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양치기 정부'로는 '빚더미' 한국 경제 못 살려"

[근혜노믹스 1년을 말하다①] 김상조 한성대 교수 "대통령, 경제민주화 의지 보여야"

등록 2013.12.31 08:37수정 2013.12.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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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안녕들 하십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과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당선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경제 분야 전문가 3인과 함께 '근혜노믹스' 1년을 돌아봤습니다. 첫 순서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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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교수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는데 회복하려는 노력이 안 보인다." ⓒ 권우성


"지금은 정부가 경제 민주화와 경기 활성화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문제는 누구도 정부를 안 믿고 있다는 거죠. 정부의 경제 정책은 뭐가 됐건 이렇게 '믿음이 안 간다'는 인상을 주면 의도한 효과를 낼 수가 없습니다. 기업에 투자 독촉해봐야 투자가 안 나와요."

"신뢰가 무너졌다"는 표현이 와 닿았다. 그는 이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재벌개혁 전문가답게 기업 여론에도 밝았다.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기업 쪽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는 말도 했다.

24일 연구실에서 마주앉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근혜노믹스' 1년에 대한 평가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는데 회복하려는 노력이 안 보인다"는 지적도 함께 내놨다. 성적도 신통치 않지만 그보다는 학습 태도가 더 문제인 학생을 평하는 투다. 그는 "적절한 정책이 나와도 지금은 시장에서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걸까. 김 교수는 올해 박근혜 정부가 범한 가장 치명적인 실수로 7월에 있었던 박 대통령의 발언을 꼽았다. 박 대통령은 6월 말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일부 통과되자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마무리됐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경제민주화 포기'로 비춰져 정부의 신뢰도를 크게 낮추고 시장 참여자들을 교란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정부·가계·기업의 부채 압력이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MB 정부 때 급격히 늘어난 부실기업을 빠른 속도로 솎아내지 않으면 경제의 활력 자체가 죽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하면서 "정부가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내년부터는 노사문제도 본격적으로 불거질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경제 민주화도 경기 활성화도 실패"

우선 근혜노믹스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부터 물었다. 김 교수는 웃으며 "솔직히 그런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느낀 근혜노믹스는 '혼돈'이었다. 김 교수는 "올해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부분적으로 보면 잘 한 것과 잘 못 한 게 섞여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일관된 방향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대선과 집권 초기에는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내세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민주화는 접어버리고 경기 활성화를 밀기 시작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이같은 경제정책 운용이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예측가능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정책이 예측 불가능하고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경제 주체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경제민주화도 경기활성화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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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지난 7월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식으로 말했거든요. 이 말이 나온 이후로 재계에서는 모든 경제민주화 공약을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지요." ⓒ 권우성


- 박근혜 정부가 상반기에는 공약대로 경제민주화를 하는가 싶었는데 하반기에는 상당히 흐지부지 됐습니다.
"경제민주화도 중요한 목표지만 경기 활성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입니다.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부채 압력을 생각하면 극단적인 경기 부양책이 필요할 수도 있는 그런 상태거든요.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활성화 시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경제민주화를 가져가야 식으로 둘 다 해야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 경제민주화는 아예 접고 경기 활성화에 주력하는 분위기인데요.
"대통령이 지난 7월에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죠. 6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 6개가 통과되니까 '경제민주화 주요 입법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식으로 말했거든요. 이런 식의 발언은 경제 주체들에게 의미있는 '신호'로 작용합니다. 이 말이 나온 이후로 재계에서는 모든 경제민주화 공약을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헛갈려하기 시작했습니다."

- 지금 한국의 경제 흐름이 경기활성화 쪽으로 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흐름이라는 게 있거든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서 당선됐는데 그건 경제민주화라는 게 이미 다수의 사회구성원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를 접고 경기활성화? 그렇게 안 됩니다."

- 예를 하나 들어주신다면.
"얼마 전 삼성 그룹이 계열사 간 지분율을 조정했어요. 시장에서는 이걸 후계자 승계를 염두에 둔 계열분리로 해석했지만 사실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피하기 위한 조치의 성격이 강합니다. 총수 일가 지분율을 전체의 30% 이하로 낮추고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도 30% 이하가 되도록만 만들면 일감 몰아주기에 안 걸리거든요.

삼성 뿐만 아니라 10대 그룹 전체가 하반기에 비슷한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내년 6월 일감몰아주기 과세신고에 총수 이름이 안 올라가게 하겠다는 거죠. 내년에는 정의선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로 얼마 내고 이재용이 얼마 냈다는 식의 기사가 안 실리게 하겠다는 거에요."

