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복수는 10년이 늦지 않다"더니...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48] 等

등록 2013.12.09 18:58수정 2013.12.0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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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할 등(等)은 관청(寺)에서 쓰는 서류를 대쪽(竹)처럼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는 것에서 의미가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 漢典


깊은 산 속 맑은 연못을 미꾸라지가 흐려놓았을 때 그 연못을 다시 맑게 하는 방법은 연못에 들어가 무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는 일이다. 때로 '기다림'은 기다림 그 자체로 해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들은 변화에 대처하는 법 중에 기다림을 매우 중시한다. 이때 기다림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닌, 적절한 때를 준비하며 묵묵히 실력을 다진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상류에 비가 많이 와 물살이 거센데 굳이 이때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의 가르침대로 시간이 지나면 강물이 줄어들 것이니 기다렸다가 건너면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돌아보고 실력을 키우는 편이 조급하게 달려들었다가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백 번 낫기 때문이다.
가지런할 등(等, děng)은 대 죽(竹)과 절 사(寺)가 합쳐진 형태인데, 관청(寺)에서 쓰는 서류를 대쪽(竹)처럼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는 것에서 의미가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가지런히 정리하다보면 순서가 정해질테니 '등급'의 의미도 생겼을 것이다. 중국어에서는 '기다리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널리 알려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는 복수를 꿈꾸는 절치부심의 기다림을 잘 보여준다. 월(越)나라와의 전쟁에서 져서 죽은 아버지 합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吳)나라의 부차는 매일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잔다(臥薪). 결국 오나라 부차는 월나라를 쳐들어가 항복을 받아냈고, 부차에게 치욕적인 조건으로 항복한 월나라 구천은 부차의 몸종으로 일하며 때를 기다린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과거의 치욕을 기억하며 복수의 결심을 잊지 않기 위하여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嘗膽) 복수의 기회를 준비한다. 때를 기다렸다가 서시(西施)를 이용한 미인계로 오왕 부차에게 마침내 복수한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늦지 않다(君子報仇, 十年不晩)"는 중국 속담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G2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의 외교 전략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로 전환되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표방해 왔었다. 칼날의 빛을 칼집 속에 숨기고 어둠 속에서 묵묵히 실력을 키운다는 뜻으로 중국의 저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인내하면서 때가 성숙되기를 기다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었다.

황허의 물이 맑아지길 기다리는 것(等到黄河清)처럼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긴 기다림 너머 어느새 중국은 동북아의 강자로 부상해 목소리를 높이는 시점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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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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