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쿰쿰한 냄새도 모두 그립다.
추연만
취재라면 힘이 펄펄 나던 나, 이번엔 달랐다아프리카 취재를 준비하던 단계만 해도 체력적인 한계를 느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하다가도 일단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들면 어디서 솟아났는지 펄펄 힘이 나기 때문이다(물론 취재를 마치고 나서 며칠씩 후유증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비행기와 자동차를 포함해 이동하는데 들어간 시간만 20시간에, 6시간의 시차 그리고 급격한 기압차 등이 첫날부터 내 체력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출국 전 충분한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조언이 있었지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것도 한 이유였다. 아프리카를 취재하러 간다는 설렘에 출발 전 며칠 동안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데다가 기왕이면 사진에 예쁘게(?) 나오고 싶다는 욕심으로 급하게 다이어트를 하느라 약간의 어지럼증까지 있었다.
하지만 나를 믿고 동행을 결정한 일행 앞에서는 티를 낼 수 없었다. 내가 누구인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즉 산전, 수전, 공중전, 화학전을 가리지 않는다는 전천후 뉴스 게릴라가 아니었던가.
게릴라 정신을 발휘해 힘들어하는 일행들에게 "좋다", "괜찮다", "아무 문제없다", "난 원래 이런 거 좋아한다" 큰 소리 치며 센 척을 했지만 사실은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첫날부터 지독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당신이 아프리카에 간다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안 될걸. 가리는 것 많고 불편한 거 못 참는 당신이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름씩이나 견딜 수 있겠어? 시골 내려가서 살자고 해도 무섭고 불편해서 싫다며 징징거리는 사람이 무슨 용기로 아프리카까지 간다고 하는지... 거참 내가 따라갈 수도 없고 걱정이네. 걱정이야.""여보, 너무 걱정마. 나 잘 할 수 있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그렇게 힘들겠어? 지금까지 너무 편하게만 살았으니 한 번쯤은 그런 경험도 해봐야지. 그리고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거기서 살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보름인데 참을 수 있을 거야. 강수연이나 예지원같은 여배우들도 가는데 결혼 28년 차 대한민국 아줌마가 못할 게 뭐 있겠어."걱정하는 남편에게도 짐짓 큰소리를 쳤다. 스스로도 여행도 다닐 만큼 다녀보았고 봉사활동도 10년 넘게 보았으니 아프리카 취재에 나보다 더한 적임자가 없을 것이라 자인했었다.

▲이 그리움의 끝에서 나는 다시 아프리카를 만날 것이다
추연만
현실과 이상의 차이, 첫날부터 초주검이 되다그러나... 늘 현실은 이상과 큰 차이가 있는 법. 에티오피아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에게 찾아 온 것은 지독한 두통이었다. 해발 2500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생긴 고산병 증상이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진통제를 찾아 먹었겠지만 참아보기로 했다. 고도에 적응을 하면 증상도 사라진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륙과의 만남,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기, 새로운 자연과의 만남은 경이로웠지만 도로를 뒤덮은 흙먼지와 시커멓게 가라앉은 매연, 그 속에 섞여 있는 진한 유칼립투스 타는 냄새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지독한 교통체증과 울퉁불퉁한 도로와 함께 차멀미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고산증에 차멀미까지... 한국을 떠난 지 25시간 남짓.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지방도시 아와사의 식당을 찾았을 때 이미 나는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떡진 머리, 붉게 충혈된 두 눈과 푸석푸석한 피부까지... 인천 공항에서 의기양양하게 손을 흔들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퀭한 얼굴로 에티오피아에서의 첫 식사를 마주했다.
