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에 한 번씩 열린 공산당원 모임 현장.
사라 달루아
당원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서 국내외 소식들을 서로 나누고, 토론하며, 입장을 정하고,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매주 거리로 나가 당시 공산당에서 발행하던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팔았다. 그것이 공산당 조직을 유지시키는 살림의 밑천이었다. 나중에는 당의 기관지인 '위마니테(Humanité)'를 팔았다. 당의 기관지를 1주일에 한 번, 12매씩 팔면서 동네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주요 이슈에 대한 당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은 공산당 활동가들의 기본적인 활동이다.
사라는 일흔다섯 살 때까지 이 활동을 계속했다. (지금도 토요일이면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위마니테'를 파는 나이 많은 공산당원들을 볼 수 있다.) 베트남 전쟁과 알제리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반전운동을 했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를 위해서도 무수한 집회와 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 인종차별정책) 활동에 참가했다.
물론 활동가로서만 살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피혁제품을 집에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피혁제품 제조와 판매는 당시 폴란드계 이민자들이 많이 종사하던 직종이었다.
"이브 몽탕이 영화에 나올 때 입고 나오던 그런 옷 못 봤어? 그런 걸 우리가 만들어서 시장에다 내다 팔았지." 이후 사라는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한다. 시장에서 점원으로도 일하고,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도 일했다. 그녀가 사마리텐 백화점에서 해고된 것은 공교롭게도 미테랑 시절이었다. 열성적인 노조활동가이기도 했던 그녀는 사측의 미움을 샀던 것이다.
오직 살기 위해, 사랑을 택하다사라는 유대인들이 밀집해 있는 마레 지역에 산다. 유대인들의 교회인 시나고그가 있고, 시온주의자들 특유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 신앙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완벽한 무신론자다.
여전히 이디시어(Yiddish :중앙-동유럽권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유대인이지만, 그녀는 다만 칼 마르크스, 넬슨 만델라같이 자본주의, 인종차별주의 같은 인류의 비참을 빚어낸 틀을 깨부수기 위해 싸운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과 함께 인류에게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평화 그리고 더 많은 인권이 주어지도록 노력했다. 그것이 그녀를 지탱하게 해준 신앙이었다.
사라에게 전쟁과 학살을 온몸으로 관통한 소녀가 돌아온 파리에서 70년 동안 이토록 넘치는 생명력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부모를 잡아간 사람들이 나치가 아니라 프랑스 경찰이란 사실을 안다. 부모의 집을 차지하고 끝내 내놓지 않아 결국은 재판을 통해서 집을 되찾게 만든 아파트 수위도, 열두 살의 소녀를 학교에서 내쫓은 교장도 프랑스인이었다.
2차대전 중, 나치에 협력한 페탱 장군의 비시정부는 프랑스의회가 절대권력을 부여한 합법적인 프랑스 정부의 수반이었다. 나치의 광기만을 탓하기엔 거기에 협력한 프랑스인의 수가 너무 많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이토록 건강하게 프랑스 사회에 뿌리박고 살 수 있었을까? 그녀의 가슴 한구석엔 분노와 증오가 이글거리진 않았을까?
"살아야 하니까, 인류에 대한 믿음을 택한 거지. 내가 왜 모르겠어. 내 부모를 데려가고, 고아에게서 집을 뺏어간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날 돌봐주고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 내 후견인이 되어주고, 또 내가 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재판을 함께 준비해준 사람들도 프랑스 사람이었지. 우린 계속 배신당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인류에 대한 믿음을 선택한 거야. 안 그러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사라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충만한 사랑을 누린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 사랑이 나를 이렇게 살 수 있게 해주었지." 그녀가 말하는 그 사랑은 바로 조셉과 나눈 절박하고 열렬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셉은 사라가 서른아홉 살이던 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쉰넷이었다. 일찍 떠났지만 그와 함께한 20여 년의 세월이 그녀를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해준 것이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내 명치끝은 어찌나 아려오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