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위한 대한민국, 안녕하신가

[주장] "한국의 언론 자유? Goddamn이다!"

등록 2013.12.13 20:04수정 2013.12.1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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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아침, 현관 앞에 배달된 <경향신문> 1면에서 제 눈을 의심케 하는 머릿기사를 이틀째 연거푸 보고 있습니다. 기사들은 저를 난데없이 이승만·박정희 시대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음이 그 제목들입니다.

"유신 언급했다고 소설 연재 거부" (2013년 12월 12일 자 1면)
서정인 소설은 연재 중 중단됐다 (2013년 12월 13일 자 2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정통 문예지 <현대문학>이 연루된 기사들이었습니다. 12일 자 기사에서 '연재 거부'를 당한 '비운'의 주인공은 원로 소설가 이제하 작가였습니다. 기사에 인용된 작가의 말을 따르면, 시대배경을 나타내는 '박정희 정권'과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단 두 개의 표현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13일자 기사에 등장하는 소설가 서정인 작가의 사례는 더 기가 막힙니다. 문제의 작품은 <바간의 꿈>이라는 장편소설입니다 <현대문학> 7월호와 8월호에 2회까지 연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사에 따르면 <바간의 꿈>은 '잡지 사정으로 게재할 수 없다'는 편집자 이메일을 받습니다. 그후 <현대문학>은 9월호 편집후기에 '본지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기사에 언급된 노 소설가의 말이 아리게 다가옵니다. (관련기사: 유신 언급했다고 연재 거부? <현대문학> 왜 이러나)

"평생 처음 겪는 일이고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창피한 일이어서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중단 통보였다.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작품 연재 거불를 결정하게 한 '본지 사정'이 무엇이었을까요. 당사자인 작가에게까지 알려주지 않은 연재 거부 '이유'는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13일자 기사가 전하는 <현대문학>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 등장인물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그 등장인물이 했다는 문제의 발언은 '박정희가 계집을 끼고 술 마시다가 총 맞아 죽었다'였습니다. 표현이 좀 거칠어서 그렇지 내용상 전혀 문제될 게 없는 발언입니다.


그런데 예의 관계자에 의하면, <현대문학> 양숙진 주간이 이 대목을 수정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기사가 전하는 전후 사정입니다. 이 믿기지 않는 뉴스가 2013년의 전국지 1면 중 일부를 장식했다는 게 믿겨지시는지요.

'김일성 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 시인이 우겨 대니 // 나는 잠이 올 수밖에 // '김일성 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 관리가 우겨 대니 // 나는 잠이 깰 수밖에

1960년 10월 6일, 시인 김수영(1921~1968)이 탈고한 작품입니다. 제목은 <잠꼬대>입니다. 최초 제목은 <김일성 만세>로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는 애초의 김수영 시 전집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창작과 비평> 2008년 여름호를 통해 김수영의 미발표시 15편과 일기 등 산문 30여 편과 함께 최초로 공개되면서 알려졌습니다.

수영은 이 시를 탈고한 날 쓴 일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정녕 아무렇지도 않았을는지요. 수영은 한국전쟁 중에 북한 인민군에게 의용군으로 끌려갑니다. 그뒤 평안도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실전에 배치되던 중 탈출을 했다가 붙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힙니다.

그 전후 과정에서 수영은 말로 표현 못할 고초를 많이 겪습니다. 이 때문에 극심한 빨갱이 콤플렉스에 빠지게 됩니다. 수영이 사상과 이념, 언론의 자유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배경입니다. 이 <잠꼬대>를 비롯하여 수많은 산문에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 정치 사상과 이념의 완전한 자유를 거듭 강조한 까닭입니다.

문학을 하는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 창작의 자유는 백 퍼센트의 언론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되지 않는다. 창작에 있어서는 1퍼센트가 결한 언론자유는 언론자유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 <김수영 전집 2 산문>, 177~178쪽.

하지만 당시는 1960년대였습니다. <잠꼬대>가 쓰인 10월 6일은 4·19혁명으로부터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혁명의 열기가 남아 있었더라도 그다지 뜨겁지 않은 때입니다. 장면 정부의 우유부단한 행보 탓이 컸습니다.

