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얼마나 깨끗하길래!

전철에서 앵벌이 하던 소녀

등록 2014.01.03 20:54수정 2014.01.0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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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철 안에서 본 앵벌이 소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인터뷰를 했으면 했으나, 바쁜 일정 때문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짧은 글을 올려봅니다.


"너는 얼마나 깨끗하길래! "

지난 28일 낮 2시 경이었다. 전철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내 바로 뒤에서 난 소리였다. 큰 소리도 아니었고, 째지는 소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흥에 겨운 소리도 아니었다.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 되는 소녀의 신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어머니를 여의고....'로 시작되는 글귀가 적혀 있는 작은 쪽지를 앉아 있는 승객의 다리 위에 올려 놓으며 한 푼을 구걸하는 소녀. 거지 소녀였다.

소리가 뱉어져 나온 방향을 보니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사건을 나름대로 유추해 본 결과, 거지 소녀는 구걸하는 글귀가 적힌 쪽지를  남자 아이의 무릎에 올려 놓았고 남자 아이는 그것을 보고 더럽다는 식의 말을 한 것이다. 그 거지 소녀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화도 아니고  짜증도 아닌 신음에 가까운 소리.

2012년 한 해만 해도 전국에서 실종된 14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성인 포함)은 1만9천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 거지 소녀는 모르긴 몰라도 오래 전에 실종된 아동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일을 시키는 부모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독자를 감안해서, 그런 특수한 예는 일단 제외하고 얘기하자.

아무튼 인간의 형상을 한 어떤 괴물이 아이 한 명을 납치해서 거지같은 소굴 속에서 아이를 키웠을 것이다. 정상적인 교육과 영양섭취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그 아이는 상상도 못할 학대를 당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의 몸과 마음은 온전함과는 멀어진 상태로 성장했을 것이다. 아이의 몸은 불균형한 영향섭취로 뚱뚱해졌고, 학대에 가까운 교육 아닌 교육으로 마음과 마음의 연결고리도 어그러져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찾지 않았을 아동, 아니면 찾으려 노력했으나 결국 찾지 못해 부모가 피눈물을 삼켜야 했을 아동 한 명.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아 거지 행각을 강요받으며 지옥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 한 명.

그 거지 소녀는 성장하면서 평범한 가정 생활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남들처럼 엄마에게 응석도 부리고 친구들과 수다떨면서 떡볶이를 먹으며 평범하게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싶었을 아이. 누구에게 이 세상이 천국이 될 때. 그 아이에게 이 세상은 지옥 그 자체일 터. 이렇게 세상은 누구에게는 천국이지만, 누구에게는 지옥이다.


그 거지 소녀가 소년을 향해 '넌 얼마나 깨끗하길래'라며 신음에 가깝게 내뱉은 말이 내게는 너무 처절하게 들렸다. 그녀는 '나를 구해줘'라고 외치고 있었던 게다. 소녀는 자기가 뿌려놓은 쪽지를 탁탁 다시 거둬들이며 신경질적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객실에 있던 몇몇 사람은 소녀가 간 곳을 향해 "앵벌이 주제에 짜증을 내내"라며 중얼거렸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마트폰을 꽤 심하게 만지작 거리고 옆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잠을 잤다. 나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 소녀의 눈빛을 생각하면 여전히 몸이 시큰하다.
#실종아동 #아동학대 #인권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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