- 올해 6월에 나온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 자체가 '신호'가 됐다는 거군요.
"시민사회에서는 그 법 나왔을 때 내용이 미비하다고 불만이 많았어요.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의 일감 몰아주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인 셈이죠. 그러면 기업은 피해갈수밖에 없어요.  사실 전 이 법이 나왔을 때 재벌 대기업들이 위헌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상속·증여세법은 세금을 한 번만 내면 되는데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매년 하도록 되어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와서 누가 위헌소송 냅니까. 이렇게 우리 사회의 합의가 어느 방향이라는 걸 분명히 제시해주면 기업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기업부채 심각...주인있는 40대 재벌기업 중 25%가 부실기업"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경기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채무부담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0.9%의 기업이 모든 기업이 내는 이익의 60%를 가져간다"는 말도 했다. 그만큼 현재 한국 경제가 기형적인 형태로 침체되어 있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은행의 금융안정지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부채는 이미 가계부채 위험도와 동일한 수준이다.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만드는 주범으로는 부실기업을 지목했다. 그는 "동양사태에서도 드러났던 것처럼 총수 일가들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고 회사의 부실을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를 안정적으로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적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 올해 드러난 한국경제의 대표적인 위험요소가 있다면.
"부채죠. 정부 부채는 아직 여유가 좀 있고 가계 부채는 어느정도 예상한 문제인데 기업 부채는 정말 심각합니다. 투자나 고용에도 악영향을 끼치고요. 사실 지금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를 빼고는 이익이 나오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MB정권 5년 동안 '비지니스 프랜들리' 기조 아래 구조조정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부실 기업들이 급증했어요."

- 부실기업이 어느 정도나 되나요?
"통상 부채비율이 200%를 넘으면서 이자보상비율이 1이 안 되는 상태가 2~3년 지속되면 부실기업이라고 합니다. 현재 주인이 있는 재벌그룹 40개 중 절반 가까이가 연결재무재표로 계산했을 때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요. 그중 절반은 이자보상비율이 1이 안 되죠."

- 부실기업이 늘어난 이유는 뭐라고 보시나요?
"이번 동양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총수일가들이 자기 이익 때문에 부실기업이 생겨도 구조조정을 안 합니다.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구조조정을 해야하는데 오히려 다 분식회계하고 배임하고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쓰레기 기업'이 된 후에야 법정관리 신청을 하죠.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런 걸 막으려면 기업 내부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공시나 신용평가 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 올해 정부가 입법 예고했던 상법개정안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는데 결국 재계 반대로 아직 법안이 제출되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에 10대 그룹 총수와 오찬 회담을 가진 후에 바로 수정에 들어갔죠.(웃음) 상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이중대표소송제도 두 가지입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된 사외위원이 해당 기업을 모니터링하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중대표소송제도는 비상장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장되어 있는 모회사의 주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에요. 총수가 마음대로 그룹을 휘두를 수 없게끔 기업 내부에 아주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이지요."

- 재계에서는 왜 반대했나요.
"이게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에요. 그래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도 올해 초까지는 드러내놓고 반대를 못했어요. 경제민주화 분위기도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정도의 분위기였지요. 그런데 자꾸 정부가 경제민주화 끝났다는 신호를 주니까 상법개정안 전부를 부정하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었어요."

"박근혜 정부, 양극화 해결 반드시 이뤄진다는 일관적인 신호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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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소통과 신뢰 얘기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아무리 말로 해 봐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소통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죠." ⓒ 권우성


철도노조가 사상 최장인 23일간 전면 파업을 벌였다. 파업의 주 이유는 임금인상이 아니었다. 대선 공약에서 국민 동의없이는 민영화 없다고 약속한 정부가 철도민영화를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신뢰의 문제가 경제영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내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 신뢰의 회복을 꼽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경기활성화 정책은 효력도 없을 뿐더러 지속가능성도 떨어진다는 이유다. 그는 "특히 양극화 해결을 위한 경제민주화가 반드시 이뤄진다는 일관적인 신호를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박근혜 표 경제민주화는 끝났다'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올해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또 바뀔수가 있거든요. 저는 시민사회 움직임만 보는 게 아니라 기업 쪽 사람들도 많이 만나요. 기업들이 공통으로 하는 불만이 뭐냐면 경제민주화든 경기활성화든 다 좋은데 어느 방향으로 갈지 분명하게 알려달라는 겁니다. 사업이라는 게 미래가 불투명하면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로비활동 말고는 뭘 할 수가없어요."

- 경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내년에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일은 무엇일까요?
"내년 한국경제 화두는 노사문제라고 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 각종 노동 현안들이 산적해있고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경기 활성화로 들어가면 바로 충돌이 일어날 거에요."

- 애초 약속은 경제민주화였으니까요.
"그렇죠. 양극화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 줄 거라는 신뢰를 줘야 합니다. 청와대에서 소통과 신뢰 얘기 많이 하는데 그런 건 아무리 말로 해 봐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소통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죠.

진보 학자로서 제가 원하는 경제민주화를 박근혜 정부가 다 해줄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해줘야 하는 시대적인 과제가 있습니다. 야당 역시 대선 때 똑같이 경제민주화를 제시한만큼 그에 걸맞는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실현을 시켜야 합니다."

- 박근혜 정부에 당부의 한 마디를 하신다면.
"35개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정권 내에 완성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경기 활성화 정책을 우선적으로 펼수도 있습니다. 경제 환경에 따라 정권의 선택은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나 경제민주화 기본 방향은 절대 잊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을거라는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정된 정책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김상조 #박근혜 #근혜노믹스 #경기활성화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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