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 이상에게 같은 내용을 들으면 믿게 되어 있다

[착한 정치컨설팅(8)] 국가기관의 온라인판 '구전홍보전략'의 실체

등록 2013.11.22 20:09수정 2013.11.22 20:09
0
원고료로 응원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직원 감금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러난 것이 '겨우 73건'이었고 개인적인 일탈행위로 치부되었지요. 그런 과정을 거치다가 원세훈과 김용판 이름이 들먹거려지더니 권은희가 알려집니다. 채동욱은 검찰총장에서 쫓겨나고 윤석열도 항명의 이름으로 중징계를 당합니다. 이뿐만 아니지요. 국가기관의 위기상황이 도래할 때마다 NLL대화록은 까발려지고,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내란음모'사건이 터집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서 살고 있나요?

한가하게 선거 전략에 관한 글을 쓰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모든 사단은 국가기관이 어설픈 '구전홍보전략'을 온라인을 통해 구현하다가 이 난리가 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번에는 이슈의 확산과 셈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했습니다만,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오늘은 '구전홍보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국가기관은 어떤 오류를 저질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기자 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구전홍보' 전략

흔히들 구전홍보를 한다고 하면 입에서 입으로 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 간단하다 보니 선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중요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또 선거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저 '입소문을 내면 된다.'라는 인식 정도에 그칩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선거 시기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전략입니다. 왜냐하면 '구전홍보'전략이라는 것은 상대방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이 기사에 댓글을 다는 것을 넘어서 관리하는 매체에 기사를 청탁하고 또 이를 트위터로 '무한RT'를 했다고 합니다. 그 건수가 121만 건이라고 하니 국정원은 사활을 걸고 온라인 구전홍보를 한 것입니다. 국가기관이 정치에 개입을 했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 대단히 큰 영향력을 미친 것입니다. 트위터로 RT하는 것이 과연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요? 제가 증명하지요.

구전홍보 전략의 다른 이름, 사면초가(四面楚歌) 전략

독자 여러분께서는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바로 구전홍보 전략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대해서 '사면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적어 놓았네요. 하나는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이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 孤立無援(고립무원)의 상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방으로부터 비난을 받음'이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 두 가지 의미는 같은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한(漢)나라 왕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왕 항우(項羽)는 개와 고양이처럼 늘 싸웠습니다. 하지만 싸우는 것도 지쳤는지 항우는 유방에게 홍구를 경계로 휴전을 제의합니다. 그 결과 홍구 서쪽을 유방의 한나라 영토로, 동쪽을 항우의 초나라 영토로 하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입니다.

전쟁이 끝났으니까 집으로 돌아가야겠죠? 초나라 항우는 즉각 초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유방도 짐을 싸고 있는데 측근인 장량과 진평이 말립니다.

"장군~ 기회는 이때입니다! 지금 항우를 뒤쫓아 가서 쳐야 합니다!"

유방이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장량과 진평의 말이 맞더란 말이지요. 그래서 즉각 항우를 추격하게 됩니다. 결국 해하(垓下)라는 곳에서 항우를 겹겹이 포위합니다. 항우는 군사력도 부족하고 식량도 부족해서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유방의 군사도 항우의 군사와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결코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내상을 크게 입을 우려가 있는 것이죠.

이에 장량이 꾀를 냈습니다. 초나라 출신 장병들을 항우 진영 가까이 배치하고 밤에 구슬픈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한 것입니다. 겹겹이 포위를 했다고 하지만 한쪽 구석은 뻥 뚫어서 초나라 병사들이 도망갈 구멍을 마련해 놓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온다는 의미죠. 우리로 치면 아마 아주 구슬프게 '아리~라앙, 아리랑, 아라리요~'를 부르는 것쯤 되겠죠?

항우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 벌써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얻었단 말인가? 어째서 이렇게 초나라 사람이 많단 말인가. 흑흑흑.'

