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발 KTX'... 정부가 밀어붙이는 진짜 이유는?

[현장] 철도민영화 방지 해법 토론회... "자회사 백지화 말고 답 없어"

등록 2013.12.26 21:42수정 2013.12.2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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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내가꿈꾸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26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철도민영화 방지 해법 마련 긴급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김동환


"12월 28일(민주노총 총파업일)에 모여야겠네요"(권영숙 서울대 교수)

'여론을 통한 수서발 KTX 자회사 무조건 백지화'. 철도·통상·법조계 전문가들이 2시간여 토론을 걸쳐 내놓은 유일한 결론치고는 다소 황당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철도면허 부여를 어떻게든 막아내지 않으면 철도민영화를 저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전국 교수협의회, 교수노조 등은 26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철도민영화 방지 해법 마련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초반 논의는 야당 의원들의 법 제정을 통한 철도 민영화 방지 쪽으로 흘렀지만 이내 한계점이 발견됐다.

이들은 미국 자본의 투자 가능성을 감안해볼 때 국회의 입법 노력은 효력이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정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막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민영화 반대 여론을 유지하고 공론화하는 방법 말고는 답이 없다는 인식이다.

"국민연금 들어와도 수익추구... 자회사 설립 = 민영화"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와 철도공사가 내놓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안이 명백한 민영화라고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오건호 내가꿈꾸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민영화의 핵심은 수익추구"라고 지적했다. 민간 위탁을 하든 주식 매각을 하든 일단 공공기관이 시장 자본처럼 수익성을 추구하면 그게 바로 민영화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분을 국민연금에게 주면 민간 매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국민연금법을 보면 국민연금은 적립금의 운용할 때 시장 수익률을 넘는 수익을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실상 민간 자본과 똑같습니다."


오 위원장은 수서발 KTX 자회사의 지분이 민간 자본으로 넘어가는 전통적인 '민영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앞서 정부는 수서발 KTX 도입과 관련해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설립되는 자회사 정관에 민간 자본에 주식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삽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현오석 부총리는 최근 새로 생기는 자회사를 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서승환 국토부장관은 "민간에 주식을 매각할 경우 자회사의 철도면허를 박탈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수서발 KTX 자회사 도입은 철도민영화가 무관함을 다방면에 걸쳐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오 위원장은 이에 "정관 조항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공공기관 지정 여부는 민영화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민변의 김선수 변호사는 "이미 나와있는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그런 규정이나 행위 자체가 효력이 없다"면서 "철도공사 측도 사전에 법무법인 등에 자문을 거쳤기 때문에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수서발 KTX 자회사에 대한 민간 투자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이런 효과가 희미한 방법들 대신 국회 입법을 통해 법적인 강제조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정부도 철도민영화 생각이 없다면 관련법인 철도산업기본법과 철도사업법을 손질해 수익을 추구하는 시장자본이 철도 경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철도면허도 줄 수 없게 하자는 것이다.

"수서발 KTX 자회사에 면허 주면 해외 자본에 철도 개방돼"

다소 평이하게 진행되던 이날 토론회는 '미국 자본이 수서발 KTX 자회사에 투자한다면'이라는 가정이 나오자 복합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정부가 내놓은 민영화 방지책 뿐만 아니라 토론회 참가자들이 내놓은 철도민영화 방지 해법들도 FTA 앞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미국 자본은 국내법에 앞서 한미FTA 협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있다. 통상전문가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수서발 KTX 자회사에 미국 자본이 투자할 경우 사실상 국내 철도에 자유로운 진입이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현행 한미FTA 조항에 따르면 미국 자본은 형식적인 조건만 갖추면 철도면허 획득이 가능하다. 다만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지어진 철도 구간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철도공사가 아닌 새로운 법인에 면허권을 부여하는 순간 그같은 제한은 사라진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한미 FTA 협정서를 보면 일정 시기 이전에 지어진 구간에서는 철도공사만이 철도운송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어요. 원래 FTA는 시장접근을 막으면 안 되는 건데 철도는 공공기간 산업이기 때문에 예외를 둔 겁니다. 그런데 이걸 자국 기업(수서발 KTX 자회사)에 개방해주면 미국에도 동등하게 개방을 해줘야 하지요."

굳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필요도 없다. 현재 동대구-부산 구간은 미국 자본의 합법적인 법인 설립과 운용이 가능하다. 호남선의 경우에도 평택-오송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방된 상태다. 이 교수는 "수서발 KTX 자회사에 미국 자본이 투자할 경우 고속철도 전 구간에 대한 운용이 가능하다"면서 "남북관계가 풀려서 유럽까지 철도가 연결될 경우 상당한 투자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도 해외 개방 쉽게 하려는 사전작업 아닌지 의심돼"

이같은 위험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수서발 KTX 자회사를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론회 참가자들은 '전혀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가 경쟁체제 도입의 주요 이유로 꼽는 '철도공사 방만 경영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철도공사는 출범 당시부터 5조 80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시작했습니다. 이중 4조 5000억 원은 경부고속철도 운영 부채입니다. 현재 총 부채 17조 원 중 10조 6000억 원 역시 불가피한 차량 구입 비용, 용산개발 사업 손실, 공항철도 인수 등 자체 경영과는 무관한 내용입니다."

박 연구위원은 "철도공사는 MRG(최소운송수입보장제) 기준으로 30년 간 7조 원을 절약했으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115명의 인력을 감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적자 지방노선에 대한 국가보상은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철도공사에 과도한 선로사용료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철도공사의 과도한 부채는 방만 경영 탓이 아니라 공공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정부 탓이라는 것이다.

권영숙 서울대 교수는 정부의 근거없는 철도 민영화 추진이 해외 자본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4일 프랑스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조달 시장개방을 공언한 바 있다. 이후 국내에 돌아와서는 현행법상 거쳐야 하는 국회 동의도 없이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협정 개정 의정서 비준을 재가해 논란을 빚었다.

권 교수는 "국내 민간업자에 대해서 철도시장을 개방해야지 이후의 해외 철도개방이 용이하다고 보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토론회를 마친 후 이해영 교수는 "굳이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치하지 않아도 한미 FTA 협정문을 고치면 해외 및 국내 민간 자본의 철도시장 진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짚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정부조달협정 의정서 하듯이 하면 되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의 속내가 해외 자본에 대한 철도시장 개방에 있다는 데 그 역시 한 표 던진 셈이다. '간단한 방법을 놓고 왜 앞뒤 논리도 안 맞는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걸까요'라고 물었더니 이 교수는 웃었다.

"철도 민영화 국민들이 다들 싫어하는데 대놓고 할 수가 없잖아요."
#철도 파업 #철도민영화 #국토부 #철도 민영화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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