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한 어르신을 막아서고 있다.
김어진
끝이 없어 보이는 싸움이었지만,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산을 향해 올랐다.
경찰들은 일반 시민으로 보이는 이들을 막아섰지만, 사진기자는 막지 않았다. 아니, 막기는 하지만 일반인들보다는 덜한 편이었다. 단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막지 않는다는 점이 웃기긴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경찰들의 제지를 받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홀로 앞서가다 보니 결국 경찰 네 명이 달라붙어 길을 막아섰다.
오랜 기자생활로 현장경험이 풍부한 기자분을 따라다니면 문제없이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분 뒤를 따라가자 능선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들은 능선 위에서도 방패를 들고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산중턱에서 가로막혔고 일부가 능선까지 올라왔지만 그 숫자는 너무 적었다. 수적으로 훨씬 우세해지자 경찰들이 여러 명씩 달라붙어 길을 막아섰다.
경찰들로도 모자라 공사 현장에는 철책까지 이중으로 쳐져 있었다. 기자들도 더는 못 들어간다며 사복경찰들이 가로막았으나 기자들은 틈을 봐 철책 가까이 다가갔다.
"여기 미끄러워서 안 됩니다. 당장 나오세요."한 나이 많은 사복경찰이 나를 끌어당겼다. 흙길 위에 서 있는 나와 기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네, 참 미끄럽네요. 이게 뭐가 위험하다고 그러세요.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게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고철덩어리를 보겠다는데 왜 이렇게들 길을 막으시는 건지 모르겠다. 사복경찰은 잡고 있던 내 팔을 놓았고 나는 경찰들이 그토록 감추려고 애썼던 97번 송전탑을 마주할 수 있었다.
"별 것도 없고만…."

▲무엇을 지키고 계세요? 경찰의 모습 뒤로 건설 중인 97번 송전탑 모습이 보인다.
김어진

▲. 건설현장을 지키는 경찰들 뒤로 97번 송전탑이 보인다.
김어진
어느 길로 오신 걸까. 어느 틈에 올라오신 밀양 할배들도 경찰에 둘러싸이셨다.
"내 어릴 때부터 오르던 우리 뒷산을 왜 못 오르게 하냐!"힘겹게 나무를 부둥켜 안고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들은 침묵으로 답했다. 밀양 할매들도 올라오셨다. 힘들게 올라왔건만 경찰들에 둘러싸이자 할머니는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다.
"니 경찰 소속 아이가? 카메라 치우라, 찍지마라!"나뭇가지로 내 카메라 렌즈를 쿡쿡 찌르며 소리를 지르셨다.
"아이고, 할매 저분은 기자입니다."뒤에 있던 경찰이 할머님을 말리셨다.
"송전탑만 보고 갈게요"... 경찰은 몸으로 행동했다

▲.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경찰들의 제지를 받으면서도 힘겹게 나무를 움켜잡고 있다.
김어진
"저, 저기 송전탑만 보고 갈게요. 네? 아니면 같이 가요. 손잡고 같이 갔다 오면 되잖아요." 능선까지 올라온 한 여성 참가자도 여경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는 여경들에게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었지만, 여경들도 다른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뭐가 문제된다고 그래요. 손에 손 잡고 나란히 갔다 오세요. 되게 융통성 없으시다. 나는 갔다 왔는데 왜 이분은 안 된다는 거예요?"옆에서 지켜보다 못 한 나도 거들었으나 끝까지 초지일관이다. 사람들은 이제 길도 막혔고 배도 고프다.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이 한마디로 오늘의 공사 저지 산행은 끝났다. 하산이다. 내려오는 길에 뒤늦게야 산중턱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인 곳을 통과하려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이 험한데 다치시진 않았는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여태까지 언론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달리 어르신이 지나가려고 하자 경찰들은 양 쪽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지나가자마자 몸싸움은 다시 이어졌다.
"저러다 다치면 안 되는데…. 어떡하나."어르신들은 사람들이 걱정돼 더는 산을 오르지 못하셨다.
더 많은 이의 관심이 필요하다

▲사진을 찍고있는 기자들. 고 유한숙씨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어진

▲송전탑. 동화전 마을주민센터 뒤로 96번 송전탑의 모습이 보인다.
김어진
마을을 떠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가 있는 다리 아래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행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기자회견을 가능한 짧게 끝냈다.
몇몇 참가자들이 옷에 '경찰'(Jjap Sae)과 '한전'을 붙이고 송전탑을 의미하는 '박'을 지키고, 밀양 어르신들이 오재미를 던져 박을 터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것으로 밀양 어르신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랐다.
희망버스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경찰과의 격한 충돌이 있었음에도 참가자들은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경찰들이 약하게 제지한 듯했다. 되레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떠나고 난 뒤 밀양 어르신들을 향한 진압을 더 '강하게' 할까 봐 걱정이었다. <밀양전>을 찍은 박배기 다큐멘터리 감독과 밀양 어르신들은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좋으니 평소에도 한 사람이라도 찾아와서 함께 있어주면 정말로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결코 밀양시 소수 주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전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국내 문제에 관심을 두고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탰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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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경찰이 도배... 내가 본 밀양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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