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하늘을 날다>
돌베개
김신은 1922년에 김구의 둘째 아들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젖도 떼지 않은 1924년, 어머니 최준례가 사망했다. 시어머니 혼자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리는 것도 벅찰 것인데 어린 아이까지 돌보게 해드린 것이 죄송스러워 몸조리가 끝나지 않은 어느 날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가지고 계단을 내려오다 크게 다쳐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 것이라고 한다.
생계는 물론 아이들까지 시어머니께 의지하는 것을 죄송스러워 했던 여사는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자주 김신을 고아원에 보내라고 했다고 한다. 고아원의 힘을 빌려서라도 젖을 먹지 못하는 것을 면하게 함과 동시에, 시어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여하간 김구 선생의 어머니는 그런 며느리의 말을 듣지 않고 어떻게든지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아원에 몇 차례나 보내야 할 정도로 어렵게 살다가 어린 김신을 데리고 황해도 안악으로 먹고 살길을 찾아 귀향하게 된다. 하지만 황해도 안악에서의 생활도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들은 안부를 묻는척하며 감시했다. 명절이나 일본 경축일에는 떡을 보내오기도 했다. 일본 경찰은 회유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애들 공부 시키는데 걱정이 많겠습니다. 애들 학교 마치면 우리가 일본으로 데려가 제국대학에도 보낼 수 있으니까, 할머니 아무 걱정 마세요. 아버지에게 편지가 오면 일본 경찰의 회유는 심해졌다. 아들을 데려오기만 하면 총독부의 높은 자리를 줄 테니 돌아오라는 편지를 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일본 경축일에는 집집마다 일장기를 달아야 했다. 그러나 우리 집은 달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다 달잖아요. 할머니도 달아야 합니다."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렇게 찾아와서 괴롭히니 어느 날 할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신문지에다가 먹으로 동그랗게 해가지고 대문에 붙여라" - <조국의 하늘을 날다>에서
월사금은커녕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데다가 아버지 김구가 요주의 인물이라 일본이 밤낮없이 감시하고 틈만 나면 회유했기 때문이다. 김구는 김구대로 일본이 두 아들을 강제로 친일자로 만들까봐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가족은 결국 1934년에 중국으로 탈출한다. 일본이 여행을 허가하지 않을 정도로 감시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봉창, 윤봉길 두 의사의 의거가 백범 김구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의 감시가 더 매서울 때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가족의 고난은 계속된다. 당시 김구에게는 60만 대양(기자 주: 대양은 은전을 뜻한다. 당시 1대양은 동전 300개와 바꿀 수 있었다)이라는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일본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는데, 때문에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는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중국인, 심지어 서양인들까지 김구를 잡으러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런지라 김구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숨고 떠돌아 다녀야만 했다. 물론 김구의 삶에 대해선,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은 많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 책이 또 남다른 느낌으로 읽히는 것은 '독립군 아버지 때문에 쫓기고 감시당하며 살아야만 했던, 김구의 아들 김신'의 회고이기 때문이다.
김신은 쫓겨 다니는 생활 와중에 조종사의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훗날 중국공군학교에 입학해 조종사의 꿈을 이룬다. 그리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여러 작전들을 수행하게 된다. 해방 당시 김신은 공군학교 생도였다. 귀국하여 아버지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조종사가 되어 조국 하늘의 평화를 지켜달라며 김구가 말렸다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 추진한다는데... 알고 있습니까""태어나자마자 엄마라는 말보다 아버지라는 말보다 할머니라는 말을 가장 먼저 배워야 했던 나의 운명. 가족 간에 누려야 하는 따스한 감정마저 좀처럼 누리거나 드러낼 기회가 없는 나의 운명. 개인적인 고충은 철저히 숨기고 욕망도 억눌려야 하는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의 운명. 그것은 너무나 가혹했다."김신의 처절한 고백이다. 그는 책을 통해 독립운동가 김구의 아들로서의 삶과 독립운동가의 아들로서 접한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들려준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김신이 태어난 1922년부터 <백범일지> 중국어판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1994년까지다. 독립운동가 가족의 고난 외에 ▲ 김신이 만난 안중근 부인을 비롯한 수많은 당시 인물들 ▲ 김구와 함께 보냈던 2년 남짓의 시간들과 김구 피살 관련 이야기들 ▲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의 진실 ▲ 미그기 획득을 위한 미국의 비밀작전 ▲ 김신이 만난 난징대학살 무렵의 난징 ▲ 5·16 직후 군부와 미국의 움직임 ▲ 박정희 대통령의 편지에 장제스 총통이 눈물을 흘린 사연 ▲ 베트남전에 참전한 타이완의 의도 ▲ 한·중 수교를 위한 막후의 비선라인 등이 기록돼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다는데, 알고 있습니까?"자신들이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으로 핵무기 관련 장비들이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1965년쯤이다. 나는 이 사실을 즉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타이완이 이런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U2기 정찰 활동에 참여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타이완도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핵 개발에 필요한 장비, 물자를 확보해 나가는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비슷한 동향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로써도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도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 정부 당국과 관계자들은 북한 핵 개발 정보를 대단치 않게 여겼다. '그게 말이 되느냐'는 분위기였다.- <조국의 하늘을 날다>에서책에는 이처럼 좀 중요한 이야기들도 좀 많다. 북한이 이미 1960년대에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는 이런 부분은 쉽게 넘겨지지 않는다.
김구의 아들을 만나 안중근의 아들을 떠올리다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자꾸 생각난 것은 영웅 안중근의 가족과 아들의 이야기인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관련기사:
'안중근의 아들은 왜 일제의 '개'가 됐나' )란 책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을 통해 알게 된 안중근의 아들, 그 안타까운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