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때의 김수환 추기경, 국민은 기억한다

[팟캐스트 윤여준⑦] 정치와 종교는 과연 무관한 것인가

등록 2013.12.01 21:16수정 2013.12.0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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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방송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중 '윤여준 칼럼' 전문을 <오마이뉴스>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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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전주교구 원로신부가 지난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열린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 장재완


최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 사제의 발언을 놓고 국가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 신부의 발언 중에는 일부 사실 관계상의 오류와 객관적 상황을 넘어선 독단적 주장이 섞여 있어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이번 기회에 정치와 종교, 혹은 정치와 교회라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본격 논의되지 못했던 근본적 차원의 문제들을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클 것으로 생각한다.

프랑스 대학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금년도 철학 논술시험 제목이 '정치에 무관심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가'였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하면서 종교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나옴 직하다. 바꿔 말하면 정치와 종교는 과연 무관한 것인가, 라는 뜻이 될 것이다. 우리 헌법 제20조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1항)라고 되어 있고, 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2항)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의 분리문제는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유신 때, 인권과 민주회복 차원에서 종교가 적극적으로 활동

정치와 종교는 모두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인간이 '정치적 속성'을 자신의 본성으로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양자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을 가진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이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에서 훼손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교회는 이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지난 9월 16일자 강론에서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이라면서 "정치가 공공의 선에 봉사하기 때문에 좋은 신자라면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모든 종교는 자신의 고유한 신앙과 교의에 입각한 특정한 가치를 사회와 정치에 구현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특히 개인의 존엄성이 크게 침해받거나 민주적 정치 체제가 위협을 받을 경우에는 이를 지적하고 바로 잡기 위한 '예언자적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유신체제를 비롯한 군부 권위주의 시절, 인권과 민주회복 차원에서 종교, 특히 천주교회와 성직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 바 있다. 국민은 지금도 이 과정에서 보여준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많은 종교 지도자들의 활동과 기여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현대국가,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서양의 근대국가 자체가 교권 특히 교황권과의 투쟁을 통해 주권을 정립함으로써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도 타당한 근거가 있다. 정치는 국민을 통합하고 통치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권력을 놓고 서로 이해관계를 다투는 갈등의 측면을 갖고 있다.

독일의 유명한 정치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우적관계'라고 갈파한 바가 있다. 우적관계를 기본적인 속성으로 하는 '정치적인 것'은 정치와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기본적 가치와 관련된 '정치'에는 적극적인 발언과 개입을 할 수 있지만,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것'과는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자체도, 교회와 정치 공동체의 정체성은 상호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주교구 박 신부 발언 관련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우선 박 신부의 발언 자체를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단순 논리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왜냐하면 국가정보기관이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사건과 이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수사태도 등을 지적하는 것은 성직자로서 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교회나 사제가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판단했다면, 사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종교인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 신부의 발언 파문,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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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 신부의 발언을 겨냥해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사건 등과 관련해서 엄정한 수사와 책임자 문책을 다짐하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놓고 볼 때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 개입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만일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이 사실로 판명되는 경우 이는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박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일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를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의 기본권 문제라든지 주권재민 원리와 관련된 문제 즉 국민의 정부 선택권을 훼손하는 선거 부정과 같은 큰 의미의 정치에 대해서는 교회의 발언과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적과 동지의 구분이 불가피한 작은 의미의 정치 또는 '정치적인 것'에서는 종교의 자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헌법상 정치와 종교의 구분은 바로 이런 차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박 신부의 발언 중 연평도 포격문제, NLL문제, 독도 비유, 컴퓨터 선거조작 등의 주장은 사실 관계상 오류가 적지 않으며, 특히 대통령 퇴진 주장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에 비추어 너무 성급하고 금도를 넘어선 것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고 발언한 것은 박 신부의 잘못이라고 하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의구현사제단 측이나 천주교 전주교구 등의 적절한 입장 정리와 태도 표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박 신부의 발언 파문이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구별, 나아가 정치와 종교의 올바른 관계 정립 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어떤 합의점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윤여준 기자는 전 환경부 장관이며,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입니다.
#박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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