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평우 관장
(주)CPN문화재방송국
- 박물관을 둘러봤는데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습니다."제가 해외에도 이런 전시관 수 없이 많이 봤고, 전국에 있는 자료를 조사해봤어요. '조사를 할 때 이거 굉장히 잘 만들어야 되겠다.' 그리고 들어오는 계단은 좀 답답하지만 입장하면 굉장히 중요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제가 이런 디자인 하나하나 하는 거부터 조명, 유리, 유리에 스크래치 나지 않게 하는 거 하나하나에. 그리고 제가 대학원에서 박물관학을 세부전공하다보니까 관람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끔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이런 것들까지도 신경을 써야했죠."
- 육의전 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서울은 600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발굴다운 발굴조사가 없었고요. 발굴이 되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발굴을 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외국 사람들이 서울에 와보면 서울 600년의 정체성이 무엇이 있냐고 한다면 궁궐밖에 없죠.
왜냐하면 서울은 그동안 임진왜란, 한국전쟁,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많은 건물들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600년 유적들이 없었어요. 그 다음에 밑에 있는 건물들의 기단 이런 것들은 폐허가 되면서 그 위에 축적되어 있었죠. 이런 축적된 유적들에 대해서 발굴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서울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발굴다운 발굴을 못하고 그냥 유적을 밀어버리고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각이 일어섰고 그 다음에 이런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발굴조사를 제대로 해서 뭔가 남겨놔야 하지 않느냐 해서 2003년도 종로에서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발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장대석을 발견해서 신고를 했고, 이 신고를 통해서 서울이 발굴하게 되는 과정을 겪었고 또 청계천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어요.
그 과정에 종로 2가에 건물주가 건물터를 매입해서 9층 건물을 지으려고 하니까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은 탑골공원과 원각사지가 가깝기 때문에 여기도 유적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발굴조사를 했더니, 16세기의 유구들이 나왔습니다. 이때 문화재 위원회는 이 유적터를 보존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대립적인 상황들 속에서 건축주가 저에게 찾아와 획기적인 방안이 없냐고 하소연을 했고, 저는 보존(유적 전시관)과 건물을 짓는 '상생'방안을 제시하여 귀중한 유적들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