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하는 인간, 20대에겐 먼나라 이야기

[서평]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등록 2014.01.25 14:49수정 2014.01.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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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는 요한 하위징하가 쓴 책이다. 하위징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놀이'에서 연원한다고 주장하며 책에서 그것을 증명해 나간다. 하위징하는 놀이를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동 혹은 몰입 행위라고 정의한다. 또한 놀이에는 반드시 규칙이 있고, 규칙의 적용은 예외가 없어야 하며 엄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위징하가 말하는 '호모 루덴스'의 삶이 오늘의 20대에게 과연 적용될 수 있을까. 판단하기에, 오늘의 20대에게 놀이하는 인간의 삶이란 하늘너머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하위징하가 정의한 놀이란 개념이 오늘의 20대에게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의적인 삶을 사는 오늘의 20대

 <호모 루덴스> 표지
<호모 루덴스> 표지연암서가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이 버스를 탈 때면 종종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어르신들이 타면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다는 강박이다. 엄연히 노약자석이 지정돼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노약자석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어르신이 버스에 타면 마음 속에서 '비켜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란 갈등이 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강박은 바로 '규율권력'에 의해 생겨난다. 웃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사회적 환경이 가지는 권력 때문에 동등한 비용을 지불하고 먼저 버스를 탔음에도 자기검열을 통해서 어르신에게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오늘의 20대가 놀이하는 인간의 삶을 살 수 없는 것도 위에 언급한 사례와 같은 매커니즘이다. 앞서 말했듯이 하위징하는 놀이를 자발적 행동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20대는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마음 때문에 토익을 공부하고 스펙을 쌓는 것이다. 20대들이 자신의 생각과 반하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규율권력, 즉 시스템 때문이다.

푸코는 이런 규율권력이 가능한 것은 바로 '감시와 처벌' 때문이라고 말한다. 감시라는 개념은 시선의 비대칭성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성세대는 위에서 20대를 내려다보고 있지만 20대는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20대는 대기업에 들어가고자 하지만 대기업의 인사권은 기성세대가 쥐고 있는 것과 같다.


기성세대는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벗어난 20대에게 탈락이라는 '처벌'을 가한다. 탈락이라는 처벌을 받은 20대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20대는 계속해서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굴레에 메여 같은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처럼 20대는 하위징하가 정의한 놀이처럼 자발적인 행동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스펙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짜놓은 규율권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다. 20대에 속하는 이들은 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규율권력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20대에게 하위징하가 말하는 놀이하는 인간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공정한 규칙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

또한 하위징하는 모든 놀이는 규칙을 가지고 있고, 놀이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넓게 보면 20대를 비롯한 모든 우리나라 국민들이 한국 사회라는 놀이판에 가담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체계와 자연법, 관습법이라는 각종 규칙이 존재한다. 이 모든 규칙은 한국 사회에 속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이 규칙을 파괴하는 '놀이 파괴자'들이 존재한다. 바로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소위 1%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개천에서 용났다'란 속담이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종종 통용됐던 말이다. 하지만 20대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전혀 설득력 없는 말이 됐다. 20대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부모를 가진 청년들에게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 됐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란 한국 사회의 절대 규칙을 깨버린 것이다.

몇 년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격요건에 미달됐음에도 자신의 딸을 외교부에 특별 채용한 사실이 드러나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이 장관의 딸은 한국 사회란 놀이가 가지고 있는 규칙을 어겼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놀이의 규칙을 어긴 것이 발각됐고, 장관의 딸이 규칙에 의해 처벌받았지만 이는 빙산에 일각일 뿐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또한 고액 과외를 받거나 국외로 유학을 가거나 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놀이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이런 행위들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한국 사회의 규칙이 무너지는 또 다른 경우도 있다. 돈을 가지지 못해 정상적인 규칙을 적용받지 못하거나 스스로 놀이하기를 포기하는 경우다. 20대의 대부분이 이런 상황에 속해 있다. 20대는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 때문에 대학을 다니면서 알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대학 등록금을 부모가 지원해주는 청년들보다 적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적으면 자연히 성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놀이의 경쟁에서는 도태된다. 또한 돈이 없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포기해 버린다.

놀이하는 인간이 살기엔 아직 요원한 한국 사회

하위징하는 "무슨 이유에서든 게임을 망치는 자는 마법의 세계를 망치는 자이고, 따라서 비겁한 자이며 축출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란 놀이를 파괴하는 이 1%의 사람들은 축출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규칙을 지키면서 승리하려고 아등바등하는 20대를 무너뜨리고 손쉽게 승리를 쟁취한다.

놀이의 규칙을 깨버린 그들이 놀이에서 축출당해야 하지만 도리어 20대가 놀이에서 축출 당한다. 규칙이 무너져버린 한국 사회에서 20대가 놀이하는 인간의 삶을 살기란 요원하다. 아니, 규칙이 무너진 놀이는 놀이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놀이하는 인간의 삶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하위징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놀이에서 연원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증명했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이 놀이에서 연원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다시 놀이로 환원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돈과 권력에 의해 놀이는 손쉽게 파괴된다. 현재의 20대가 놀이의 성립을 방해하는 사회적 환경이나 돈, 그리고 권력을 축출해낼 수 있다면 놀이하는 인간의 살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20대를 보면 그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현 한국 사회에서는 20대가 호모 루덴스의 삶을 살기란 아직 요원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http://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개정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18


#연암서가 #호모루덴스 #요한하위징아 #놀이하는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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