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와 수강생 모두 50대 전후에서 60대까지인 중장년들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최육상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의 한 강의실. 중국어강의를 무료로 진행하는 노정배(58)씨는 다짜고짜 "중국어는 16시간만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한 수강생이 "에이, 어떻게 16시간으로 중국어가 되냐"고 묻자 노씨는 진지하게 설명한다.
"실제 중국어를 완벽하게 하려면 7년 이상 공부해야 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학문할 게 아니잖아요? 말만 하면 되잖아요. 취(간다), 라이(온다), 칸(본다), 츠(먹는다), 흐어(마신다), 마이(산다), 씨앙(하고 싶다), 씨환(좋아한다) 등 몇 개 단어만 알면 돼요. 진짠지 아닌지 저랑 일주일에 2시간씩 2달만 공부해보자고요.""중국어, 16시간만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수강생 중 지난해 고등학교 교장을 정년퇴임한 홍태식(64)씨는 "앞으로 30년 이내에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고등학교에선 제2외국어로 무조건 중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여행 경험이 몇 번 있다는 홍씨는 "중국에 갔다 무사히 돌아 올 수 있는지는 중국어를 말하는 것보다 알아듣는 것이 관건"이라며 웃는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왕복 3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강의를 들으러 오는 정경옥(57)씨는 "나이가 들어선지 방금 배운 것도 돌아서면 잊게 된다"며 "이렇게 외국어를 배우니 삶에 활력이 생긴다"고 미소를 지었다. 정씨는 지난해 말 퇴역한 육군 소장의 부인으로 "좀 편안해지려 했더니, 이제는 중국어 때문에 새롭게 긴장하게 됐다"면서도 싫은 표정이 아니다.
이런 중년을 대상으로 노씨가 중국어강의를 하게 된 건 건강 탓이었다. 노씨는 파주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중 건강이 무척 악화됐다고 한다. 그때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리 죽나 저리 죽나 독학하던 중국어 공부나 맘껏 해 보자며 유학을 결심한다. 가족을 두고 혈혈단신 중국으로 떠난 것이 지난 2006년, 그의 나이 쉰 살 때이다.
그는 중국 보하이(渤海)대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아들딸 벌되는 중국학생들 틈에서 공부하며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제 석사학위 논문 내용이 '외국인에게 중국어를 교육시키는 방법 연구'였다"며 "중국 교수들이 깜짝 놀라며 '우수' 평점을 줬을 만큼 이래봬도 중국어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나름 전문가"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수강생들의 직업은 은행 지점장, 중견기업 임원, 학교 운영위원, 신문기자, 공무원 등 다양하다. 그 외 주부들도 독서지도를 하거나 문해(文解) 교사과정을 수강하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벌인다.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민감하고 밝은 탓에, 일찌감치 중국을 주목한 이들 중 다수는 자녀를 중국으로 유학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국내 대학을 다니던 아들을 중퇴시켜 유학 보낸 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마저 중국으로 떠민 최도순(51)씨는 "회사에서 상무로 일하며 중국에 능통한 인재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며 "나라도 배워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틈틈이 강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도 회사를 다니며 융합기술 관련 석사 학위를 땄던 최씨는 "석사 때 너무 고생해 힘든 건 알지만 기회가 된다면 중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아보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2년 전 아들을 유학 보낸 이강선(53)씨는 "우리 아들이 중국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한국말을 하면 기사가 '정말 한국 사람이냐며 깜짝 놀란다'고 하더라"며 "이제는 먹고 말하는 게 중국이 더 좋다고 할 만큼 중국 사람이 다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