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며 음독 자살한 고 유한숙(72) 어르신의 맏아들 유동환(45)씨.
정대희
그를 처음 만난 건 식당이었다. 홀로 식당으로 들어온 그는 구석에 앉아 밥을 먹었다. 핼쑥한 얼굴의 그는 지쳐 보였다. 그리고 며칠 후 밀양시청 앞 기자회견장에서 다시 그를 발견했다. 그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홀로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밀양 송전탑 건설 공사에 반대하며 음독 자살한 고 유한숙(72)씨의 맏아들 유동환(45)씨다. 유씨와 스쳐가듯 만남을 이어가다 인터뷰를 계획했다. 첫 만남 후 열흘 정도가 지난 후였다. 인터뷰를 머뭇거린 건 "유족도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밀양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의 말 때문이었다.
며칠 고민을 하다 전화를 걸었다. 묻고 답하는 인터뷰가 아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달해 보자'는 취지였다. 첫 통화는 "축사 일 해야 합니더"란 말이 전부였고 만남은 무산됐다. 얼마 후 "분향소에 있다"며 연락을 해왔으나 이번에는 기자가 다른 취재 일정으로 만날 시간이 안됐다. 어긋난 인연은 마침내 18일 맺어졌다. 고 유한숙씨의 49재를 앞두고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육성으로 남긴 그의 말을 글로 옮긴다. 몸을 부르르 떨며 그가 말했다.고 유한숙씨의 아들 유동환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언론은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소수의 언론만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음독 당일 경찰관 앞에서 765송전탑 때문에 죽으려고 약을 먹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 이외에 다른 이야기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제대로 담아주는 언론은 없었습니다. 기자님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침묵하고 있으십니까.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거짓 없이 진실만을 기사에 담아주십시오. 고인의 유언입니다.
다시 그때 상황을 말씀드립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 뒤 아버지는 765대책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김준환 신부님을 병원에 모셔왔고 신부님이 아버지의 음성을 녹음했습니다. 정확히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765송전탑 때문에 음독했고 반대한다고... 며칠 전 고인의 음성이 담긴 녹취파일을 경상남도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보도해준 언론은 없습니다.
765송전탑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한전과 밀양시, 정부에 명백한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아무런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죠. 공식적인 사과나 책임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시간만 보내고 묻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죠. 묻고 싶네요. 정말 한전, 정부, 밀양시는 책임이 없습니까?
고인이 떠난 후 밀양시장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얘기를 하면 파급효과가 커진다고... 다른 사람을 보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더군요. 밀양시청에 분향소를 설치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였습니다. 경찰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765송전탑과 무관하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아버지의 유언을 직접 들은 유족의 말을 믿지 않고 경찰의 말을 믿더군요. 자기들은 공적기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반면 밀양시는 대집행을 통해 밀양시 영남루의 분향소를 철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청공무원이 아닌 경찰이 천막을 부셨습니다. 명백한 불법입니다. 분향소가 불법시설물이라면 시청에서 대집행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찰이 왜 천막을 부숩니까. 시청은 대집행을 앞두고 협박도 하더군요. 연세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겨우 바람막이 정도로 분향소를 지어 지키고 있는데, 정식으로 허가는 내주지 못할망정 철거하려고 하는 밀양시는 최소한의 윤리도 모르는 부도덕한 곳입니다.
"송전탑 문제 없다면... 한전직원들이 여기서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