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 상권, 장애인이동권 침해 사유될 수 없어"

국가인권위, 인천지방경찰청에 석바위사거리·동인천역교차로 횡단보도 설치 권고

등록 2014.01.21 16:48수정 2014.01.2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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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지하상가 위에 횡단보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인천지방경찰청에 횡단보도 설치를 권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해 2월 문아무개씨와 고아무개씨는 각각 인천 남구 석바위사거리와 중구 동인천역 남광장 교차로에 횡단보도가 없어 먼 거리를 돌아서 횡단하거나 무단으로 횡단하는 위험이 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석바위사거리와 동인천역 남광장 교차로 아래에는 지하상가가 들어서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현장을 조사한 뒤 "석바위사거리는 지하보도가 설치돼 있으나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이 없어 지하도로 횡단할 수 없었고, 지상의 횡단보도는 해당 사거리로부터 최소 200m에서 최대 460m 떨어져있어 먼 거리를 우회해야했다"고 밝혔다.

이 실태조사 결과, 지하상가 한 출구에서 건너편 방향의 출구로 가는 데 비장애인은 1분 11초가 걸렸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19분 47초나 걸렸다. 약 15배 더 걸린 셈이다.

동인천역 남광장 교차로도 장애인이 이동하는 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비록 지하보도에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돼있지만, 기구를 작동하기 위한 여유 공간이 없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지상 횡단보도는 최소 200m에서 최대 673m가량 떨어져 있어 상당한 거리를 우회해야 한다. 또, 우회하더라도 일부 구간의 경우 인도와 횡단보도 간 턱이 5cm 이상이라 위험하고,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통행할 수 있는 유효 폭이 확보돼있지 않아 통행이 어려운 실정이다.

장애인들의 진정에 대해 인천지방경찰청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1조 제4호 횡단보도와 지하도 간 거리 제한 규정에 위배되고, 나아가 지하상가 상인의 상권과 관련돼있어 횡단보도 설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인천경찰청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1조 제4호 단서 조항에는 '보행자의 안전이나 통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도 지하보도가 설치돼있더라도 횡단보도를 설치한 사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국가인권위는 또 "지하상가 상권과 관련돼있어 어렵다고 하는데, 2000년 10월 27일 대법원(98두 8964)은 '횡단보도가 설치된 도로 인근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자에게 횡단보도의 설치에 관해 특정한 권리나 법령에 의해 보호되는 이익이 부여돼있다고 말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며 "종합해 보건데, 횡단보도와 지하도 간 거리 제한 규정에 위배되고 지하상가 상권과 관련돼있어 현실적으로 횡단보도 설치가 어렵다는 것 모두 (장애인) 차별행위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치는 강제사항이 아니라 권고이기 때문에 불이행해도 별도의 처벌 규정 등이 존재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흠이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천지부 윤대기 대변인은 "인천지방경찰청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가기관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손해 배상 등을 청구하는 게 가능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며 "나아가 불이행하고 있는 경찰청장에 대한 징계를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의 이번 지하상가 위 횡단보도 설치 권고는 비슷한 상황인 부평역 북광장 일대 횡단보도 설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부평역 일대 역시 지하상가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혀 횡단보도를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지하상가 #횡단보도 #장애인이동권 #인천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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