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취준생의 타이틀을 벗어버리게 되었어

[소설-엘라에게 쓰는 편지] 11편

등록 2013.11.16 18:09수정 2013.11.1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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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엘라


엘라, 드디어 너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줄 수 있게 되었어. 나는 항상 이 취업준비를 하는 이 시기가 마치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았거든. 저 멀리 희미하게 빛은 보이지만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희망고문과도 같은. 하지만 나 드디어 그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아.

며칠 전, 아는 선생님이 나에게 취업공고를 본 게 있다면서 건네주셨어. 보니까 영어를 쓸 줄 알면서 제2외국어도 구사할 줄 아는 신입사원을 뽑는다는데 작은 회사이기는 한데 이력서랑 자소서만 접수하고 면접도 한 번만 보면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지원해봤어. 사실 이제 더 이상 공채를 준비할 힘도 없고 더 기다리기도 싫고 공연일 만 고집할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지원한 다음날 오후에 전화가 왔어.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왔길 래 혹시나 하고 받았더니 맞아, 그 회사였어. 그리고 그 다음날 면접을 보러갔지. 하도 많이 떨어졌으니까 기대도 하나도 안 해서 그런지 몰라도 별로 긴장은 되지 않았어.

"저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차 한 잔 드릴까요?"

회사에 도착해서 처음 입구에 들어갔더니 데스크직원이 잠시 기다리라면서 따뜻한 녹차를 건네줬어. 그리고 면접을 보러갔는데 시작하기도 전에 영어로 작문과 번역을 하라면서 종이를 건네주는 거야. 인보이스랑 사업제안서 같은 거였는데 생각보다 번역이 쉽게 잘 안 되는거야. 원래 영어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시간을 40분 줬는데 문제는 다 하고 나서보니 글씨도 엉망이고 여기저기 줄을 그어놔서 지저분했어. 그래서 다시 옮겨 쓰겠다고 종이를 달라고 했더니 안 된데. 그래서 나는 이미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지. 그리고 면접을 하는데 이상하게 말을 꼬이는 거야. 회사상호를 줄여서 말해야 하는데 자꾸 입이 안 풀어졌는지 실수를 해서 팀장님이 몇 번이나 자기네 회사이름이 원래 어렵다고 다들 실수를 많이 한다고 했어.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지.


반복되는 실수에 자신감은 점점 잃어가고 면접이 끝나갈 때쯤 내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었지. 보지 못했어도 알 수 있었어. 그런데 마지막에 팀장님이 갑자기 이력서를 다시 보더니 나한테 취미를 물어보는 거야.

"여기 취미가 농구라고 되어 있는데 맞나?"
"네, 맞습니다."
"포지션은 뭐지?"
"가드입니다."
"오호, 여자가 농구 하는 사람은 드문데?"
"네, 친구가 좋아해서 농구를 하게 되었고 전문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아마추어 팀에서 꽤 오래 했습니다. 한, 10년 정도 했습니다."
"그래?"

그 순간 나를 바라보는 팀장님의 눈빛이 번뜩인 걸 나는 알아챘지. 하지만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게다가 면접 마지막 질문이 취미에 관한 것이라는 게 찝찝했어. 그리고 돌아서 나오는데 이 회사를 다시 못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동네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집에 와서는 얼었던 몸 좀 이불 속에서 녹이고 그대로 자버렸어.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합격전화를 받았지. 내가 근 일 년 동안 그렇게 바라고 또 바라던 전화. 하지만 나는 기뻐하지 못했어. 가끔 취업사이트에 보면 소기업은 합격이라고 했다가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봤거든. 그래서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엄마한테 말했어.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데?"

그러자 엄마의 눈이 글썽 거리는 거야. 나는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코트를 챙겨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 한참을 걷고 또 걷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 드디어 나는 이 터널을 벗어난 것 같다고. 그리고 너에게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어.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너무 궁금해. 평소의 너처럼 호들갑을 떨었을까? 아니면 의외로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꽉 안아줬을까? 네가 지금 여기 바로 내 옆에 있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그래도 이런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게 기뻐. 벌써 사무용 엑셀책을 한 권 사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영어로 쓰는 비즈니스 이메일이라는 책도 더 꼼꼼히 들춰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합격만 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걱정이 더 앞서네. 취업의 기쁨을 즐길 틈도 없이 말이야. 엘라, 나 정말 기뻐. 너도 기뻐해줄래?
#취업 #취준 #백수 #면접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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