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도 있고, 수달도 사는... 그런 섬이 있다고?

흑산도와 홍도 사이에 있는 장도 습지를 찾다

등록 2013.11.06 16:20수정 2013.11.0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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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 바라본 대장도 지난해 만들어진 장도 습지전시관 뒤로 생태 탐방로를 따라 30여 분 오르면 9만평방미터에 달하는 고산습지가 나온다. 이곳은 도서지역 산지 습지로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포구에서 바라본 대장도지난해 만들어진 장도 습지전시관 뒤로 생태 탐방로를 따라 30여 분 오르면 9만평방미터에 달하는 고산습지가 나온다. 이곳은 도서지역 산지 습지로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이철재

목포에서 약 100km. 서해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중 하나로 흑산도와 홍도 사이에 위치한 전남 신안군 장도는 동서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모양 때문에 장도(長島)라 불린다. 장도는 무인도인 소장도와 57가구 100여 명(2011년 기준)이 살고 있는 대장도로 구성돼 있다. 바다 가운데 우람하게 솟아 있는 대장도의 모습에서 얼핏 4성 장군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3일, 일행들과 장도를 찾았다. 장도에 가려면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2시간을 내달려 흑산도에 와서 조그만 어선으로 갈아타고 20여 분을 더 들어가야 한다. 흑산도와 장도 사이는 급하고 거친 물살이 있는데, 배가 이곳을 지날 때면 위아래, 좌우로 요동을 치면서 바닷물이 튀어 오른다. 생존본능이랄까? 순간 뭐라도 잡고 싶지만, 일행을 태운 고기잡이배는 너무도 작아서 그럴 만한 것도 없다.


장도 선착장 앞에는 이 섬 주민들의 주 소득원 중에 하나인 전복과 우럭 가두리 양식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 주민은 키우는 해산물의 몸값(?)에 따라 양식장을 달리 부른다. 가격이 비교적 싼 다시마와 미역은 '오피스텔'과 '원룸'이라 하고, 비싼 전복과 우럭은 '맨션' 또는 '아파트'라고 한다. 장도 주민들에게는 봄부터 가을까지의 멸치잡이도 주요 소득원이다.

일행 중에 흑산도가 고향인 선배가 있었다. 예전 멸치잡이 배가 포구 인근에서 돌아다닐 때면(현재처럼 쌍끌이 어선이 아닌 야간에 불을 밝게 켜놓고 배 두 대가 협력해서 고기를 잡는 멸치잡이), 양동이와 초고추장을 들고 방파제로 올랐다고 한다. 그물을 피해 멸치들이 제방으로 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잡은, 아니 주워온 싱싱한 멸치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야말로 최고의 술안주라는 것이다. 선배의 옛이야기만으로도 입안에는 침이 고였다.

흑산도에서 바라본 장도 섬의 형태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는 의미로 장도라 불린다.
흑산도에서 바라본 장도섬의 형태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는 의미로 장도라 불린다. 이철재

도서 지역에 고산습지가 생긴 수 있었던 이유는?

흑산도와 장도부근 바다는 서해지만 황토빛이 아니다. 옥을 갈아 물에 풀어 놓은 듯 푸른빛이 반짝이고 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맑은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장도는 교통이 좋지 않아서인지, 다른 섬과 달리 여름철에도 관광객이 많지 않다고 한다. 조용한 이곳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장도의 독특한 자연 환경 때문이다. 2003년 도서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고산습지가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장도 선착장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도 습지 홍보관이다. 지난 6월 개관한 이곳은 장도 산지습지에 살고 있는 생물종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일행은 홍보관을 둘러보고 습지가 위치한 산 정상부로 발길을 옮겼다. 나무데크 탐방로를 따라 30여분, 산봉우리 두 개 사이에 분지형태의 습지가 눈에 들어온다.


짙은 해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나무들로 채워진 다른 지형과 다르게 습지의 중심부에는 키 작은 풀들이 자리 잡고 있고, 물을 모으는 집수정으로 보이는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장도 산지습지는 2004년 8월 환경부가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했고, 이듬해인 2005년 3월 창녕 우포늪(1998), 대왕산 용늪(1999)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째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참고로 람사르에 등록된 우리나라 습지는 2012년까지 총 18곳이다.

