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이 '범죄자'?...'일 판결' 과거사 청산 필요

[주장] 우리 정부, 인권 제기하려면 먼저 인권 지켜야

등록 2013.11.25 13:57수정 2013.11.2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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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1월 19일 "일본에서 안중근은 범죄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격동의 시대, 위기의 시대인 20세기 초 동아시아 3개국에 깊은 영향을 미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한국과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특히 우리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안중근 의사의 사상과 철학, 행동이 대한민국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의 사상과 철학, 행동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이룬다. 비록 사상, 행동, 출신이 다르다 하더라도 이들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새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에 반영되었다.

그 중에서도 안중근 의사는 특별하고 특별하다. 독립운동 초기에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국제적인 시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제로 안중근 의사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안중근, '한국 독립'뿐 아니라 '동양 평화' 위해 총 쏜 것

안중근 의사는 단순히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만'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쏜 것은 아니었다. '동양의 평화'라는 큰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번 거사는 나 개인을 위해 한 것이 아니고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다. 만약에 이등박문이 생존한다면 한국 뿐 아니라 일본도 드디어 멸망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등박문이 사망한 이상 앞으로 일본은 충분히 한국 독립을 보호하여 실로 한국으로서는 크게 행복하고 금후 동양 기타 각국의 평화를 보존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은 식민지로 전락했고 일본은 전쟁국가가 되어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세계 평화를 위협했지만 전쟁에서 져 이토 히로부미가 꿈꾸었던, 아시아의 제국 일본은 멸망했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예측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사상은 전쟁을 초래했고 안중근 의사의 사상은 평화를 불러온다. 영토분쟁과 역사논쟁으로 동아시아의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평화를 갈파한 안중근 의사가 다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일, '역사의 평가'와 다른 '법원의 평가'로 과거 국가범죄 정당화


일본 정부가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로 폄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용적으로는 동양의 평화를 파괴했던 과거를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고 형식적으로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법원-정부의 평가와 역사의 평가가 갈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야  역사의 평가가 항상 우위에 선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미개한 국가에서 일시에 인권선진국으로 만든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도 유죄판결을 받고 26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민주정부를 이끈 김대중 대통령도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역사의 평가는 법원의 평가보다 근원적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문이 남아 있는 한 이를 핑계로 역사의 평가를 거부할 수 있다. 개인에 대한 국가범죄를 정당화하고 개인의 명예회복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법원의 판결도 재정리되어야 한다. 과거사의 대상인 것이다.

독, 나치의 '백장미단' 유죄판결 무효화... 일, 잘못된 판결로 과거사 회피

나치 독일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인 1943년 2월 뮌헨대 학생이었던 한스 숄, 소피 숄, 슈모렐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혐의는 나치를 반대하는 전단지를 살포하고 대학교 내에 '타도 히틀러, 히틀러는 집단학살자, 자유' 등을 낙서한 것이었다. 결과는 사형. 어처구니없지만 당시에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결과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백장미단 사건'이다.

우리에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책으로 잘 알려 있다. 청년시절 누구나 한 번쯤 가슴을 조이면서 읽었을 것이다. 이후 나치는 패망했지만, 법원의 판결은 그대로 남았다. 

독일 패망 이후 연합국은 나치판결의 불법과 무효를 즉각 선언했지만, 독일 내의 목소리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독일 연방하원은 1985년 '독일 민족재판소의 판결들은 어떤 법적 효력도 갖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1998년 '형사재판에서 나치 불법판결 파기법률'을 제정해 최종적으로 나치시대의 불법판결을 무효화했다. 이로써 백장미단 판결은 무효가 되었고 이들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독일인의 손으로 명예를 회복시킨 것이다.

독일의 과거사 정리는 일본과 항상 비교된다. 판결의 무효화라는 법적인 조치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일본은 법원의 판결이라는 얄팍한 변명으로 과거사를 회피한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영원하지 않다. 잘못된 판결은 과거사 청산의 대상일 뿐이다.

동아시아 평화·인권 제시하려면 우리 정부가 먼저 민주주의·인권 지켜야

안창호 선생은 1907년 이토 히로부미에게 "한중일 삼국의 친선이 동양 평화의 기초라는 것은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우리를 진정으로 돕고 싶으면 한국은 한국인의 손으로 혁신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모두가 원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이다. 영토분쟁과 역사논쟁으로 긴장이 높아지는 현재 평화와 인권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면 호혜평등과 존중의 철학이 필요하다. 협소한 민족주의로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일본식 공격적,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우선 전쟁과 식민, 내전과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동아시아의 과거사를 청산해야 한다.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공동체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 모두에게 지워진 책무이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리더쉽을 발휘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또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선구자인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라는 큰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에 먼저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공안통치, 안보정치로 일관하면 동아시아 평화인권공동체 구상에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없다. 이처럼 국내정치와 국제평화는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곧 국제평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안중근 #과거사청산 #미래연 #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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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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