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뮤지컬 <디셈버>

[정지선의 공연樂서] 선택과 집중의 부적절한 안배 VS. 배우들의 열연

등록 2013.12.31 17:22수정 2013.12.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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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을 떠나 보낸 지욱(김준수)이 아파하는 장면 ⓒ NEW


뜨거운 관심 속에서 출발한 뮤지컬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아래 디셈버)>가 개막했다.

고 김광석의 노래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소문난 이야기꾼 장진의 극본과 연출, 최고의 티켓 파워 김준수의 출연은 3천 석이 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오랜만에 북적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탓인지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이 공연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뮤지컬 <디셈버>가 남긴 한 줌의 감동과 두 줌의 아쉬움, 그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 본질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보고자 한다.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고 김광석 탄생 50주년 기념작 <디셈버>는 그의 곡들을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로, 골수 운동권 여학생 이연과 그녀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한 로맨티스트 지욱의 사랑이야기를 골자로 한다. 1막에서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지욱과 이연의 짧은 사랑과 긴 이별, 2막은 20년이 흐른 뒤 이연을 꼭 닮은 화이의 등장으로 겪는 지욱의 혼란스러운 심리상태와 그로 인한 변화를 그린다.

간단한 스토리지만, 가사에 맞춰 만들어진 듯 보이는 캐릭터들과 주인공에 버금가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깊은 배려(?)는 장면이 바뀌고 극의 분위기가 전환될 때마다 맥을 끊어내며 지욱과 이연(화이)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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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스토리 라인을 비롯해 극의 전개에서 보여준 선택과 집중의 부적절한 안배는 아쉬움을 남겼다. ⓒ NEW


가사를 있는 그대로 풀어낸 장면 연출은 단조로움을 넘어 심심할 정도다. 그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서른 즈음에>를 예로 들면, '점점 더 멀어져간다'라는 가사에서 세트들이 하나둘 점점 더 멀어져간다.


익숙한 곡인만큼 연출의 과감한 시도가 돋보였지만, 이제나저제나 그 곡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관객이라면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실제로 김광석의 노래 중 <서른 즈음에>를 가장 좋아한다는 옆 자리 중년 관객은 점점 멀어지는 세트와 작아지는 노랫소리를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약한 스토리 라인을 비롯해 극의 전개에서 보여준 선택과 집중의 부적절한 안배는 뮤지컬 <디셈버>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을 묶어 제자리에 머물게 했다.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더 가까이가지도, 더 멀리 달아나지도 못하고 그저 이렇게 바라보는 것뿐?

사랑이라는 이유로

뮤지컬 <디셈버>의 가장 큰 메리트는 고 김광석의 자작곡과 가창곡, 미발표곡을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노래는 <디셈버> 안으로 녹아들면서 원곡과는 또 다른 느낌의 새로운 감성을 덧입고 다양한 장르의 넘버들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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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와 멜로디를 고려해 자연스럽게 묶어낸 <어머니의 노래>와 <이등병의 편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는 편곡 과정에서 겪었을 어려움이 곡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 NEW


1막 오프닝곡인 <부치지 않은 편지>는 강한 리듬이 더해져 90년대 민주화 열풍을 담아내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변주곡인 <스치다>는 지욱과 이연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려낸다. 가사와 멜로디를 고려해 자연스럽게 묶어낸 <어머니의 노래>와 <이등병의 편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는 편곡 과정에서 겪었을 어려움이 곡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동안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김준수의 열연과 눈물은 물론이거니와 박건형, 오소연, 박호산, 이창용, 임기홍, 김대종 등 주조연의 안정적인 가창력과 연기를 기반으로 한 활약상은 무대 곳곳에서 발견된다. 장진식 유머와 깨알 재미는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세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견뎌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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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의 열연은 물론이거니와 주조연의 안정적인 가창력과 연기를 기반으로 한 활약은 무대 곳곳에서 발견된다. ⓒ NEW


어느 작품이든 높은 기대감은 실망으로 가는 지름길을 활짝 열어놓기 마련이다. 부디 기대감을 낮추고 공연장을 찾길 바란다. 하나 덧붙이자면, 마음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기타의 선율이 간직한 온기와 청량하면서도 서늘한 그의 음성은 '잊어야한다는 마음으로' 관람할 것을 권한다.

뮤지컬 <디셈버>는 1월 5일까지 공연 후 휴연 기간을 가진 뒤 15일부터 29일까지 다시 공연을 이어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지선의 공연樂서 #문화공감 #뮤지컬 디셈버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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