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으로 변신한 트랜스포머 버스

서울 초안산 숲속 공원의 '창골마을 붕붕 도서관'

등록 2013.12.14 12:37수정 2013.12.1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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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혹은 살기 좋은 나라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동네마다 작고 특색 있는 도서관이 있는지의 여부도 그 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수년 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외국에 갔을 때 보았던 작고 촘촘한 동네 도서관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아서인가보다. 어느 곳을 가든, 아무리 작은 동네를 가더라도 멋진 도서관이 없는 곳이 없었다. 시설도 쾌적하고 분위기도 좋아 책읽기에 혹은 공부하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도서관들.

대부분 건물도 마을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지어져 있다. 보유하고 있는 책도 다양하고 많을뿐더러 웬만한 영화·음악·아이들 동화 비디오까지 다 갖추고 있다. 이렇게 도서관 시스템이 잘 돼 있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오게 된다. 당시 내게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그야말로 노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떠들고 큰 소리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으니 다른 놀이터가 필요 없었다.


서울시가 '책 읽는 서울'을 만들기 위해 걸어서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동네 도서관을 2015년까지 공공도서관을 99개(공동도서관 24, 작은 도서관 75개) 추가하고, 2030년에는 지금보다 500개 많은 1372개까지 확충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참 반가웠다. 그 가운데 동네의 특색있는 작은 도서관에 관심이 간다.

 도봉구 창동 초안산 숲속 공원입구에서 담박에 눈길을 끄는 '창골마을 붕붕 도서관'
도봉구 창동 초안산 숲속 공원입구에서 담박에 눈길을 끄는 '창골마을 붕붕 도서관'김종성

은평구 불광천가에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만든 '불광천 작은 도서관'은 하천길을 산책하는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낡은 경로당을 새로 단장해 만든 '고맙습니다 (관악구) 하난곡 작은도서관'은 어린이 도서와 함께 다문화 어린이 및 부모를 위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으로 된 아동, 육아용 도서 80여 권을 비치했다.

강서구 가양동의 '도란도란 도서관'은 교육을 이수한 동네 구민 사서가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작은 도서관은 이렇게 지역 주민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등 덩치 큰 도서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내기도 한다. 작가들의 스승으로 일컫는 보르헤스가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아마 그 도서관은 작은 도서관일 게다.

신기한 숲속 공원 버스도서관

 동네 아이들의 모임터이자 놀이터인 '붕붕 도서관'
동네 아이들의 모임터이자 놀이터인 '붕붕 도서관'도봉구청 제공

 책 읽는 아이들이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책 읽는 아이들이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김종성

도봉구 창동 초안산 숲속공원에도 그런 도서관이 지난 가을(10월 1일)에 개관했다. 이름도 재밌는 '창골 마을 붕붕 도서관' 창동의 원래 동네 이름이 '창골 마을'이었단다. '붕붕 도서관' 이름이 붙은 건 놀랍게도 폐차된 버스가 영화 트랜스포머처럼 변신을 해서다. 도봉구 일대를 도는 아진교통 142번 버스로, 폐차될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이 버스는 한 주민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 버스를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서울시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사업취지에 공감한 아진 교통에서 고맙게도 버스를 기증했다.


평범한 버스 외관은 형형색색 물감으로 물들여졌고 내부는 1400여권의 책으로 가득 채워졌다. 손님들을 위한 딱딱한 의자와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손잡이가 사라졌다. 그 대신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화책과 소설책들이 가득 들어섰다. 대체로 유아도서와 아동도서가 차지하고 있다. 성인도서는 간간히 보인다. 버스 뒷부분에는 소모임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층으로 되어 있는 이 공간은 다락방 같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란다. 특히 2층 아래를 터널처럼 뚫어 놔서 아이들이 기어 다니며 오가는 공간은 나도 들어가 보고 싶게 한다.

 눈이 내린다며 도서관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눈이 내린다며 도서관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김종성

 붕붕 도서관 바로 앞엔 야외 테이블, 정자, 공원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붕붕 도서관 바로 앞엔 야외 테이블, 정자, 공원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김종성

요즘같이 추울 땐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보온까지 잘된다. 버스 아니 도서관 창 밖으로 눈이 내리자 남자 아이들이 책을 읽다말고 밖으로 뛰어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놀아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다. 버스 운전석이었을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은 동네 주민들인 자원 활동가들이 대신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연세의 자원 활동가 아저씨는 대학교에서 준사서 자격증까지 딴 열혈 독서가다.  


버스 속에서 책을 읽는 것뿐만이 아니라 버스 주변에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 무료로 대여해주는 10개 정도의 돗자리가 구비되어 있는데 얼마전 가을엔 물량이 부족할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았단다. 물론 돗자리만 빌릴 순 없고 책과 함께 빌려야 한다. 자전거 동호회 지인이 동네에 재미있는 도서관이 생겨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며 자랑할 만하다. 도서관 바로 앞에 쉼터로 좋을 정자와 공원 화장실이 있으며, 걷기좋은 초안산 숲속길이 이어져 있어 여러모로 위치가 좋다.    

글 짓는 작가는 자신의 생이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다른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다시 그 작가들이 지은 책들을 벽돌 삼아 자신의 집을 짓는다. 우리가 읽은 하나하나의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벽돌이라면 그 벽돌들이 잘 붙어서 하나의 집이 되도록 도와 주는 게 도서관이 아닐까 싶다.

단순한 지식창고나 답답한 도서관의 느낌을 탈피하고 마치 놀이터처럼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창골 붕붕도서관', 버스를 타는 것처럼 도서관에 가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는데 한 몫 톡톡히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ㅇ 위치 ; 도봉구 창1동 428-1 (1호선 전철 녹천역 1번 출구 도보 5분)
ㅇ 운영시간 ;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 / 매주 화요일 및 법정 공휴일 휴관
ㅇ 이용문의 ; 2091-2273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창골마을 붕붕 도서관 #작은 도서관 #초안산 숲속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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