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고생해가며 죽은 이집트를 꼭 봐야해?

[가다툰의 네버랜드-이집트⑫] 숨막히게 행복했던 두번째 이집트 여행

등록 2014.01.01 21:34수정 2014.01.0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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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으로 둘째라면 서운한 나라

아뿔싸, 피라미드에 가는 날인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 전날 칼리드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에 우리는 아롬이를 만났다. 아롬이는 나의 대학 동기다. 그녀는 언제나 잘 웃는 데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귀여운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마음 씀씀이가 예쁘고 주변 사람들까지 언제나 웃게 하는 매력적인 친구였다.


언제나 가까이서 지켜본 건 아니지만 지난 5년 동안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그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평생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마침 우리가 이집트를 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서 유학 중이었다. 나흘라와 아롬은 2011년 요르단에서 유학할 당시 이웃이었고, 나는 이듬해 나흘라의 새로운 이웃이 됐다. 우리는 한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마디(Maadi)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마디에 내려 개찰구를 나오니, 저 멀리 아롬이 보인다. 일 년 넘게 만나지 못한 친구를 이집트에서 만나는 기쁨에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얼싸 안았다. 그리고선 셋이서 껴안고서 방방 뛰면서 돌고 웃으며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다시 환호하며 얼싸안았다.

한바탕의 소란이 지나고, 여전히 들뜬 목소리로 "대박"만 외치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는데, 그새 우리 주변엔 우리의 재회를 흥미롭게 구경하는 이집션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선 함께 웃으며 "마브룩!(축하해!)"하며 박수를 쳐준다. 역 앞에서 휴지를 팔고 있던 아주머니도 짝짝짝, 손님을 기다리며 차를 세워둔 택시 아저씨들도 짝짝짝, 제 갈 길을 가던 사람들도, 심지어는 역의 역무원 아저씨들까지 나와서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박수를 쳐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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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아롬과 나흘라 귀여운 목소리와 상대방을 웃게하는 매력에 이보가 '스폰지밥'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아롬과 '할머니' 나흘라 ⓒ 김산슬


우리는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순간 멍해졌다가 다시 깔깔거리며 서로를 껴안고는 캥거루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사람들도 즐겁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쳐준다. 사실 이전에도 한 번 꼭 같은 일이 있었다. 그것도 이곳 마디 역 앞에서. 그때는 처음 겪는 박수세례에 그들과 어울려 신나게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이집트는 그대로였다. 그들의 이토록 사랑스러운 오지랖까지도.

그날 저녁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중국음식을 먹었다. 한국을 떠난 뒤 처음 먹는 중식이었다. 요르단에서 우리가 사는 곳은 수도와 멀리 떨어진 곳일 뿐더러 요르단은 이집트보다 물가도 훨씬 비쌌기 때문에 서양 음식이나 아시아 음식을 먹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데다 푸짐하고 값싼 중국식 저녁 만찬은 길거리 음식에 지쳐가던 우리에게 활력이 되었다.


이보 또한 역시나 아롬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말이라면 누구에게도 단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그의 말문을 막히게 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게 만든 건 아롬이 처음이었다. 이보는 그녀에게 '스펀지밥'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고, 언제나 수많은 에피소드를 달고 다니는 아롬이의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던 우리의 수다는 자정을 향해가는 시계를 보고서야 하는 수 없이 중단됐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만 아주 깊은 잠에 들어버리고 만 거다.

피라미드에 가기 싫었던 이유

얼른 이보에게 전화를 해서 이제야 일어났다고 얘기한 뒤 나는 따로 이동해서 피라미드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기자 피라미드를 가는 방법은 총 두 가지다.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것인데,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방법은 지하철을 이용해 기자(Giza) 역까지 이동한 후에 거기서 피라미드로 가는 택시를 잡아 흥정하는 방법이다.

