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들고 정무에 임한 정조

학문의 르네상스를 이룬 정조의 독서습관

등록 2013.10.23 16:49수정 2013.10.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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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1752∼1800)는 조선 제22대 왕으로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1775년 12월 영조에게 대리청정의 명을 받았고, 이듬해 3월 영조가 죽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규장각을 설치하여 역대 왕의 문적이나 중국에서 보내온 수많은 책들을 거두어 수장하게 했다. 정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관리는 독서하는 선비였다. 그래서 규장각에 이가환·정약용 등을 각신(閣臣·규장각에서 근무하는 신하)으로 선발해 연구에 몰두하게 하고, 정조 자신도 이들과 밤을 새워 대화를 나누고 시정의 득실과 학문을 논했다. 각신들은 항상 책을 들고 정조의 정무를 보좌했다.

또한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 등 서얼 출신을 재주 있는 검서관으로 임명하는 등 새로운 인재양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초계문신(抄啓文臣) 제도를 실시하였다. 초계문신은 정조가 즉위 직후 정치적 세력 기반을 강화하고 정책의 연구를 진흥하려는 목적으로 재능 있고 젊은 인물들을 의정부에서 선발해 규장각에 소속시켜 학문을 연마하게 한 제도이다. 초계문신은 조선 전기의 사가독서(賜暇讀書·관리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하게 하는 것)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당대 최고의 학자와 관료들을 배출하여 그들이 19세기의 정치 개혁과 문화 창달을 주도하였다.

정조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은 책들을 읽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에 실려 있는 정조의 어렸을 때 이야기다.

"원손은 백일百日이 채 안 되어 서고, 일 년도 못 되어서 걸었다. 돌 때는 돌상으로 걸어가서 맨 먼저 붓과 먹을 만지고 책을 펴서 읽는 시늉을 하였다. 첫 돌을 맞은 아들에게 사도세자는 자신이 첫돌 때 영조로부터 받은 <소학>을 물려주었다."

말도 배우기 전에 글자 같은 것을 보면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자 사도세자가 직접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들어주었는데 놀 때면 꼭 그것을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결국 종이가 다 해지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날이 밝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독서를 했는데, 어머니 혜경궁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염려되어 일찍 일어나지 말라고 타이르자 그때부터는 남이 모르게 등불을 가리고 세수하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김정진의 <독서대왕 정조> 내용 정리).


조선의 국왕들은 몇 단계의 교육과정을 거쳤는데, 정조의 경우는 '원손, 세손, 동궁, 국왕 때의 교육과정을 거쳤다.

원손 때에는 보양관에서 <효경> <소학>을 요약한 <소학초해> <동몽선습> 등을 읽고 외웠으며, 세손 시절에는 <대학> 등 유교경전을 읽었는데 영조가 '세손의 학문이 거의 책 속에 들어가 앉겠다'라고 할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다. 


동궁 시절에는 서연(書筵)을 통해 학문을 연마했는데, 서연은 '책을 가지고 공부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는 뜻으로 유교 경전이나 사서를 읽히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정조는 이 서연을 통해 담론 중심의 토론 학습을 하였다.

국왕이 되어서는 경연(經筵)을 통하여 공부하며 정무에 임했다. 경연이란 '왕이 신하들과 함께 경전을 읽고 국정을 논의하던 일'을 말한다. 경연은 보통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의 일부분을 지정하여 읽고 신하들과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정조의 독서습관

김정진의 <독서대왕 정조>에 정조의 독서법이 잘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독서계획세우기' '여가시간 활용 독서' '집중을 통한 정독' '초록(抄錄)을 통한 분야별 독서' '독서토론' 등이다.

독서계획 세우기는 매일매일 독서의 과정을 세워 놓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하루 동안 읽을 양을 미리 정해놓고 책을 읽기 때문에 많은 책을 읽고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효과가 크다. 이 독서법은 계획 세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가시간 활용 독서는 독서하기에 좋은 여가 시간을 찾아 책을 읽는 것이다. 정조는 삼라만상이 고요하게 잠든 밤이나 맑은 새벽을 이용하여 책을 읽었는데 특히 매년 겨울이면 반드시 한 질의 책을 통독하곤 했다. 겨울밤의 여가시간 활용 독서에 대해 정조는 '독서는 언제라도 즐겁지 않은 때가 없지만, 겨울밤 깊고 적막한 때가 특히 더 좋다'고 하였다.

집중을 통한 정독에 대해 정조는 '책을 많이 읽으려고만 하지 말고 한 권의 책이라도 집중하여 치밀하게 읽어야 하며, 신기한 것을 보려고 힘쓸 것이 아니라 평상적인 것을 보아야 한다'며 '집중해서 치밀하게 읽다보면 절로 환히 깨닫는 곳이 있고, 평상적인 내용 중에 오묘한 부분이 들어 있다'고 했다. 이처럼 의미를 깊이 따져가며 정밀하게 읽는 것을 '정독'이라고 한다.

초록을 통한 분야별 독서는 한편의 글 중에서 특히 중요하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골라서 분야별로 기록해 두는 것이다. 정조는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하루도 정해 놓은 분량을 읽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읽은 책을 경(經), 사(史), 자(字), 집(集) 네 가지로 분류한 다음 독서기를 기록했다. 각각의 책 밑에 편찬한 사람과 범례(凡例·일러두기)를 상세히 기록했으며, 끝에는 어느 해에 읽었다는 것과 나의 평론을 덧붙여서 하나의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독서의 효과를 크게 하기 위해서는 읽기와 말하기, 쓰기 등의 활동이 필요한데, 말하기 활동이 곧 독서토론하기다. 정조는 독서를 할 때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옛 선비가 학문을 논하면서 '보고 들은 것이 없고서는 마음이 넓어지는 경우가 없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이라고 한 것은 스승, 친구와 토론하는 것과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을 말한다. 토론만 중요시해서도 안 되고, 독서만 중요시해서도 안 된다. 독서와 토론은 수레의 바퀴나 새의 날개와 같아서 한 가지만 버려도 학문을 할 수 없다."

이 가을 정조의 독서습관을 본받아 한권의 책에 빠져보면 어떨까.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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