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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돈'이란
돈이란 사람을 갖고 노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애초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 물건을 사고 파는 거래의 수단이고, 약속일 뿐이기에 돈보다 사람이 먼저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기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저는 덕영이란 회사에 입사해서 결혼하여 두 딸의 아버지로 알뜰살뜰하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덕영은 콜텍으로 인수됐고, 저 역시 콜텍의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돈이 한 일이었습니다. 콜텍으로 회사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저는 저축도 하고 보험도 들고, 자동차도 운전하고 여행도 다니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7년 전 회사는 아무 소식 없이 문을 닫았습니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저축 한 돈 다 쓰고, 보험도 해약하고, 중류층에서 빈곤층으로 제 삶은 그렇게 변해갔습니다. 해고는 살인이었습니다. 특히나 장기 해고 노동자에게는 더욱 모진 살인이었습니다. 딸들은 학자금 대출 받아가며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출금도 갚아야 하는데…, 한 남자가 가정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모두 돈이 한 일입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공기, 물, 나라, 달과 태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걸 살 수 있고,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그 돈이 저에게 왕창 생긴다면 몇 달 동안 술 마시고,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나라를 사고,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차별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돈을 던지고 싶습니다.
돈은 웬수입니다.2013년 5월 31일 초저녁 콜텍 해고자 임재춘대지뿐만 아니라 공기나 물, 우주가 돈에 의해 거래되는 세상글쓰기도 예술의 한 영역이라면, 그 모든 예술의 요소로 '타고난 감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적 감수성이라고 해도 좋은 이것은, 반복과 노력으로는 대체되기 어려운 본성적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예술적 감각은 종종 리듬감으로 표현되는데, 나는 임재춘 조합원의 두 번째 농성일기에서 그 리듬감이 살아난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 돈이 한 일"이라는 반복적인 표현에서 장기 해고자가 경험하는 아픈 현실과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 반복에서 묘한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두 번째 농성일기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글 속의 리듬감은 임재춘 조합원의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읽어온 '시'에서 얻은 바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농성일기라는 일상성 안에서 하나의 주제로 내용을 좁혀냈다는 것이다. 그러자 쓰는 사람의 표현이 자유로워지고, 생생해졌다. 주제는 내가 몇 가지를 던져주고 그 중에서 임재춘 조합원이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돈'이라는 주제어를 정한 임재춘 조합원은 앞서 작성한 농성일기와는 달리 초고 과정이 거의 없이 완성된(본인 스스로 흡족해 하는) 글을 써냈다. 그만큼 '돈'에 관해 그는 생각이 많았던 것이다.
이 글은 지난해 5월 31일 서울 방화동의 '카페 그'에서 낭독했다. '콜트기타 불매 유랑문화제'가 네 번째로 이루어진 날로, '카페 그'라는 공간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과 만나 '돈이 한 일'에 관한 공감대가 충분했던 자리였다.
'카페 그'는 임대차보호법의 부당성으로 카페를 차린 지 8개월 만에 이주 통보를 받았고, 그 후 카페의 운영자들은 임대차 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개발과 소유권의 논리로 삶의 터전이며 문화공간이었던 곳이 파괴되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었다. 임재춘 조합원의 두 번째 농성일기는 뜨거운 박수 속에 읽기가 마무리됐다.
임재춘 조합원이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글의 말미에서 임재춘 조합원은 '돈이 하는 부정의한 일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옆에서 글을 훔쳐보던(?) 유랑문화제 연출팀의 나와 권윤승은 임재춘 조합원이 열거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사실상 돈으로 매매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하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 대목에서 글의 마무리는 달라지고, 임재춘 조합원이 믿었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상황이 글에 어렴풋이 담기게 된다. 대지뿐만 아니라 공기나 물, 우주가 이미 돈에 의해 거래되는 세상. 돈이 왕창 생긴다면 써버리고, 던져버리겠다는 임재춘 조합원의 마지막 포부는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그 '웬수'됨을 생각할 때 아껴서 저축하거나 투자하여 불리는 쪽이 아니라, 써버리고 없애버리고자 하는 심정은 투자와 축적에 맞춰진 돈의 논리에 맞선 한 인간의 진정성이고 통찰이다.
'임재춘의 농성일기' 1회가 나가고, 임재춘 조합원의 "학자금 대출 받아가며 학교를 졸업"한 딸이 기사를 보았다고 한다. 콜트―콜텍의 대주주 박영호 사장이 순이익 초과 달성을 챙길 때 임재춘 조합원 딸은 아버지의 해고와 함께 빚, 그리고 불안한 미래를 물려받았다. 그런 딸이 아버지의 글을 보았다.
그런데 딸은 아버지의 글에 대한 소감보다, 아버지의 글에 단 비난성 댓글에 속상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해고가 살인인 이유는, 그 댓글에도 있었으리라. 임재춘 조합원을 비롯해 그곳의 농성자들은, 한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꺾어내고 좌절케 하는 그 '돈이 한 일'을 두고 싸우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들의 해고와 그들의 장기농성의 이유를 현실 부적응이나 나약한 의지에서 찾는다면 그 생각마저 '돈이 한 일'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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