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청년마다 추구하는 목표도 같지 않다. 한쪽에서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다른 한쪽에선 대기업에 입사하려 공부에 매진한다.
정민규
이규정(아래 이) : "그건 지금 청년이 과거와 양상이 크게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아. 예를 하나 들어볼까? '386세대'에게는 정치적 민주화 쟁취라는 세대적 단일 목표가 있었잖아. 목표가 분명하니까, 대응도 분명한 거지. 근데 지금은 청년마다 사는 모습도, 추구하는 목표도 동일하지 않잖아. 한쪽에서는 삼성에 입사하려 'SSAT'를 붙잡고, 한쪽에서는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잖아. 세대의 응집력이 없으니까, 세대론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거지."
박 : "청년 담론이 현실에서 왜곡된 경우도 많지 않나? 저자도 '결국 만들어진 것은 어른들의 은혜로운 배려에 의해 발언권을 얻은 20대'(35쪽)일 뿐이라고 꼬집잖아. 예를 들어 청년을 위해서 청년비례대표를 국회로 보냈다고 하는데…. 청년이 청년비례대표를 뽑았나? 청년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대다수 청년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긴 어려웠지. 사실 관심이 없기도 했고. 청년에게 '저들이 내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었을 거야.
냉정하게 보면 그 '대표'들은 각 정당에서 '간택'된 인물들이잖아. 청년이 청년비례대표를 자신의 대변자로 여기기 힘들 수밖에 없어. 오히려 기득권층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그들에게 불리하지 않은 방향에서 '우리는 청년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아'라며 생색만 내는 방법이 돼버렸지."
김 :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어. 지금은 좀 꺾였지만 자기 계발서 열풍이야. 난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위로받기에는 내용이 공허하다는 생각을 했어. 예를 들면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많은 대학생 사례를 다뤘지만, 가난한 학생 이야기는 없잖아. 꿈, 열정, 희망…. 다 좋은 이야기지. 그런데 아르바이트 하면서 장학금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야.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그런 뜬구름 잡는 말로 해결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게 아니거든."
박 : "영화감독 변영주씨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김난도 교수를 비판하니까, 김 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내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반박한 적이 있어. 그게 기득권층의 솔직한 생각이지.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서 지금 위치까지 왔는데, 지금의 청년이 힘들다고 하는 게 불평불만처럼 느껴지는 것 아닐까. 김미경 같은 사람도 방송 강연 보면, '내가 말하는 거 해내면, 너희도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 정도의 이야기를 하면서 20대를 닦달하잖아. 결국 자기 계발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청년아 성공하기 위해 다른 청년을 밟고 올라서라'가 아니었을까."
현실의 배설구가 된 인터넷 공간... '병맛' 그리고 '일베'이 : "청년 담론이 넘쳐나도 현실은 바뀌지 않고, 그렇다고 위로를 받기도 어려운 상황인 거네. 스스로에 대한 잉여라는 지칭도, 이런 고단한 현실에 대한 씁쓸한 자조가 섞인 반응일거야. 그러다 보니 인터넷 공간은 이 책에서 설명한 대로 '돈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놀이터이자, 광장이자, 배설구이자, 현실'(133쪽)이 됐지.
사실 '병맛'이라는 게 일반적인 서사를 전복하면서 나오는 거거든. 병맛으로 유명한 만화에서 이런 장면이 있어. 여고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선배에게 '선배 주려고 도시락을 쌌어요'라고 하는데 '꺼져'라는 답변이 나와. 일상적인 서사가 깨진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는 거지. 이를 두고 저자는 '와장창하고 박살나는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삶의 궤적과 매우 닮아있다'(140쪽)고 표현해. 지금 청년이 겪고 있는 일상이 녹록지 않잖아?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기도 어렵고 말이야. 차라리 '뒤집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청년이 자기 삶에서도 이런 전복을 꿈꾸니까, 병맛에 공감도 하고."
김 : "'일베'도 시작은 비슷했을 거야. <잉여사회>의 저자는 '이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광주에 대해 악담을 늘어놓게 된 것은 이들에게 광주가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광주를 욕하면 적들이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뛰는 것이 즐겁기 때문'(233쪽)이라고 말해. 어떤 금기를 전복하는 데서 오는 쾌락이 일베의 핵심적인 작동원리라는 거지.
다만 이 사람들은 비겁한 방식으로 쾌락을 만드는 것 같아. 안전하게 짓밟을 수 있는 대상을 주로 공격하니까. 여성, 이주노동자, 5·18광주민주화운동 유족 등은 인터넷 잉여와 마찬가지로 강자가 아니잖아. 전복의 대상이 아닌 거지. 누군가는 민주화 이후 우리사회 주역인 386세대에 대한 반감을 근원이라 분석하더라고. 이것이 진보진영 전체로 표출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기득권이 된 386세대하고만 싸워야 하는 거 아냐?"
박 : "맞는 이야기야. 그런데 우리가 더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어. 사실 일베의 주장이 새로운 건 아니야. 저자가 설명하듯 '일베의 주장들은 지난 십여 년간의 인터넷상에서 언제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들'(223쪽)이잖아. 다만 언론이 주목하고, 사회적 논의에 등장하면서 확대 재생산된 거지. 일베를 보면, 언론에 자신들이 등장하면 좋아하더라고. 오히려 그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편이 더 적절한 대응방식이라고 생각해. 어긋난 방식으로 느끼는 쾌락이니까, 점차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거든."
대다수 청년이 빠져 있는 '죄수의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