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심심하고 별 것 없는 백수의 하루

[소설-엘라에게 쓰는 편지] 10편

등록 2013.11.09 12:56수정 2013.11.0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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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엘라


엘라 거긴 어때? 한국은 벚꽃 땜에 난리야. 매 년 이맘때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아. 여의도 윤중로에 가보고 싶었는데 그냥 참았어. 지금 내가 어딜 갈 처지는 아닌 것 같아.

얼마 전부터 다시 새로운 스터디에 나가기 시작했어. 저번에 했던 거는 너무 춥고 일요일에 너무 일찍 해서 몇 번 나가지도 못하고 그만뒀거든. 흐지부지 된 것도 있고. 이번에는 문과계열 사람들만 모여서 하는 거라 직군도 비슷하고 주로 공연이나 미디어 쪽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통하는 것 같아.

솔직히 스터디 뽑히는 것도 경쟁이 엄청 심해. 메일을 보내고 기다리는데 답장 안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야. 게다가 수원에서 하는 스터디는 많지 않아. 돈도 못 벌고 놀고 있는데 서울까지 가면 돈도 돈이고 시간도 너무 많이 뺏기고 왔다갔다 힘든데 잘 된 거지 뭐.

어제 첫 모임 다녀왔는데 사람들은 다 좋은 것 같아. 금융권 쪽 준비하는 사람도 몇 있었고. 근데 나는 금융 쪽은 전혀 관심이 없어서 지루하긴 하더라. 무슨 자료 준비해서 같이 읽어보고 질문 하고 이력서랑 자기소개서 서로 읽어 봐주고 그런 거거든. 다음번에는 모의면접도 한 대. 암튼 모여서 차 마시고 이야기하니까 시간이 잘 가더라. 솔직히 한 시간 반 했는데 나는 더 했으면 했어.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는 거라. 집 밖에 안 나간지도 오래 되었거든.

아참 내가 요즘 내 생활 말해줄게.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오천 원을 지갑에 넣어. 더 넣으면 안 돼. 그러면 돈을 너무 많이 쓰거든. 그리고 노트북을 가방에 넣은 다음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카페에 가. 왜냐면 도서관 열람실에는 자리가 없거든. 자리를 맡으려면 새벽까지 나가야해. 대신에 카페는 오래 있어도 눈치가 덜 보이거든. 그래서 일주일에 세 네 번은 가는 것 같아.


내 지정석이 있어. 창가 쪽 두 번째 자리. 콘센트도 바로 연결할 수 있고 바깥도 보이면서 카운터 쪽에서는 내가 잘 안 보이는. 커피를 한 입 들이키고는 컴퓨터를 켜지. 일단 취업사이트로 가서 공채소식을 확인해. 그러면 마감일을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그 날 지원해야 하는 회사를 확인하고 지원서를 작성해. 그리고 인터넷을 좀 하다가 취업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사람들 글도 읽어보고 시간을 때워. 점심때쯤 되면 영화 같은 거 다운받아서 보고. 그러다보면 4시쯤 되는데 그러면 짐을 싸서 집으로 가. 그리고 저녁 먹고 방에서 인터넷 하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자. 그리고 이튿날 10시쯤 일어나서 또 집을 나서지. 이제 취업스터디 가는 것도 추가네. 암튼 나 이렇게 살아.

그러고 보니까 너랑 있을 때가 그립다. 진짜 먼슬리 패스 하나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99센트짜리 애리조나 티 사서 먹고 도서관에서 수다삼매경. 날씨 좋은 날은 너 네 교회도 가고 농구도 하고 그랬잖아. 그때가 참 그립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냥 너랑 같이 봤던 영화도 생각나고 메트로타운역에서 옷도 이것저것 입어보면서 낄낄 거리던 생각도 난다. 해변에서 바비큐 파티 했던 것도. 돈은 많지 않았어도 즐거웠는데.


그때는 진짜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어.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어.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데 시시덕거렸지. 그 벌을 지금 받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무시했던 아이들은 오히려 일도 하고 멋지게 사는데 나는 지금 너무 초라해. 초라해 미치겠어. 엘라, 네가 너무 보고 싶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취준 #백수 #하루일과 #취업 #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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