항우는 완전히 전의(戰意)를 상실했습니다.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풉니다. 초나라 병사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서 겨우 기병대 28명만 남았습니다. 결국 항우는 자결을 할 수밖에 없었고 천하는 유방의 손에 들어갔습니다.(<史記(사기)> 項羽本紀(항우본기)에서 재구성)

현대판 장량의 꾀, 온라인 구전홍보전략

이렇듯 '四面楚歌(사면초가)'는 사방이 완전히 적으로 둘러싸여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원래 내 편이었던 사람까지 적에게 가담하고 있는 비참한 처지를 뜻하기도 하고요,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사방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도 '사면초가에 빠졌다'라고 표현합니다.

사면초가 전략이 더 무서운 것은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것입니다. 직접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흑색선전 또는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부에서 '그렇다'고 오인하고 무너져 내리도록 유도하는 전략이기 때문이죠. 항우가 사력을 다해서 싸웠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르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항우는 전쟁에서 '졌다'고 인정을 했고 이로 인해 병사들도 뿔뿔이 흩어진 것입니다. 유방은 싸우지 않고도 항우를 무찔렀던 것입니다.

지난 대선 기간에 국정원은 현대판 장량의 꾀를 낸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구전홍보를 한 것이지요. 더 나쁜 것은 상대방(문재인 진영)에 대하여 단순하게 (온라인으로) 에워싸고 포위해서 무력하게 만들려는 목적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를 사용한 국정원 요원들이 또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저주를 하고 욕을 하면서 마타도어, 흑색선전, 중상모략과 비방을 한 것입니다. 무력화 혹은 전의상실 이상의 나쁜 짓을 한 것입니다.

세 사람 이상의 사람에게 같은 내용을 들으면 사람은 믿는다

선거 시기에 모든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흥분상태입니다. 후보자 자신은 물론이고 선거 운동원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과 언론들도 모두 흥분합니다. 고도의 심리전이 가능한 조건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구전홍보 전략이 제대로 먹혀듭니다.

저는 정치아카데미에서 이 구전홍보 전략을 설명할 때 이 사면초가(四面楚歌)전략을 예시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 강의하러 오고 있는데 아, 글쎄 버스기사 아저씨가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최요한 선생, 혹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 들으셨소?"

저는 뭐 이런 실없는 농담이 다 있나 생각을 했습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 서울 한 복판에 호랑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서 식당을 갔는데 식당 아주머니께서 제게 또 같은 말을 합니다.

"어휴~ 시청 광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데 못 들어보셨어요?"

사람이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에게 같은 내용, 시청 앞 광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강의를 하러 여기 왔는데 여러분 중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죠.

"최 교수님! 혹시… 시청 앞 광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사람이 다치지나 않았을까요?"
"헉!"

저는 곧장 아내에게 전화를 합니다.

"여보, 여보, 지금 서울시청 광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막 물고 난리가 났대요…. 동물원에서 탈출했나봐…. 절대 시청 쪽으로 가면 안 돼요~."

저는 호랑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호랑이의 털끝도 보지 못했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에 과장된 내용을 덧붙여서 제 처에게 이야기를 전파합니다. 사람은 같은 내용을 다른 세 사람에게 들었을 경우 그 내용을 100% 진실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구전홍보는 말도 안 되는 사실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거짓말도,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되면 사실로 착각하게 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호랑이를 본 것처럼 절대 확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도의 심리전에 이용당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꼭 강조를 합니다. "이 구전홍보를 포지티브로 사용해야지 네거티브로 사용하면 절대로 안 된다, 네거티브로 사용하는 순간 유언비어 유포가 되고, 명예훼손이 되며, 선거에서는 무효가 될 정도로 중대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국가정보원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매체에 기사를 청탁을 하고 또 댓글을 달았습니다. 또 댓글을 다는 수준을 넘어서 121만 건이나 되는 리트윗을 함으로써 스스로 국가기관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안보를 미명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새누리당은 조직적으로 NLL 대화록을 공개합니다. 국정원 개혁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RO조직이 대한민국을 전복한다며 협박을 합니다. 경찰은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법을 운운하면서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이 국가 권력들, 권력의 사조직이 된 이들에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치 지도자의 덕목은 국민에게 '항복'하는 것

