 취재뒷얘기] 드라마틱했던 시민기자 3년

등록 2013.10.30 08:59수정 2013.10.3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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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취재뒷얘기 시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고 느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시민기자 여러분의 자발적 참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1. 제외 - "<오마이뉴스>는 진보성향이라서..."


"우리 시에서 '파워 트위터리안'과 활발히 활동하는 '페이스북'사용자를 초청,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 : 사전답사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장님께 보고를 해야 하니, 간단한 인적사항과 주요경력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활용한 팸투어 마케팅을 구상했나보다. 열 명 제한이라는데 내가 포함되었단다. 공짜로 숙식을 제공하고 관광지를 소개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일이 뭐 있겠나. 조건은 자신들이 안내하는 관광지를 SNS에 소개만 하면 된단다.

난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용을 즐긴다. 최근엔 페이스북 이용 비중이 높은 편이다. 내가 올린 글에 붙은 '좋아요'의 숫자나 게시물을 보면 사람 사는 정이 느껴진다. 때론 잔잔한 감동을 받을 때도 있다. 일상의 소소한 일을 가볍게 페이스북에 올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지인도 꽤 된다. OO시에서 요구한 인적사항과 경력을 이메일로 보냈다.

'화천군청 관광기획담당, 트위터 팔로워 8만여 명, 페북 친구 3000여 명,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2012년 2월 2월22일상, 2012년 10월 이달의 기자상, 2013년 4월 찜!e시민기자 선정'

얼마 뒤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죄송합니다만, 이번 우리 시 팸투어에서 계장님이 제외됐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부탁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요?"

담당자의 설명은 이랬다. 순수 아마추어 트위터리안들과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기자는 '제외'라고 했다. 특히 <오마이뉴스>는 진보성향이기 때문에 보수성향인 시장의 '의중'과도 맞지 않다고 했다. 홍보가 목적인데 잘못된 점을 지적할까봐 염려된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2. 인물 - "진비어천가, 그건 또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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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비어천가 주인공 이진희 씨. ⓒ 신광태


"'정비어천가'만 주구장창 쓰더니, 이젠 '진비어천가'냐?"

어느날 모 방송사 기자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3년 전 화천군청 홍보담당으로 있을 때 만났던 사람이다. 내가 쓴 기사를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정갑철 화천군수다. 그도 그럴 것이 산천어축제를 만들어 일약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시키고, 산골마을 화천군을 10년 정도 앞당겨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마이뉴스>에 인물 기사를 많이 쓰는 편이다. 내가 쓴 기사를 많이 보아온 그 기자는 정 군수에 대한 칭송(?)이 많다며 용비어천가에 빗대 '정비어천가'라고 말했다.

정 군수 다음으로 내 기사에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막내 직원 이진희씨인 듯하다. 지난해 8월에 입사한 그녀는 오후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다. 휴일에도 어김없이 출근한다. 부서 일이 바쁘기도 하지만, 업무에 대한 연찬이나 꼼꼼함이 남다른 편이다.

그러니 부서장이나 동료 직원들에게 귀여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진희씨 이야기를 기사로 몇 차례 전했다. 장난기 심한 모 방송사 기자는 결코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이젠 진비어천가를 쓰냐"는 농담은 그래서 나왔다.

#3. 요청 - '장군님'께서 수정 요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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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시범을 보이던 원홍규 사단장 ⓒ 신광태