피라미드를 보러 가는 이들은 99퍼센트가 관광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때문에 피라미드로 향하는 길목부터 모든 것이 '관광지 가격'이다. 지하철역에서 피라미드까지 가는 길은 보통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생각보다 먼 거리여서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기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미터기가 있는 택시를 타도 조작을 하면 그만이고, 미터기가 없는 택시를 타면 거리만큼의 가격을 예측할 수 없으니 또 요금 폭탄을 맞기 십상인 거다.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정 많은 이집션과 수다를 떨며 '살아있는' 21세기의 이집트를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천하의 사기꾼들을 상대해가며 소리 지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그 곳에 가서 파라오의 위엄 따위는 느낄 수 없게 된 지 오래인, 철저히 관광화 되어 이미 '죽어버린' 이집트를 봐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게 피라미드는 맛 없는 피자의 가장자리처럼 이집트의 가장 덜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기자 노선으로 환승을 하려 기다리는데, 반대편 승강장에 붙어있는 이집트 민주화 혁명에 관한 광고판이 내 시선을 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그 앞에 앉아있던 사내 두 명이 손을 흔든다. 내가 자신들을 쳐다보는 줄 알았나 보다.

내가 웃으며 손을 흔들자 그들은 내 화답에 이번엔 미소와 함께 더 큰 손짓으로 화답한다. 혼자 지하철을 기다리며 바짝 긴장하고 있던 몸이 이완되면서 내 마음도 다시 사르르 녹아내린다. 낯선 이방인의 인사 한 번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 친밀함으로 다가와 이방인의 얼굴에도 미소를 띄게 하는 곳, 내가 사랑하는 이집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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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트(Sadat)역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던 두 남자. ⓒ 김산슬


기자로 가는 길, 카이로 대학교 역을 지나자 그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처음 이집트에 발을 디뎠던 날이 떠오른다. 마치 어제도 왔던 것처럼 모든 것이 너무나 친숙하다. 기자 역에 내리긴 했는데 하도 오랜만인데다 이전에도 여동생이 놀러 왔을 때 딱 한 번 와보았던 곳이라 출구가 어디였는지 영 가물가물하다. 역 밖으로 나가면 온통 내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 뿐이니 지하철역을 벗어나기 전에 함께 내린 이들 중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게 현명한 방법이었다. 마침 역무원 아저씨가 보여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알 아흐람으로 가려면 어디로 나가서 택시를 타나요?(아랍어로는 피라미드가 아닌 알 아흐람이다.)"
"저쪽으로 나가서 곧장 내려가면 택시들이 줄 서있을 거예요."

그때 깔끔한 운동복 차림의 이십 대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영어로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영어할 줄 아세요? 제가 택시 말고 버스 타는 법을 알려줄 수 있어요"

첫번째 남자는 인사, 두번째 남자는 미소, 세번째 남자는?

여행 중 누군가 기대 이상의 뜻하지 않은 친절을 베풀려고 할 때면 언제나 나는 냉정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게 있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건 그 사람의 '눈'이었다. 나는 사람의 눈은 이십 대를 지나면서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닌 그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비춘다는 개똥 철학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내가 찰나의 순간 낯선 이의 선의를 제안 받을 경우, 상대방의 눈은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 데 꽤나 정확한 척도가 된다.

사실 이 남자의 인상은 여느 짓궂은 이집션 남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우선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든 빨리 피라미드에 도착하는 거다. 거기다 어차피 이곳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부근인 데다, 놈이 허튼 짓을 하려거든 한 번 세게 걷어차준 뒤 다시 택시를 타는 곳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다. 나는 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그를 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그를 따라 역을 나왔다. 그때 그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으로 입을 뗐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 사람 맞죠?"

단번에 얼굴만 보고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아내는 걸 보니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 같았다. 이집트 아인샴스 대학교에는 아프리카 유일의 한국어과가 있고 중동 아프리카 전체를 통틀어서도 처음으로 한국어과가 개설된 곳이다. 게다가 주 이집트 한국 대사관에서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아랍어 강좌가 있기 때문에 카이로에서는 내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고서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귀여운 이집션 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웃으며 아랍어로 화답했다.

"아이와, 아나 민 쿠리야 가누베야. 케이파 타으리푸 아나 쿠리?"
("네. 난 한국에서 왔어요. 근데 내가 한국인인 건 어떻게 알았나요?")

낙타처럼 긴 속눈썹을 가진 그의 눈이 커다래진다. 그러더니 커진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숨도 쉬지 않고 아랍어로 질문을 와르르 쏟아낸다.