육지가 아닌 섬 가운데 해발 273m 높이에 9만여㎡의 습지가 형성되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곳의 독특한 지형과 자연환경이 습지를 키웠다고 말하고 있다. 장도에 고산습지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이곳이 스푼 모양의 형태라 물을 담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도는 다도해의 다른 섬들과 달리 변성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지질구조라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장도 산지습지의 이탄층 장도 습지 홍보관에 전시된 이탄층. 이탄층은 식물이 썩지 않고 쌓여 있는 층을 말하는데, 함수 능력과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나다.
장도 산지습지의 이탄층장도 습지 홍보관에 전시된 이탄층. 이탄층은 식물이 썩지 않고 쌓여 있는 층을 말하는데, 함수 능력과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나다. 이철재

게다가 30cm의 이탄층이 발달해 항상 물을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이탄층은 기온이 낮고, 물이 많은 곳에서 식물이 죽어도 썩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는 형태를 말한다. 이탄층은 마치 스펀지처럼 물을 저장하고 수질 정화 기능을 한다. 또다른 이유는 바로 해무다. 장도의 지형상 바람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부는데, 이때 산정상에서 수분이 많은 바다 구름이 머물게 된다. 해무는 장도 산지습지에 수분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수분의 증발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물을 머금은 습지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보물이다. 신안군의 우의도 등에서는 올 여름 가뭄 탓에 육지에서 생수를 공급해야 했다. 장도의 강수량은 연간 1100mm로 소우지역에 해당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습지에서 내려온 물을 365일 식수 및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20여 년 전에는 인근의 홍도에서 물을 구하러 장도까지 오기도 했다고 한다.

장도 산지습지 장도의 두개의 산봉오리 사이로 9만여 평방미터에 달하는 습지가 형성돼 있다.
장도 산지습지장도의 두개의 산봉오리 사이로 9만여 평방미터에 달하는 습지가 형성돼 있다. 이철재

수달이 살고 있는 섬

습지는 사람 이외의 생명들에게도 귀중한 터전이 되어 준다. 장도에는 천연기념물 매(323-7호), 흑비둘기(215호) 등과 함께 205종의 야생동물과 보춘화(춘란) 등 습지식물 294종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습지가 있어 다양한 동식물이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장도에 살고 있는 동물 중에 천연기념물 수달도 포함되어 있다. 민물에 살고 있는 놈이 어떻게 바다 한가운데 섬에 살아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섬 주민들에게 수달을 봤는지 물어봤지만, 자신들도 얘기만 들었을 뿐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장도에 정말 수달이 살고 있는 것일까?

장도 습지에 살고 있느 멸종위기종 11종의 멸종위기종에는 수달 등 천연기념물 4종이 포함돼 있다. 장도에는 205종을 동물과 294종의 습지식물이 서식하고있다.
장도 습지에 살고 있느 멸종위기종11종의 멸종위기종에는 수달 등 천연기념물 4종이 포함돼 있다. 장도에는 205종을 동물과 294종의 습지식물이 서식하고있다. 이철재

이에 대해 신안군 증도갯벌생태전시관 유영업 관장은 "같은 섬인 증도에서도 수달을 발견했다"면서 "장도에도 수달이 살고 있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에 방영된 EBS 환경프로그램 <하나뿐인 지구>에서도 해안가 바위 부근에서 발견된 수달의 배설물을 보여줬다. 야행성인데다, 자신의 영역 표시를 위해 배설을 하는 수달의 특성상 장도에 수달이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이야기다.

사실 수달이 살고 있는 섬은 장도만이 아니다. 경남 통영시 비진도에는 수달 무리가 살고 있다. 인근 가두리 양식장에서 손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수달이 민물을 벗어나 멀리 바다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더욱이 비진도에는 숲이 발달하고 민물이 있어 수달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장도 역시 풍부한 먹잇감과 울창한 숲 그리고 마르지 않는 습지가 있는 등 수달이 생활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소장도와 흑산도 정면으로 소장도의 모습과 우측으로 흑산도의 모습이 보인다. 장도는 습지가 있기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 그 평화로운 공존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기원해 본다.
소장도와 흑산도정면으로 소장도의 모습과 우측으로 흑산도의 모습이 보인다. 장도는 습지가 있기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 그 평화로운 공존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기원해 본다.이철재

장도 주민들은 습지 보전을 위해 소 방목과 논 경작을 중지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생명수이자 뭇 생명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장도 고산 습지에서 내려오는 길, 시원한 해풍이 구름을 걷어내면서 흑산도가 눈앞에 들어온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장도의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원해 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장도 #고산습지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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