"저는 칠성부대 ○○○중령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쓰신 기사 제목을 좀 수정해 주시면 안 될까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현 육군3사관학교 교장인 원홍규 소장은 2011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화천에 있는 육군제7보병사단장을 역임했다. 그는 군과 주민들의 협력을 통한 지역발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객들의 DMZ 출입 절차 간소화, 신병퇴임식 읍내 진행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재임 2년여 동안 많은 정책을 시행했다. 화천 주민들에겐 '역대 최고 사단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22일 토요일 이른 아침, 원 사단장은 수백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읍내로 침투(?)했다. 병사들은 곡괭이, 삽, 끌 등 얼음 깨는 도구로 완정무장을 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고, 연 150여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화천이다. 하지만 최근 잦은 폭설로 도로가 얼음판이 됐다. 관광객들의 사고와 부상이 염려된다. 군인도 지역주민이다. 도로 위 얼음 제거는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원 사단장은 병사들 앞에서 일장 훈시를 했다. 이어 그는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힘들다는 거 안다, 따라서 오늘 작전은 스트레스 해소가 목적이다. 혹시 너희들에게 부담을 주는 상관 즉,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얼음을 깨라"고 덧붙였다.

취재를 위해 참석한 나에겐 참 좋은 기사 소재였다. 기사 제목을 "대대장 얼굴이라 생각하고 얼음을 깨라"라고 올렸다. 금방 부대에서 기사 제목 수정요구가 들어왔다. 부대장의 멋진 면을 소개하려다 자칫 나쁜 인상을 줄 듯했다. 부랴부랴 편집부에 부탁해 제목을 "얼음 깨는 사단장 감동입니다"라고 수정했다.   

#4. 상처 - 할아버지의 죽음과 내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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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공 할아버지를 공원묘원에서 만났다. ⓒ 신광태


"김성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아니... 건강하시던 분이 왜?" 

2011년 6월,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사무소 직원에게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할아버지는 폐지를 수집해 모은 돈 200만 원을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 장학금으로 쓰라"고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신보다 어려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어 김성공 할아버지를 취재하는 내내 눈이 붉어졌다. 당시 쓴 기사 '할아버지, 이제 제발 그만 기부하세요!'는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끌었고, 여러 독지가들이 나서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김성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유는 나 때문이란다. 한동안 '멘붕'에 빠졌다. 당시 취재할 때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저 고개 너머에 군인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거기서 폐지 좀 줍게 해줘. 병은 절대 가져가지 않고 종이만 주워 갈 테니..."

그 자리에서 담당 장교와 통화해 '민원'을 해결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폐지를 줍기 위해 스쿠터 타고 고개를 넘다 차량과 충돌해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부탁했을 때 "절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할 걸... 담당 장교가 "절대 안 됩니다"라고 거부했더라면... 그날 할아버지를 왜 인터뷰 했을까... 참 많은 후회를 했다. 밀려드는 괴로움을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날이 이어졌다.

#5. 기대 - "앞으로 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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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을 검색했는데, 연관 검색어로 내 이름이 뜬다. ⓒ 네이버 검색화면


"신광태씨입니까? 만나서 영광입니다."

처음 만난 자리, 그는 내 명함을 받아 들고 다시 한 번 악수를 청한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 그는 나를 안다고 했다. <네이버>에서 '화천'을 검색했더니 연관 검색어로 내 이름이 뜨더란다. 의아했다. 유명 인물만 연관 검색어로 뜨는 줄 알았으니, 더욱 그랬다. 이게 다 <오마이뉴스> 때문이다.

"직원들 대상 글쓰기 강의 좀 부탁해도 될까요?"

지난 1월 어느날, 한 기업체 교육담당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난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를 어떻게 아셨나요?"
"<오마이뉴스>에 쓰신 기사 빼놓지 않고 봤습니다. 그냥 그 형식으로 강의해 주시면 됩니다."

어떨결에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이 역시 황당한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강의를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다. 부랴부랴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강좌를 신청해 들었다. 덕분에 체계적인 글쓰기를 배웠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참 많다. 집사람에게는 "다시는 가족 이야기 올리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고, 모 언론사의 횡포를 고발했다가 내가 근무하는 군(郡)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내가 쓴 기사 내용이 방송으로 이어져 '스타가 된 지역 인사'도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사건(?)이 전개될지 기대된다.
#이진희 #원홍규 #연관검색어 #김성공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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