더군다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유당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반공 분위기에 압도되었습니다. 수영과 같은 정치적 자유주의자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글에서 수영은 '간첩방지주간'이니 '국시(國是)'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뜨끔해진다고 고백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수영은 아내 김현경에게 <잠꼬대>를 보여 줍니다. 현경은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걱정스럽게 말합니다. 반공이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였으니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수영에게도 그런 의구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인데, 세상의 오해 여부는 고사하고, 현대문학지에서 받아줄는지가 의문이다. 거기다가 거기다가 조지훈도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는가? - 위의 책, 503쪽.

그뒤의 이야기는 1960년 10월 18일 자 일기에 나옵니다. <자유문학>에서 이 시를 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김수영은 제목을 고치는 '타협'을 해서 시를 넘깁니다. 하지만 <자유문학> 측에서 요구 사항을 더 내겁니다. 본문을 고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김수영은 타협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적습니다.

한국의 언론 자유? Goddamn이다! - 위의 책, 504쪽.

'Goddamn'을 내지를 만한 일은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1960년 8월 22일에 쓰인 산문 <치유될 기세도 업이>가 있습니다. 8월 22일이면 민주당의 장면 정권이 제2공화국을 출범시킨 8월 19일로부터 사흘이 지난 시점입니다. 나름대로 '역사적인'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산문에 따르면, 수영은 두 달 사이에 세 편의 시를 퇴짜 맞습니다. 수영에게는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수영은 "아무튼 정치 하는 놈들이 살인귀나 강도같이 보이는 나의 편심증(偏心症)은 아직 손톱눈만큼도 치유될 기세가 없"다면서 초조해합니다.

그즈음 수영의 시작(詩作) 경력은 고작(?!) 15년째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서정인 작가가 느꼈을 모멸감과 참담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겠는지요. 서 작가의 문단 경력은 올해로 51년째입니다.

당시는 이미 독재자 이승만이 도도한 민중의 힘에 밀려 꽁무니를 뺀 뒤였습니다. 하지만 '절대권력' 이승만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강했습니다. 수영의 작품 중에 1960년 7월 15일에 쓴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가 있습니다. 한 신문사의 청탁으로 쓰인 동시입니다.

하지만 이 시도 결국 퇴짜를 맞았습니다. 김수영이 어느 선배로부터 전해 들은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신문사 사시(社是)로 이기붕까지는 욕을 해도 좋지만 이승만을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규 때문이었습니다.

한 시인이 모종의 '정치적'인 이유로 그 작품을 퇴짜 맞는 상황은 결코 '정상 국가'의 모습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 '정치적인' 이유가 당대의 권력자와 관련되어 있다면, 더욱 퇴행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폭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봉건시대의 절대 왕조 국가가 아닌 이상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그 어느 때나, 누구든지, 얼마든지, 그리고 그 어떤 방식으로든지 모두 가능해야 합니다. 하물며 그 최고 권력자가 역사 속 인물임에랴.

그런데 지금 우리는 역사 속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마저도 금기시하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짐작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그 역사 속의 최고 권력자가 지금 이 시대 최고 권력자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어제 오늘 아침, 예의 기사들을 보고 제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조만간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의 이름인 '박근혜' 세 글자나, '대통령'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어가 되는 세상이 오는 것을 걱정하는 건 지나친 기우일까요. 권부의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심기'까지 보좌한다는 조롱을 받습니다. 대통령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불렀다고 온 나라가 들썩인 적도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독재'를 경고하며 쓴소리를 한 야당 의원을 겨냥해 거대 여당은 전국 순회 규탄대회를 열기까지 합니다. 광기 어린 '종북몰이'로도 모자라 '야당몰이'를 하기 위해 관제 데모를 한다는 비난이 이는 이유입니다.

최근 한 고려대생이 철도 파업을 지지하면서 쓴 대자보가 경향 각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 대자보의 말을 빌려 와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인민'(people; '인민'을 위해 이 여섯 개의 알파벳을 입력하고 있자니 참담함이 밀려옵니다!)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나라가 돼가는 이 하 수상한 시절에, 그 '대통령'이 분명 사랑해 마지 않을 '국민' 여러분께서는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현대문학> #서정인 #이제하 #김수영 #언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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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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