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안에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
김어진
컨테이너에서 엿보는 두루미의 사생활, 편하긴 하지만... 오전 7시. 우이령 사람들 일행들도 두루미들의 잠자리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철원군에서 설치한 컨테이너로 향했다. 우리 한국에서 제일 추운 곳이라더니 과연 날씨가 춥다. 실수로 옷을 얇게 입고 나와서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손은 얼어 붙을 것 같았지만 두루미들의 잠자는 모습을 안 보고 갈 순 없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즈음엔 컨테이너 앞에는 이미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있었다. 찰칵 찰칵 하는 셔터 소리와 함께 '뚜루루~' 하고 우는 두루미들의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두루미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걸어오는 일행들을 뒤로 하고 먼저 컨테이너가 있는 강둑에 도착했다. 예전보다 컨테이너 숫자가 늘어났다. 심지어 비닐하우스도 만들어졌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모양이다.
새로 만들어진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자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두루미들의 또 다른 모습이 강물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함께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나..."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으로 보아왔던 모습보다 실제로 본 두루미들의 잠자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눈꽃이 가득 만개한 상고대가 줄지어 서 있는데 물안개 속에 둘러싸인 새하얀 두루미들도 줄지어 서 있다.
아침부터 이런 풍경을 맞이할 수 있다니, 내 인생에서 맞이한 아침 중에 최고의 아침이다. 아무도 밟지 않고 아무런 것에도 더렵혀지지 않은 새하얀 눈을 보는 기분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금방이라도 무엇인가에 더렵혀질까 걱정도 동시에 드는 기분. 이곳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고 가장 거슬리는 단 한 가지는 우리 사람들이 만드는 찰칵거리는 기계음뿐이었다. 나 또한 두루미들의 적막함을 깨는 사진가들 중 한명이라는 사실이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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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을 여는 두루미와 셔터소리. ⓒ 김어진
일출의 여명이 점점 짙어지고 주황빛 해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두루미들은 잠에서 일어나 그들만의 아침을 시작한다. 몇 녀석은 기지개를 피고, 깃을 고르고, 앞 발차기로 몸을 푼다. 진작부터 일어나 있던 한 녀석이 강물을 따라 컨테이너 앞에 사람들이 뿌려놓은 옥수수를 먹으러 걸어왔는데 그 뒤에 나타난 두루미 한 가족이 냉큼 비키라고 달려든다. 덩치를 부풀리고 목을 앞으로 기울여 다가가자 먼저 와 있던 한 녀석은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눈치채고 몇 걸음 도망간다. 이긴 녀석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꼭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목을 치켜세우고 노래하듯 '뚜루루~' 하고 운다.
이렇게 컨테이너에 편안히 앉아서 두루미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니 참 편하다. 새벽부터 좁은 위장 텐트에 앉아서 덜덜덜 떨어야 할 일도 더 이상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 입장이지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위치에 놓인 두루미들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두루미를 진정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둑에 설치해 놓은 컨테이너도 다 치우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도 계신다.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두루미들을 위해선 옳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곤 해도 두루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안 주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컨테이너 설치 같은 이러한 조치는 임시방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람이 점점 많아질 텐데 그때마다 컨테이너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이 곳을 관리하는 사람도 전혀 없다. 사진 촬영비로 1만 원씩 거둘 뿐이다. 보다 지속가능한 대처방안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만약 철원 군수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점점 사라져가는 두루미들을 이렇게 방치해놓지 않을 텐데.
세계적으로도 그 수가 많지 않아 멸종 위기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두루미들의 서식지는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의 간섭은 더 심해지고 있다. 오랜 세월 우리 조상님과도 함께 살아온 소중한 우리 새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못 알아보는 듯하여 애석하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보다는 보호종들을 우선시 하며 보호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춰야 할 텐데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편의를 더욱 우선시 하니 문제라는 것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두루미를 내쫓게 될지도 모르는 DMZ평화생태공원도 사람들의 편의 우선으로 이름만 생태평화뿐인 공원이 들어설까봐 그것도 걱정이다.
나는 두루미를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행복하지만 철원에 올 때면 언제나 착잡한 기분뿐이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사려져가는 우리 자연에 대해서 알게 되고 올바른 환경 의식을 가진 공직자들과 두루미를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머리 맞대면 두루미도 편히 쉬다 가고 사람들도 두루미들을 볼 수 있는 현명한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부디 우리 새 두루미가 후손들에게까지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현명한 보호 방안이 생기길 바란다. 우리 조상님들이 우리에게까지 두루미가 남을 수 있도록 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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