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은 YH사건을 기억하라"

YH노조 무력진압 떠오르게 하는 민주노총 강제진압

등록 2013.12.23 09:59수정 2013.12.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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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 YH사건 때 했던 그대로 철도노조에게 하는구나. '전철을 밟는다'는 말에 그난리를 지더니 결국 전철을 밟는구나."
"박근혜가 꼭 기억해야 할 사건! 1979년 YH사건을 기억하라"
"지금과 비슷한 79년 YH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는 신호탄이었다."
"1979년 YH사건이 박정희 정권 몰락의 계기가 되었듯 오늘의 만행은 박근혜 정권 몰락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21일 오전 박근혜 정권이 전국철도노조가 파업 중인 민주노총 사무실에 경찰을 투입하자 누리꾼들이 쓴 글이다. 도대체 'YH사건'이 무엇이기에 누리꾼들은 34년 전 사건을 떠올렸을까? YH 무역회사는 가발수출업체였다. 1970년대 초, 가발은 우리나라 효자 수출품목이었다. 1970년, YH 무역 직원은 4000명에 달했고, 한때  수출 순위 15위에 올랐다. 하지만 가발은 이내 사양업이 되었다.

노조 진압 위해 야당 당사 공권력 투입한 박정희 정권

경영진은 1979년 3월 30일 회사를 폐업했다. YH무역 노동자들은 "폐업공고의 철회"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 해 8월 9일 'YH무역' 여공 187명이 서울 마포구에 있는 신민당사를 점거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은 <한겨레>에 쓴 글에서 "'정상화가 아니면 죽음이다'라고 쓴 머리띠를 두른 조합원들은 준비해 간 펼침막을 들고 농성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나가라면 어디로 나가란 말이냐', '배고파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눈길을 끈 것은 당시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이 이들을 적극 보호했다는 것이다. 이총각에 따르면 김영삼은 "6명의 YH노조 대표와 먼저 만난 뒤 4층 농성장을 직접 찾아가 조합원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들을 무력 진압했다. 이틀 뒤인 11일 새벽 2시, 경찰병력 1200여 명을 신민당사에 투입됐다. 경찰은 YH무역 여공 187명을 곤봉·벽돌·쇠파이프 따위를 동원해 폭력 진압했다. 여성 근로자 10여 명, 신민당원 30여 명, 취재기자 12명이 부상을 입었고, 여성 노동자 김경숙씨가 떨어져 숨졌다. 경찰은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추락사라고 밝혔다. 이총각 노조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겨우 눈을 붙이고 깜빡 잠이 들었던 농성 노동자들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깨어나, 불시에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맞고 차이면서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일부 노동자들은 주먹으로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려고 했고 사이다병을 깨들고 저항해봤지만 경찰의 폭력적 제압에 모두 당사 밖으로 끌려나왔다. 김영삼 총재 이외 국회의원들과 당원들 역시 무차별적 폭력에 실신 상태가 되었고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끌려나갔다.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코뼈에 금이 가도록 두들겨 맞고 사진기와 필름까지 뺏겨야 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 2013년 9월 2일 <한겨레> [길을 찾아서] '끌려나온 노동자들 퇴직금 강제 수령'

'YH사건'을 본 이총각 위원장은 "결국 정권의 야만적인 폭력은 또 하나의 민주노조를 쓰러뜨리고, 아직 청춘을 활짝 펴보지도 못한 여성 노동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면서 "이 인면수심의 정권이 오래가지 못 할 것이라는 확신에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고 말했다.


이는 현실이 됐다. 이후 박정희는 김영삼을 제명했고, YH노조를 폭력 진압한지 두 달만인 그해 10월 26일 부하인 김재규에 총에 맞아 죽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당시 김영삼이 보인 행동이다. 사실 YH무역은 중소기업이다. 노조원들을 지켜주기 위해 신민당이 당 운명을 걸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은 이 사건이 박정희 정권 운명을 가름할 수 있는 중대 사건임을 알았다. 김영삼은 당사를 점거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산업발전의 역군이며 애국자인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경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신민당사를 찾아준 것을 눈물겹게 생각합니다. 신민당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 2013년 8월 19일 <동아일보> '불통' 박정희 정권, 신민당사 농성 YH여공들 강제진압

김영삼은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2000년) 회고록에서 "사실 당시 신민당의 처지로서는 당사를 농성장소로 내준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면서 "하지만 나는 이 불쌍한 여공들을 내몰면 더이상 갈 데가 없고 극단적인 사태도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내가 보호해 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경찰 따귀 때린 김영삼 총재... 김한길 대표는 어떨까?

이게 끝이 아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4월 <한겨레>에 쓴 '이철승의 신민당사? 농성하러 가지도 않았으리'라는 글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잠자리에 들자 김영삼은 당사 정문으로 내려가 '여공들이 흥분하니 모두 물러나라'고 요구했다"면서 "경찰들이 이에 응하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던 김영삼은 '너희들이 정말 저 여공들을 뛰어내리도록 할 참이냐'며 마포서 정보과장의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공권력을 투입하자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마다하는 박근혜 정부의 일방통행식 불통정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민주당은 민주노총에 대한 사상 초유의 공권력 투입에 국민과 함께 분노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장을 찾았다.

과연 김한길 대표는 철도노조원들이 민주당 당사를 점거 농성하면 김영삼 총재처럼 그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한홍구 교수는 같은 글에서 "'신민당은 유신체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신체제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체제라고 보는 견해는 크게 잘못'이라며 중도통합론을 강조해온 이철승이 신민당을 이끌고 있었더라면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이 신민당사로 농성장소를 옮기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철승이 아니라 김영삼이었기에 YH무역 노동자들은 신민당사를 점거했고, 비록 공권력 무력 진압은 막아내지 못했지만 독재자 박정희 종말을 이끌어냈다.

박정희가 유신독재 유지를 위해 여성노동자들을 무력진압했다. 박근혜 정권은 민주노총 사무실을 무력진압했다. 박정희는 야당 당사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박근혜 정권은 언론사가 있는 건물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박정희 정권은 몰락했다. 그 중심에는 여성 노동자와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지만, 야당 당수 김영삼의 결단이 큰 역할을 했음을 2013년 민주당과 김한길 대표는 알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YH사건 #김영삼 #박근헤 #박정희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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