"오 맙소사! 아랍어를 할 줄 아는 거예요? 난 카우치 서핑을 하는데 이제껏 몇 명의 한국인 게스트를 받은 적이 있어요. 아 참, 오늘도 한국인 남자 두명이 오기로 한 걸요? 그나저나 어떻게 아랍어를 할 줄 아는 거예요? 아랍어를 하는 한국인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오 맙소사, 맙소사."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맙소사를 반복했다. 내가 아롬과 만나 "대박"을 줄곧 반복했던 것처럼. 그의 이름은 이브라힘이었다. 스물일곱 살이라는 그는 짧지만 단정하게 자른 곱슬머리와 그 머리칼 색깔과 꼭 같은 색의 깊은 눈, 보기 드물게 훤칠한 키와 운동으로 다져진 듯한 다부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외모에서 나는 그가 참 야무진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버스를 타기 위해 우리는 6차선 도로를 건넜다. 그가 제안했다.

"당신이 버스를 타기 전에, 차 한 잔을 함께 하고 싶어요"
"아, 너무 고마운 말이지만, 사실 지금 피라미드에서 제 친구들이 날 기다리고 있어요. 그들을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요. 미안해요."
"어차피 당신이 탈 버스는 십분 뒤쯤 도착할 거예요. 버스가 서는 정류장 앞에 작은 찻집이 있어요. 그곳에서 차를 마시다가 버스가 오면 바로 타고 가면 돼요. 어떤가요?"

나는 또 한 번 고민했다. 도로 하나를 건너는 동안의 짧은 대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좋은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알기에는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결정은 내리는 데는 좀전만큼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를 마시는 것쯤이야. 극단적으로 생각하자면 찻잔에 뭔가를 탈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보면 될 일이다. 택시기사와 가격을 흥정하며 씨름했을 십분을 이곳에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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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라힘과 함께 앉은 길거리의 찻집 ⓒ 김산슬


'십분'만 앉아있을 그곳에서 그는 쉬샤(물담배)를 주문했다. 내가 버스를 타도 그는 그곳에 더 머무를 생각인 듯했다. 그가 물었다.

"이집트엔 언제 온 거예요?"
"2년 전 처음 이곳에 왔어요. 카이로 대학교에서 공부했었죠. 그러다 민주화 혁명이 터져 돌아가야만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요르단에서 공부 중이고요. 비밀인데, 그거 알아요? 내가 요르단을 선택한 이유도 사실 방학 때 이집트에 오기 위해서였다는 거?"

"맙소사, 그러면 우리의 역사가 바뀌던 그 순간 당신도 여기에서 함께 했었군요. 무바라크를 몰아냈던 그날을 잊지 못할 거예요. 함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하, 그럼요. 지하철에서 최루탄이 터져서 꼼짝없이 발이 묶여 결국은 택시를 타고 돌아갔던 일, 금요일 아침 인터넷은커녕 일반 전화까지 불통이 된 걸 알고 느꼈던 그 두려움과 고립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일주일을 그렇게 집에 갇혀서 CNN 뉴스만 보며 기다리다 결국 반강제로 귀국해야 했어요. 그리고 한국에 도착한 지 딱 일 주일쯤 되던 날 뉴스로 무바라크 정부의 퇴진 소식을 접했죠. 당신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싶었는데, 십 일만 더 참을 걸 하고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몰라요."

"외국인에게 전해 듣는 우리의 이야기라니. 놀랍네요. 소피, 하지만 당신은 그때 돌아가길 잘했어요. 이곳은 그 이후에도 한참 동안 카오스였거든요. 외국인 여성에겐 더욱 좋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그 또한 여행을 좋아했고 사람을 좋아했다. 칼리드처럼 그 또한 이집트를 사랑했고, 그래서 조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우리의 대화는 오랜만에 만난 죽마고우의 수다처럼 끊길 줄을 몰랐다. 그때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보는데 그가 급하게 종이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고는 내게 내민다.

"지금 버스가 오네요. 저걸 타면 돼요. 당신 카메라와 선글라스 잘 챙겨요. 빠뜨린 것은 없죠? 이건 내 전화번호예요. 오늘 하루 당신을 기다릴게요. 당신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꼭 연락해주세요. 그리고 이 버스를 타고 끝까지 가세요. 피라미드로 가는 입구가 두 개거든요. 하나는 관광객들을 속이려고 장사꾼들이 만들어놓은 곳. 하나는 정식 입구. 정식 입구가 어떻게 생긴 줄 한번 가 봤으니 알죠?

