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차라리 '삼성대학교'를 세워라

[주장] 삼성의 대학총장추천제, 폐지해야 한다

등록 2014.01.27 19:30수정 2014.01.2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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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헛소리는 옛 이야기다. 지금은 '직업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하고, 대학교육도 국가생산성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10여 년 전인 2004년 11월 4일, 두산중공업 회장으로 현재 중앙대학교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박용성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서울대 '관악초청강좌'에 강사로 나서 한 말이다. 그날 강연에서 박 회장은 "아무리 서울대 졸업생이라도 기업들은 바닥부터 다시 교육시키고 있다, 4년을 허송세월로 사회가 쓸 데 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2000년대 대한민국 대학의 위상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이 있을까 생각한다.

대학이 기업에 송족... 어제오늘 일 아니지만

사실 대학이 기업(시장)에 종속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지간한 규모의 대학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체 이름이 들어간 건물 한두 채쯤 있는 건 예사다. 솔직히 대학 내 건물에 기업명을 집어넣는 것만큼 효율적인 홍보 전략도 없다. 대학이 망하지 않는 한 건물이 쓰러질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대학도 공짜로(?) 건물을 얻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기업에게 인정 받는 '직업교육소'가 되기 위해 치는 몸부림은 뜨겁다. 전통적(?)으로 경상 계열 학과는 취업에 강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대다수 대학에서 경상 계열인 경제학과나 경영학과의 입학 정원이 타 학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이들은 과거에는 상경대학이나 정경대학과 같은 단과대학의 한 학과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경영대학이라는 독자적인 단과대학 타이틀로 학생들을 받고 있는 대학들이 많이 생겼다. 포털 다음(Daum)에 들어가 '경영대학'이라는 단어로 자료를 검색해봤다.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속칭)를 포함해 서울지역의 주요 대학들이 화면에 주르륵 떴다. 기업과 시장이 경영학과 출신을 우대하니 학교가 이들 학과의 정원을 증원하고 예산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삼성의 해명, 설득력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이 자사 신입사원 채용에 '총장추천제'를 도입한다는 놀라운 뉴스를 발표했다. 이미 상당 부분 '직업교육소'가 돼버린 대학들로선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처럼 떠도는 곳이 우리나라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을 "불편하면 법을 바꿔서라도, 필요하다면 국회의원 300명을 모두 매수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미디어오늘> 2014년 1월 21일 자 기사: '이재용' 왕국은 올까?, "국회의원 300명 다 매수해서라도…")할 수 있는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3세 구도 물밑 작업에 분주한 삼성을 평가하면서 나온 말이라고 하지만, 삼성의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실감 나게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을'인 대학들로서는 '슈퍼 갑' 삼성에 더욱 종속되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으니 여간 큰일이 아니다.


그래도 마뜩잖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체 115명(최대인 성균관대의 할당 인원 수)과 10명(최소인 목포대·경남대의 할당 인원 수)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서·연·고 서·성·한·중' 식의 '인터넷표' 대학 서열표에 따를 때, 고작(?) 5위에 불과한 성균관대가 자칭·타칭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의 할당 인원보다 5명이나 많은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대학서열화니 대학간·지역간 차별 대우니 하는 볼멘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총장 추천을 받은 학생은 삼성 입사시험의 서류전형만 통과하게 된다고 한다. 삼성 자체적으로 치르는 직무 적성 필기 시험(SSAT)이나 면접전형은 일반 지원자들과 똑같이 치른다니 별다른 혜택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서류전형 '무사 패스'만도 어디인가. '지잡대'인 목포대·경남대 출신 학생(목포대·경남대 출신자들에게는 용서를 구한다, 냉소적인 풍자를 위한 것이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들이 삼성의 서류 전형에 통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말이다.

이번에 삼성은 최근 몇 년 동안의 대학별 입사자 수와 대학 규모·특성 등을 고려해 할당 인원을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알 수 없다. 성균관대 재단이 삼성그룹과 관련돼 있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더라도 일단은 삼성의 '해명'을 받아들여 보자. 이번 인원 할당에 성균관대만의 규모와 특성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이를 좀 더 실증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성균관대 누리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해 성균관대의 수시·정시 모집요강에서 경상 계열 학과(전공)의 정원을 살펴봤다. 경영학·글로벌리더학·글로벌경제학·글로벌경영학 등 네 개 모집 계열을 모두 합쳐 보니 총 정원의 16% 정도였다. 이들 전공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하고 있는 학생들까지 합치면 그 비율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재벌 회사가 재단에 관여하고 있는 학교답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재단 이사회에서 동고동락하는 한 '집안'에다, 시장의 요구를 충직하게 반영하는 정원 구성까지 갖추고 있으니 삼성이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볼멘 소리들이 심상치 않다. 삼성의 대학별 총장추천제 할당 인원 관련 검색어가 포털 사이트의 상위 검색 순위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보도는 조그마한 사례일 뿐이다.

삼성으로서는 무엇보다 각 대학들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소심하고 겁 많은 대학은 이미 스스로 시장의 노예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 줏대 없는 대학들이 거대기업인 삼성의 이번 조치를 거부한다며 공동전선을 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대학이 한두 곳이라도 나온다면 삼성으로서는 그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날 선 언어로 삼성을 호되게 비난할 테고, 그에 따라 여론에 미치는 악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겠기 때문이다.

삼성, 차라리 대학을 세우라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차라리 삼성이 대학을 새로 하나 세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대학서열화니 지역 차별이니 하는 말들이 많지만 우리 사회가 그에 따라 작동된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더군다나 삼성은 입학 정원의 70%를 자사의 임직원 자녀로 뽑는 자율형 사립고인 충남삼성고(올해 3월에 정식 개교한다)를 준비한 경험도 있지 않은가. 충남삼성고를 비롯한 '귀족' 고등학교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소수 정예의 학생들을 뽑아 확실하게 시장친화적인 '인재'로 교육하는 '삼성대학교'를 세워 연계성을 더하면 경제적인 효율성 측면에서도 훌륭한 전략이 아닐까. 

글 머리에서 소개한 박용성 회장은 예의 강연에서 "'기업을 원수로 아는' 국민들의 바르지 못한 기업관과 정부의 지나친 규제가 우리 기업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큰 원인"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사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무지렁이 국민들이 '고상한' 거대기업의 미묘한 세계를 어찌 다 알겠는가.

그런 점에서 박 회장의 하소연도 그렇지만, 삼성의 이번 조치도 모두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대학서열화니 지역 차별이니 하는 소리들도 무지렁이 국민들이 기업의 타는 속도 모르고 지껄이는 말일 뿐이다. 삼성이 없어지면 휘청거릴 게 분명한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삼성의 진심 어린 속내를 이해하고 그들이 통 크게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차분하게 지켜볼 일이다. 여하튼 대한민국의 한 무지렁이 국민으로서 삼성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삼성 총장추천제 #삼성공화국 #충남삼성고 #'삼성대학교 #'직업교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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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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