그렇게 오랫동안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을 지켜보았을 텐데도 정치 지도자의 덕목을 모르는 것 같아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몇 년 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재평가를 하자는 뉴라이트 일각의 주장에 맞서 한국일보의 서화숙 기자는 정치인의 덕목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정치가를 판단할 때는 '그 사람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확립했는가?', '그 사람이 얼마나 인권을 잘 지켰는가?'가 가장 큰 잣대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에 대한 가장 큰 가치판단은 '그가 민주주의를 확립하는데 기여를 했는가?', '그가 국민의 마땅한 권리인 인권을 유린하지 않고 얼마나 잘 지켜 주었는가?'로 판단해야 한다는 일갈입니다.

아주 당연하고도 지극히 상식적인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한심하기도 하지만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현실에 침묵을 하고 있으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없습니다. 국가기관이 정치에 개입을 함으로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의 마땅한 권리를 유린한 것은 우리의 역사를 깔보고 무시하는 방약무인(傍若無人)의 태도입니다.

정치인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고 타이밍을 놓칠 수 있습니다. 섭섭하게도 현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내용도 없고 실속도 없는 창조경제 이야기만 반복하지 마시고, 5년 내내 '합법적 대통령이 아닙니다'라는 이야기 듣지 마시고, '오랜 가뭄 끝에 이 강토에 단비를 내리게 하고 떠나시더니 돌아오신 오늘은 지루한 장마 끝에 남국의 화사한 햇빛을 안고 귀국'하지 마시고, 국민에게 항복을 하십시오.

2013년 11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그리고 국민의 인권을 확립하는 것과 더불어 국민에게 항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독재자의 특징은(이것은 김일성과 박정희에게도 해당이 됩니다만) 정치 지도자의 직관에서 절대적 진리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천재적인 직관력으로 통치를 하는 정치 지도자는 자연스레 위인 이상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며 신격화 되고 우상화 됩니다.

이것은 파시즘과 나치즘의 특징이자 대부분의 독재자가 취하는 방식입니다. 바로 여기서 "위대한 수령" 운운하게 되거나 "단군 이래 최대의 지도자"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히틀러나 무솔리니, 그리고 그에 복무하는 언론들이 직관으로 진리를 꿰뚫었다고 주장을 하지만 민초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a

미친 듯이 열광하는 나치군중과 이를 거부하는 어거스트 랜트메써 ⓒ DIE ZEIT


동그라미 안에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어거스트 랜트메써'라는 사람이고 이 사진은 193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있었던 진수식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이 어거스트 랜트메써 씨는 취업을 위해 '나치당'에 가입을 했습니다. 하지만 유태여성인 '이르마 에클러'와 결혼을 한 죄로 2년간 중노동에 처해졌다고 합니다.(에클러 자신도 스스로 유태인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네요.)

물론 후에 부부관계를 부정해서 풀려나긴 합니다만 다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에클러는 1942년, 랜트메써는 1944년에 사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사연은 뿔뿔이 흩어져서 키워졌던 이들 부부의 두 딸이 1991년, 우연히 신문에 실린 이 사진을 보고서 알려진 것이라고 하네요.

지금 말을 하지 않는 수많은 어거스트 랜트메써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더 늦으면 저렇게 손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손을 내리고 팔짱을 끼게 될지 모릅니다. 국민들이 저 손을 내리는 순간, 나치는 망했고, 무솔리니는 죽었고, 군부독재는 끝이 났습니다. 그 순간이 지금 다가오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원래 구전홍보전략은 언론퍼블리시티 전략과 함께 나중에 기술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변하고 있어서 먼저 설명을 했습니다. 핵심은 선거 시기에 유권자는 '세 사람 이상에게 같은 내용을 듣게 되면 그 내용을 완전히 믿어버린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국정원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를 교묘하게 선동을 한 것이지요. 다음 연재는 약속했던 대로 '이슈의 확산조건'과 '이슈의 셈법'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정원 #구전홍보전략 #선거전략 #사면초가 #어거스트 랜트메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