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버거를 요리하는 모습마르셰에서 가장 긴 줄을 자랑하는 달달버거, 두 사람 이상 왔으면 교대로 기다려가며 주변 구경을 하는 게 좋다
이상미
긴 기다림 끝에 산 달달버거와 리예뜨를 양손에 조심스레 들고 아버지가 앉아 계신 벤치로 항했다. 오붓하게 점심식사를 하면서 아버지는 음식 사올 나를 기다리며 구경했던 사람 이야기를 하고, 나는 달달버거를 사오기 위해 얼마만큼 기다렸는지, 기다리는 뒷줄에서 사람들이 어떤 애기를 했는지를 늘어 놓았다. 갓구운 빵과 해당 점포에서 특별히 만들었다는 달달버거 특제 소스, 여기에 두툼한 패티가 어우려져 입안 가득 재료의 신선함이 전해졌다(물론 아버지 왈, "왜 이리오래 걸렸냐, 씹기가 불편하구나" 하고 다소 불평하셨지만 심각한 건 아니었다).
씹기 다소 힘들다는 아버지에게 버거 속 재료를 골고루 씹으실 수 있도록 버거 겉부분을 먹은 다음 아버지께 드렸다.
"조금 먹기 사납지만 채식버거니까 몸에 좋을 거예요, 아버지." 아빠와 공원벤치에 앉아 아웅다웅 하며 빵을 먹는 시간은 버거의 이름만큼이나 달달한 기억이다(나만 이렇게 기억하는 건 아닌지 사실 쓰는 지금도 걱정된다).
생기 가득한 맛의 세계, 물건 만든 이와 대화하는 곳모처럼 장터에 왔는데 먹기만 하고 가려니 아쉬워서 식사 후 아빠와 함께 본격적으로 장터를 둘러봤다. 히비스커스 레몬차, 사과 카스텔라나 진저시럽 등 평소 요리에 문외한인 내 귀에 이국적이고 재미있게 들리는 각종 음식들이 눈 앞에 가득했다. 음식을 보면서 괜히 들뜨는 것이 마치 어릴 적 읽은 소설 <작은아씨들>에서 라임피클이 나오는 장면을 읽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마르셰에서 생전 처음으로 밀크쨈과 바질페스토를 맛봤는데 달콤한 밀크쨈의 식감과 향기로운 바질의 맛이 인상 깊었다. 새로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지인의 말은 이런 걸 가리키는 건가 싶었다.
장터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르셰에서는 판매자가 곧 생산자 임을 알게 된다. 자신의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봐온 만큼 직접 만든 물건에 대해 들려줄 얘기도 많았나보다. 판매자들은 손님이 물건과 관련해 좀 많다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물어보아도 성내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맛의 비밀을 알리지 않겠다는 듯 "다른 분이 만드시면 이런 맛이 안 나요"라며 조금 튕기시던(!) 언니도 있었다. 그밖에 소금 색이 신기하다는 말에 흑초를 물들여서 그런 거라며 식재료의 효능을 열심히 설명해준다거나 자신이 직접 만든 양초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이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아버지와 장터를 둘러보면서 물건을 꼭 사지 않아도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을 수 있었다.
판매자와 생산자 사이의 대화야말로 요즘 좀처럼 장을 보면서 즐길 수 없었던 마르셰만의 재미였다. 아버지 입장에서 안 즐거웠으면 어쩌지 싶지만 아버지는 내가 물어보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재미있다 말씀하실 테니까 굳이 아버지에게 묻지 않고 그저 서로 사소한얘기를 나누며 엄마와 남동생이 먹을 간식거리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시집을 간다거나 알바로 생계유지를 하는 프리터 생활을 그만두고 직장에라도 나간다면 아버지와 어울릴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점점 내 길을 찾아간다면 아버지와 투닥거리며 채식버거를 먹을 날도 별로 없겠지 싶다. 함께하는 지금만큼은 아버지와 종종 데이트를 할 생각이다. 피곤한 아버지에게 향긋한 채식버거를 권하는 일 같은 사건을 할 수 있는 한 자꾸 벌이겠다. 차곡차곡 추억의 저장고에 넣어두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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