"드세요. 이건 '인제라'라고 하는데 에티오피아에서도 아주 고급에 속하는 식사예요. 지금 먹으면 언제 또 먹게 될지 모르는 귀한 음식이니 있을 때 먹어두세요. 더구나 지금은 부활절 금식기간이라 고기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에티오피아는 금식기간 동안 고기를 팔지도 먹지도 않는다) 여기는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그나마 닭고기가 있네요."우리와 동행한 정순자 교장과 현지인 제게예는 익숙한 듯 인제라를 뜯어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어쩐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보기에는 메밀전처럼 생겼지만 시큼한 냄새가 난다. 여기에 '웟'이라는 소스에 찍어 먹어보니 역시 식초나 빙초산을 넣은 듯 신맛이 난다. 비행기에서 내려 자동차로 이동한 지 6시간. 배는 고팠지만 낯선 음식 냄새를 맡으니 오히려 멀미가 심해지는 것 같아 함께 나온 콜라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에티오피아 한별학교에서 우리를 도와준 뜨베와 아디스와
김혜원
'당신 잘 할 수 있겠어?'... 남편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그날 밤. 쓰린 속을 움켜쥐고 낯선 잠자리에 누운 순간 칠흙같은 절대어둠 속에서 환청처럼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잘 할 수 있겠어? 음식이니 잠자리니 화장실이니 다 불편할 텐데 참을 수 있겠어? 걱정이네. 같이 갈수도 없고. 어린애 우물가에 내 놓은 것 같아. 내 놓은 것 같아...내 놓은 것 같아....같아...같아...'찔끔 눈물이 흘렀다.
다음날부터 취재가 시작되었고 하루하루가 내 체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날들이었다. 밤이면 더욱 심해지는 두통과 속 거북함. 10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취재를 다녀 온 날은 잠을 자면서도 자동차의 진동이 계속되는 듯 멀미가 멈추지 않았다.
그럴 때면 약을 먹듯 콜라를 찾아 마셨다. 콜라를 마시면 잠깐 동안은 집에 와있는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유칼립투스 타는 냄새도 커피찌꺼기 썩는 냄새도 분뇨 냄새도, 배기가스 냄새도 쓰레기 냄새도 잠시 동안은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들어오나 나가나 콜라를 달고 살았다. 물대신 음료수 대신 자양강장제 대신 마셨던 콜라. 콜라 없는 에티오피아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잘 버티시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 체질이신가봐요. 다음 취재도 문제 없으시겠는데요.""체질이라뇨. 절대 아니에요. 솔직히 힘들지만 다른 분들 보면서 견디고 있어요. 여기서 사시는 분들에게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50 평생 살면서 이런 고생 처음이에요. 저 보기보다 곱게 자란 사람이거든요." 일정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체력적 한계가 더욱 느껴졌다. 마음은 더 깊은 오지를 찾아다니며 취재를 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숙소(물도 나오지 않고 벼룩과 말라리아 모기들이 출몰하는)에서 먹고 잘 용기는 더욱 나지 않았다. 현지음식도 더 이상 먹을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오래도록 샤워를 하고 얼큰한 해물탕과 부드러운 생크림케이크, 우유, 오렌지쥬스를 먹은 다음에 익숙한 냄새가 나는 내 침대에 누워 남편의 낮은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 익숙한 것들이 그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그립다.
추연만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지 6개월.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목욕탕과 포근하고 쾌적한 잠자리, 냉장고만 열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
그러나 이상하다. 익숙한 것들로 채워지지 않는 한구석이 생겼다. 전에는 없었던 아련한 그리움의 자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당연히 내 생애 최고의 고생을 안겨준 아프리카에 대한 그리움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이미 돌아올 때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온 커피나무 씨앗에서 파란 잎들이 돋는 것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아프리카를 향한 지독한 그리움을 앓고 있다는 것을. 그 땅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움도 때때로 힘이 된다. 진한 그리움이 조금씩 아프리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그리움의 끝에 나는 또 아프리카의 어느 땅위에 서 있을 듯하다. 그리고 또 말하겠지.
"집에 가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요. 다시는 아프리카에 오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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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아줌마인 나, 남편에게 큰소리치고 떠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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