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취직했는데... 회사를 그만뒀어

[소설-엘라에게 쓰는 편지] 13편

등록 2013.11.26 10:54수정 2013.11.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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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엘라


오랜만이지…. 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 게 벌써 3주전이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한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그 참혹한 시간을 다시 떠올리기 싫어. 무섭고 또 두려워. 엘라 너라도 옆에 있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엘라 있잖아. 나 회사를 그만뒀어. 왜냐고? 눈이 안 보여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거든. 지난 3주 동안 집에 있었어. 가만히 누워 있었어. 무슨 일인지 너한테 설명을 해야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한 달 전쯤인가? 갑자기 컴퓨터를 하는데 앞이 뿌옇게 변하더니 눈이 양파로 문지르는 것처럼 따갑고 아프기 시작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회사에는 아프다고 병원에도 가봐야 하니까 하루만 쉬겠다고 했는데 지금 인력이 너무 부족해서 쉴 수 없다는 거야.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

팀장님은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탐탁치 않아 했어. 그래서 결국 병가도 못 내고 조퇴도 못하고 회사 점심시간에 병원에 갔는데, 눈에 있는 막이 모두 닳아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리고 염증도 눈에 너무 많이 생겼고 안구건조증이 너무 심하대. 그러면서 몇 가지 검사를 했어. 눈에 약물 같은 걸 뿌리더니 뭘 확인하고 종이 같은 걸 눈에 대기도 했어. 그리고 나한테 소염제·진통제를 줬어. 일단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보지 말고 있으래. 그러면 우선 막이 다시 생긴다고.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지.


"보지 말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TV, 인터넷, 책 읽기 다 안 돼요. 그냥 눈 감고 있는 게 상책입니다."
"네? 저 일 하는데요?"
"당분간 못한다고 하세요. 일은 무슨 글자도 못 보는데. 이건 무조건 쉬어야 나아요."
"당분간이 얼마나인데요?"
"글쎄요…. 사람마다 다른데 쉽게는 낫지 않아요. 일단 일주일 후에 눈 상태를 봐야 하는데 보름 넘게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고, 그 후의 일은 또 상태를 봐야 하는 거라…."

나는 더 이상 대꾸를 할 수 없었지. 그 말을 듣는 내내 이걸 엄마 아빠한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이었어. 그렇잖아도 요즘 내가 상태가 안 좋아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 아빠는 내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답답하대. 결국 말을 했어. 아빠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하고 엄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지. 그 모습을 봐야하는 게 생고문 같았어. 결국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어. 나도 동의했고. 일주일 쉰다고 해도 일하면 재발할 텐데 이 상태로는 안 될 것 같았어. 그리고 그 다음날 팀장에게 말했지. 팀장은 담배를 피우면서 그러더라.


"이렇게 일찍 그만두는 케이스는 또 처음이네. 알았어. 인수인계 안 해도 되고. 뭐 어차피 수습이니까. 정리해서 내일 부터는 안 나와도 돼."

나는 몇 번이고 죄송하다는 말만 했어. 그리고 조용히 짐을 싸서 회사를 나왔지. 고작 넉 달 일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짐이 많았어. 실내에서 신는 단화랑 취직했다고 언니가 사준 쿠션이랑 방석을 챙기긴 했는데 도저히 집에 들고 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버렸어. 그리고 바닥에 앉아 엉엉 울었지.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신경도 쓸 수 없었어. 고작 안 쓰는 물건 버렸을 뿐인데 나를 쓰레기통에 쳐 박은 것 같았거든.

일주일이 지나고 의사에게 갔더니 막은 다시 생겼대. 근데 여전히 글씨를 읽을 수가 없는 거야. 텔레비전도 볼 수 없고. 10초 이상 응시를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가서 검사를 했어. 그랬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 자기는 이상한 걸 모르겠다고. 그리고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고 한 통의 인공눈물과 항생제·소염제 그리고 연고 또 레스타시스라는 약도 받았어. 정말 한 꾸러미더라.

그런데 웃긴 게 각 약마다 넣는 시간이 달라. 어떤 건 하루에 네 번. 어떤 건 세 번. 근데 겹치게 넣으면 안 되고 10분 이상의 텀을 두라는 거야. 게다가 인공눈물은 무조건 수시로.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누워서 약을 눈에 들이 붓는 게 일과가 돼버렸어. 한 며칠은 참았지. 근데 이게 일주일이 넘어가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겠더라. 시간이 너무 안가. 잠만 계속 자다가 그 마저도 더 이상 못 견딜 것 같아서 엄마가 텔레비전을 보면 나는 옆에 누워 들었어. 그런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엄마는 시장에서 라디오를 사다줬어. 그래서 그 후로는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는 게 내 일과가 돼버렸어.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방을 청소하고 라디오를 켜. 그리고 누워서 듣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밥을 먹고 밖에 나가 앉아 있다가 다시 들어와 라디오를 듣고 자지. 그러다 보니 낮밤이 점점 뒤바뀌어서 새벽 4시에 하는 프로그램까지 듣고 자게 되더라. 그런 내가 동물처럼 느껴졌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먹고 자고 약 넣고 이게 다야. 슬프지도 않아. 다만 당황스러웠어. 그래도 처음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아. 이제는 한 시간짜리 드라마를 보려면 인공눈물이 여섯 개가 필요하거든. 첨에는 1분에 하나씩 넣고 30초 보다가 누워서 눈 감고 암튼 제대로 본다는 게 불가능했거든. 어제는 내가 의사한테 물어봤어.

"언제까지 이래야 해요? 저 다시 일해야 하는데."
"이게 언제 낫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네? 이게 무슨 불치병도 아니잖아요."
"이게 그래요. 일단 좀 쉬세요."

언제 나을지도 모른다니…. 내가 무슨 암에 걸렸니? 아님 중병에 걸렸니? 나는 너무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리고 엄마한테 막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어. 근데 더 슬픈 게 뭔지 알아? 엄마가 그런 나의 짜증 다 받아줬다는 거야. 내가 별 말도 안 되는 트집을 부렸는데도.

일단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지금 내 생각은 사무직으로는 일을 못 할 것 같아. 근데 사무직을 빼고 나면 남는 게 뭐가 있니? 난 정말 어이가 없어. 사회 초년생이 사무직을 할 수 없으면 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는데? 이 상태로 누가 써주겠니? 일단 좀 참아볼게. 더 견뎌봐야 하는 거겠지. 나에게 하늘이 왜 이러는 걸까. 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예전에는 나쁜 일 힘든 일은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엘라 나에게 힘을 줘. 네가 많이 보고 싶다. 나 괜찮아지겠지?
#취업 #취준 #백수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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