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널린 명당... 이렇게 하면 보입니다

[서평] 도선에서부터 최창조까지 <한국풍수인물사>

등록 2014.01.02 18:28수정 2014.01.0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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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묏자리를 잡아 좌향을 살필 때 사용하는 패철(나침반)

묏자리를 잡아 좌향을 살필 때 사용하는 패철(나침반) ⓒ 임윤수


한때, 언론에서 풍수를 말할 때마다 등장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재직중이던 최창조 교수입니다. 청와대 터,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묘와 관련한 풍설이 일 때도 최창조 교수의 말이 회자됐습니다.

<한국풍수인물사>(지은이 최창조, 펴낸곳 ㈜민음사)는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풍수의 실체를 알아보는 한국 풍수의 자화상이자 한국 풍수가 나갈 바를 제시하는 지표입니다.


인물을 통해 본 한국풍수지리의 장대한 역사

탈해왕과 선덕여왕, 자생풍수의 비조인 도선, 조선 건국의 주역인 무학 대사를 거쳐 여기저기서 설치고 다니는 작대기 풍수까지 내용이 이어집니다. 얼기설기 얽히며 울창하고 복잡한 넝쿨처럼 생활 주변에까지 드리운 한국 풍수의 현재 모습인 동시에 뿌리까지 아우른 내용입니다.

묏자리 잡기에서부터 인테리어에까지 거론되는 현실임에도 풍수는 애매모호함을 넘어 아직까지도 혹세무민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한국의 전통적 풍수는 자생 풍수입니다. 책에서는 자생 풍수를 10가지, 주관성, 비보성, 정치성, 현재성, 불명성, 편의성, 개연성, 적응성, 자애성, 상보성으로 정의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a  <한국풍수인물사>┃지은이 최창조 ┃펴낸곳 ㈜민음사┃2013년 12월 9일┃3만 5000원

<한국풍수인물사>┃지은이 최창조 ┃펴낸곳 ㈜민음사┃2013년 12월 9일┃3만 5000원 ⓒ ㈜민음사

책에서는 우리나라에 풍수가 도입·전래된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역사적 풍수 인물들이 추구하였던 풍수를 학자의 눈으로 정의해서 풍수가의 입장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자생 풍수는 저자가 새롭게 주장하는 창조 풍수가 아니라 풍수의 비조인 도선 국사가 펼친 풍수가 자생 풍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선 풍수 즉 자생 풍수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땅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홀로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훌륭한 것, 좋은 것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다.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면 내가 아니라도 사랑해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고지선한 사랑이란 다른 것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 문제가 있는 것,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일 때 의미가 있다.


도선 풍수에서의 땅 사랑은 그런 근본적인 인식 속에서 출발한다. 명당이니 승지니 하는 것은 도선 풍수의 본질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개념들이다." - <한국풍수인물사> 478쪽-

책에서 저자는 대대손손 발복하기를 바라는 명당은 없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내로라하는 풍수가들이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이 잡듯이 헤치며 찾아냈으니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명당이 아예 없다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명당은 없지만 천지사방에 널린 게 명당

저자가 말하는 자생 풍수는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비보(裨補), 모자라는 것은 채우고 기우는 것은 바로세움으로 형성될 수 있는 비보풍수입니다. 비보 효과는 학문이 모자라는 사람은 배움으로 채울 수 있고, 건강이 기운 사람은 운동으로 건강해 질 수 있는 사람의 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명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자라는 것은 채우고 기운 것은 바로 세우다 보면 지금 여기 서있는 이 자리도 얼마든지 명당이 될 수 있는 게 비보 풍수이자 자생 풍수이니, 마음먹고 노력하기에 따라 천지사방에 널린 것이 명당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땅에도 인간의 의지가 반영된다. 너무 반영되어 '환경오염'에까지 이른 것은 돌이키기 힘든 실수지만, 그 의지로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점도 상기해 볼 일이다. 줄잡아 2000년 동안이나 찾아낸 명당이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게다가 백두산의 영기를 이어야 할 백두대간은 수없이 많은 곳이 끊겼기에 전통적인 풍수 이론상으로도 명당은 없는 셈이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명당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명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상황이다. 비보裨補라는 풍수 방책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국풍수인물사> 162쪽-

"자애성은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분명히 부가 어느 정도면 충분한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자들은 반대라고 한다. 부는 충분한 것이고, 그 충분한 것이 아주 조금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만족스러운 사람은 누구보다도 부유한 사람이다.' 명당이란 것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바로 이 땅에 만족하면 그만이다. 자애란 항상 주관적이기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천하에 없는 명당이라 할지라도 명당일 수가 없다. 자신이 아니라고 믿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믿음에도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이 있다." - <한국풍수인물사> 319쪽- 

우린 역사를 통해서 인물을 공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물을 공부하다보면 역사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풍수인물사>를 통해서 공부하는 풍수가 그렇습니다. 자생 풍수의 기원을 알고, 도선 국사와 무학 대사 그리고 그 후예들을 공부하다 보면 그들이 펼치던 풍수와 풍수로 찾고자 했던 가치들을 어느새 알게 됩니다.

a  <한국풍수인물사> 답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지리산 실상사 약사전. 이 약사전에 철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한국풍수인물사> 답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지리산 실상사 약사전. 이 약사전에 철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 임윤수


도선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리산 태안사, 광양 옥룡사지 등을 탐사한 내용을 읽다보면 풍수에 적용된 비보가 어슴푸레 하게 그려집니다. 무학 대사와 한양 천도에 얽힌 내용들을 읽고, 조선시대의 풍수가들과 세종대왕, 선조가 통치에 반영하였던 풍수들을 알아가다 보면 저자가 책을 통하여 전하고자하는 풍수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그곳의 식생이 땅과 상생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자생 풍수는 이해한다. 여기서 나무 대신에 사람을 대입하면 바로 우리 풍수의 정의가 나온다. 결국 좋은 땅이란 없는 셈이다. 있다면 땅과 사람이 상생의 조화를 이루었느냐 그러지 못했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좋은 땅, 나쁜 땅을 가리는 것이 자생 풍수가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맞는 땅, 맞지 않는 땅을 가리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바로 풍수라는 뜻이다. -<한국풍수인물사> 484쪽-

마음먹고 가꾸기에 따라 명당

저자가 말하는 풍수에 동의하지 않는 주장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책에서는 자생 풍수와 비보 풍수를 말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풍수는 마음 풍수라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밥 한술을 먹어도 마음 편한 게 진수성찬이고, 초가삼간에 머물더라도 마음 편하면 고대광실이라고 했습니다. 좌청룡 우백호가 어떻고, 남주작 북현무가 저렇더라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내가 찾고자 하는 명당은 요원한 유토피아일 뿐일 겁니다. 

<한국풍수인물사>를 통해 자생 풍수와 비보 비결을 알게 되면 곳곳이 명당임을 알게 되고, 처처가 명당이 될 수 있다는 걸 터득하게 되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 명당이고, 명당으로 바꿀 수 있는 비결을 스스로 터득하며 명당 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명풍수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한국풍수인물사>┃지은이 최창조 ┃펴낸곳 ㈜민음사┃2013년 12월 9일┃3만 5000원

한국풍수인물사 - 도선과 무학의 계보

최창조 지음,
민음사, 2013


#한국풍수인물사 #최창조 #㈜민음사 #자생 풍수 #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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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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