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 학내게시판에 붙은 한 벽보. 대학생들의 대자보에 '응답'하는 내용이다.
이주영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말 내가 살아온 그 지긋지긋한 세상은 두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몇 달 전 정당에 입당하고 당직도 맡았습니다. 미력하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보태고 싶거든요.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할 일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어떻게든 내 딸에게만은 내가 살아온 그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나도 철이 없던 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말 대단한 지도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를 알고부터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깨닫게 되었지요.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며 한 송이 불꽃으로 승화하신 전태일 열사는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20대 후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소설로나마 다시 살려내겠다는 당찬 각오로 공부했고, 긴 시간 공부를 해서 30대 후반에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그러고는 2013년 장편소설 '사람의 얼굴'로 제2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태일문학상을 받고나니 정말 너무 슬프고, 아프기만 합니다. 지금 전태일 열사가 살아계셨다면,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어찌 보고 계실까요.
우리들은 말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귀한 사람 천한 사람 구분 짓지 말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자고. 그리고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권력이나 힘에 저항하자고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돈 없고 빽 없어서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되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이제껏 한 번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던 아니던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늘 한계가 있더군요.
지금 우리가 행복하지도 안녕하지도 못한 것은 왜 일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저녁 만찬 자리에서 여자를 동석시키고 술을 마시다 부하에게 총을 맞아 죽어서 일까요?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쏜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 김재규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무어라 말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이 독재자 박정희를 죽임으로써 대한민국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최소한 20년은 앞당겨졌다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더 몰염치한 자가 또 나타났습니다. 전두환이 총을 들고 국민을 겁박하고 살인도 주저하지 않고 정권을 강탈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했고,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선거권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 선거권을 정말 심하게 훼손하는 부정선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현 정권은 그 진실을 묻고자 가진 술책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안녕하겠는지요.
우리가 어떻게 안녕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