버스가 설 때 아주 많은 잡상인들이 "피라미드 피라미드" 하면서 당신보고 내리라고 할 거예요. 거기서 절대 내리면 안 돼요, 알겠죠? 그리고 계속 가다 보면 어떤 큰 호텔 앞에 버스가 설 거예요. 그 곳이 바로 진짜 피라미드의 매표소로 가는 초입이에요. 제가 버스 기사에게 당신을 거기에 내려달라고 말해둘게요. 제일 앞자리에 타세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거든 꼭 전화해요. 내가 거기로 바로 갈 테니까. 당신과 더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조심해서 가고 꼭 연락해줘요. 오늘 당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어요. 기다릴게요."

그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던 말을 마치자 버스가 도착했다. 그는 기사에게 나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내게 한번 더 연락을 줄 것을 당부했다. 그가 창밖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준 이들을 만난 것이 오늘만도 세번째다. 게다가 세번째 남자와의 만남은 꽤나 흥미로운 것 같다. 오늘 처음 만난 이에게 초대받은 저녁 식사라니! 벌써부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러니 어떡하나. 이 나라가 그리도 그리웠을 수밖에!

피라미드 행 버스에서 조수로 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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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로 가는 길의 거리 기자지역은 카이로 중심부에 비해 더 이집트스럽고 지저분한 거리가 많다. ⓒ 김산슬


버스를 타고 풍경을 바라보자니 모든 게 예전 그 모습 그대로다. 혼자서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실실거리는 게 이상해 보일까 봐 자제하려 해도 히쭉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모른다. 버스에는 내릴 때 누르는 벨도 없고, 버스를 타는 정류장엔 표지판도 없다.

결국 이곳 토박이가 아닌 이상 이 버스를 타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번호가 있는 버스를 타 본 것은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이집트 사람들도 생각지 못한 승객에 놀랐는지 탈 때마다 내 얼굴을 보고선 눈이 똥그래진다. 나는 놀란 그 얼굴을 마주 본 채 그들이 그렇게 해주었듯 웃으며 인사했다.

"아쌀라무 알레이쿰!" (안녕하세요!)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일종의 놀이가 되어 버렸다. 내가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느라 내리는 승객을 못 볼라 치면 기사 아저씨가 나를 부르며 얼른 인사를 하라고 알려준다. 마치 차장의 조수가 된 기분이다.

"아쌀라무 알레이쿰, 와 알레이쿰 쌀람. 마앗 쌀라마 마앗 쌀라마"(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네 당신도 안녕히 가세요)가 돌림노래처럼 오가는 동안 점점 버스 안의 승객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버스가 서더니 아저씨가 거울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고개를 돌려 나를 보시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하신다.

"야 아쌀! 인질 민 아라베야! 헨 알 아흐람 야 하빕티!"(귀여운 아가씨, 내려요 내려. 당신은 피라미드에 도착했어요.)

(*'아쌀'은 '꿀'이라는 뜻으로 누군가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여겨 부를때 쓰는 애칭이며 하빕티는 나의 심장, 마음이라는 뜻으로 아랍에서 친구, 가족을 통틀어 상대방에게 가장 많이 쓰는 친근함의 표현이다. 여성에게는 하빕티, 남성에게는 하비비라고 부른다.)

아랍어 인사 놀이를 하며 재잘거리던 그의 동양인 조수가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아저씨는 내게 자꾸 "야 하빕티,하빕티"하며 중얼거리신다. 부족한 몇 마디 아랍어로 그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어서 나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제껏 나를 행복하게 해주던 그들에게 진 빚을 조금은 갚은 느낌이랄까. 내가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멋진 한국인 조수 소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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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지역으로 들어서면 거의 어디에서나 피라미드의 꼭대기 부분을 볼 수 있다. ⓒ 김산슬


차에서 내리자마자 낙타 똥 냄새가 더운 바람과 함께 훅 끼쳐온다. 그리고 그 열풍과 함께 그 악명 높은 피라미드의 이집션 상인들이 다가온다. 이보와 나흘라가 있는 저 위까지 무사히 잘 갈 수 있어야 할 텐데. 다시 나는 긴장 태세로 매표소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이집트 #카이로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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