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입원환자였던 갑상 할아버지의 손이다. 작은 손에는 성한 손톱이 없었다.
김미선
갑상 할아버지의 병명은 심장협심증과 전립선염이다. 고장 난 심장은 이따금 각 신체장기에 원활하게 피를 보내지 못한다. 온몸이 마비될 때 그의 환자복은 땀에 흠뻑 젖어 바닥으로 물이 줄줄 떨어진다. 입술은 거무죽죽한 보랏빛으로 변색되고, 살가죽은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인 것처럼 쭈글해진다. 평상시에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 갑상 할아버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
그의 어머니도 진주의료원에서 임종을 맞았다. 어머니 병 수발 기간까지 따지면 23년. 세상 속 어느 하나 의지할 곳 없는 갑상 할아버지에게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은 마지막 비빌 언덕이었다. 그러다 지난 3월 진주의료원이 폐업하니 나가 달라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버텼다. 진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경남도직원이 병실로 찾아왔다. 병원을 나가라고 했다. 갑상 할아버지는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에 욕으로라도 저항했다. "난 갈 곳이 없거든, 그래서 뭐든 해야겠더라고."
병원 내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찾아가던 3월 18일. 갑상 할아버지는 협심증 응급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챙기고, 병실문을 나섰다. 동행하기 위해서다. 미선씨는 그의 심장에 박혀 있는 시한폭탄을 염려했다. "우쨀라고 그러는지 참으로 걱정되가지고, 가지말라 말렸는데도 도통 말을 안 듣더라고예." 할아버지의 심지는 굳었다. 그는 경찰과 도 직원들로 사수된 경남도청 앞으로 걸어갔다.
"이 자아슥들아! 나보고 어딜 가라는 게야!"한껏 목청을 높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았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오랜 약투병 생활로 약해져 으깨지고, 부서진 손톱이 너덜너덜 달라붙어 있는 손을 움켜쥔 채 그는 안간힘을 썼다. 옆에서 지켜보던 미선씨는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만 같았다. 그를 달래 박스가 펼쳐진 찬 바닥으로 앉혔다. 이걸 보고 또 어떤 언론사에선 "환자들 이용해서 감정 호소한다"라고 보도하겠지, 이런 씁쓸한 생각이 나 울컥했다.
그의 용기는 헛짓이었을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기적은 없었다. 거의 마지막까지 진주의료원에 남아있던 갑상 할아버지도 사천중앙병원 요양 병동으로 전원했다. 요새 그는 복도를 혼자 서성여 떠돌이라 불린다. 계단을 산처럼 오르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 미선씨를 찾기도 한다. 배로 늘어난 병원비, 응급수술 후 심해진 증세, 언제 병원을 옮겨야 할지 모르는 불안함. 그러나 그 무엇보다 외로움이 그를 지치게 한다.
생명권은 없었다보건의료노조는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7일까지 진주의료원의 휴·폐업 결정 이후 타의적으로 전·퇴원하게 된 환자,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1차 실태 조사를 했다. 전화 대상자는 자발적 전·퇴원 환자를 뺀 104명. 응답자는 42명이었다. 그중 29명만이 입원기관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었고, 나머지 13명은 입원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29명 중 22명이 스스로 옮겨갈 병원을 물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10명이 입원거부를 당하는 등 불편을 겪거나, 입원을 거부당해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기도 했다. 자택치료 중인 환자 13명 중 5명은 입원을 거부당해 입원을 포기한 경우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 3월 18일 "진주의료원을 폐업해도 환자는 끝까지 책임지겠다"며 "병원을 옮겨서 비용이 추가발생하면 전액 예산에서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응답자 중에서 경남도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환자는 없었다.
지난 9월 9일부터 23일까지 진주의료원에서 강제퇴원 당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2차 실태 조사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현재까지 29명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육성은 모두 고통스럽다. "퇴원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 다른 병원에서는 잘 안 받아주기 때문에 하루하루 걱정이었다.", "불안해서 살아서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서 나가는 게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폐업 발표 후 면사무소에서 걸려오는 전화와 불안감으로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전수조사에 나서며 근래까지 환자들과의 연결을 유지해오던 간호사 이영빈씨. 지난 10월 5일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호소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서 그를 만났다. 곁에서 상황을 지켜본 영빈씨에게 '폐업의 과정과 환자들의 건강상태 악화 및 죽음의 연관성'을 물었다. 질문에 담긴 폭력성이 느껴져서일까.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문을 뗐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이 100으로 주어졌다고 해봐요. 그 사람은 100만큼 살 수 있던 거예요. 그런데 이번 일로 99, 98 정도만 살게 된 건 아닐까요? 더 살 수 있던 하루를 빼앗긴 것은 아닐까요?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어요. 그건 생명의 값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일 거예요. 어차피 죽을 거였고, 늙은 사람들이었으니깐, 세상에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니깐,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근데 어떻게 그래요?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죄스러워요. 죽은 사람들은 잊혀지겠죠. 아니 잊혀졌잖아요."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선되면서 곧바로 12월 20일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진주의료원이 왜 이렇게 됐느냐에 대해 10일 만에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월 26일 폐업 방침을 발표했다. 병원 내의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소통은 없었다.
그는 진주의료원 관련 국회 국정조사를 거부한 데 이어, 지난 10월 30일 열린 경남도 국정감사에서 "진주의료원은 국정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요지부동 태도로 일관했다. 지난 10월 한 토크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주의료업 폐업에 대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진주의료원이 없어졌다고 공공의료가 없어진 게 아니라 공공병원 '하나'가 없어진 거예요." 그 하나가 없어지는 8개월 동안 환자들의 생명권은 송두리째 뽑혔다. 미선씨의 의문은 묵직하다.
"사실요. 전 정말 답답한 게요. 강성노조다, 직원들이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근무 태만이었다, 뭐 이런 이유로 청산한다고 했잖습니까. 그 사람들 말마따나 저희가 잘 못한 거면요. 저희만 내쫓으면 되잖아요. 근데 왜 환자들까지 이렇게 쫓겨냅니까. 그게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납득할 수가 없어요. 적자가 문제면, 잠시 문을 닫고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적자를 고쳐갈 수도 있었잖아예. 그 적자란 게 공공의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것이었고, 건물 이전하면서 불거진 거예요. 조사해보니깐 다른 의료원들도 저희만큼, 더 많은 곳도 있었어요.그런데도 무조건 청산한다는 게. 그것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게. 혹시 홍 도지사가 한 번만 병원을 방문해서 어떤 환자들이 머물고 있는지 직접 봤다면, 이렇게까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서로 대화도 좀 하고 의견도 들어보면서, 조금만 다른 방법으로, 아니 천천히 라도 진행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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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퇴원 8개월... 그들에게 생명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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