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쿠데타가 없앤 교육자치, 다시 죽이나"

[인터뷰] '교육의원제 지키기' 나선 최홍이 교육의원총회 의장

등록 2014.02.06 10:34수정 2014.02.0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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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홍이 한국교육의원총회 의장.

최홍이 한국교육의원총회 의장. ⓒ 윤근혁


"교육 자치를 살려주세요. 왜 제가 머리를 깎고 여기 왔는지 새겨봐 주세요."

지난 3일 오후 1시 20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민주당 의원총회장 입구. 머리카락을 자른 최홍이 한국교육의원총회 의장(72·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이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최 의장을 잠깐 쳐다본 김 대표는 손사래를 치며 "지금 바빠서…."란 말을 남긴 뒤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교육자치 살려 달라" 요청에 김한길 "바쁘다"

"여야 의원들이 한통속이 되어 교육의원제도를 없애려고 하고 있어요. 교육의원 제도가 없어지면 교육감 직선도 다음번 선거에서는 사라질 것이 뻔합니다. 내 대에서 교육자치의 대가 끊기는 것을 손 놓고 바라만 볼 수는 없습니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 2010년 교육의원 제도와 교육감 후보의 교육 경력 요건을 없애는 내용을 뼈대로 한 이른바 '교육의원 일몰제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초 교육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단체들이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자 여야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치개혁특위)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오후 정치개혁특위는 제5차 전체회의를 열고 교육감 후보의 교육경력 요건을 3년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교육의원제 일몰 문제에 대한 결정은 뒤로 미뤘다.

4년째 교육의원총회 의장을 맡고 있는 최 의장은 "교육의원 제도를 '일몰'하는 것은 피땀으로 만들어온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교육경력이 있는 전국 17개 시도 교육의원들의 모임인 교육의원총회에는 현재 78명의 교육의원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최 의장은 서울시의회 앞뜰에서 머리카락을 모두 밀었다. 70 평생 동안 삭발은 처음이었다. 부의장인 명노희 충남도의회 교육의원과 사무총장인 최보선 서울시의회 교육의원도 머리털을 함께 깎았다.

이 자리에서 최 의장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은 머리를 깎았다.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뜻"이라면서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속 마음을 털어놨다. 오는 6일부터 최 의장은 전교조,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대표들이 벌이는 단식투쟁도 함께 할 예정이다.


33년간 초등학교와 중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최 의장은 전교조 서울지부 지도자문위원과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자문도 역임했다. 그는 현재 서울시의회 3선 교육의원이다. 최 의장은 왜 교육자치제 지키기에 온몸을 던졌는지, 그 이유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최 의장과 인터뷰는 지난 3일 오후 3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실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교육의원 일몰, 역사적 죄 짓는 것"

a  최홍이 한국교육의원총회 의장.

최홍이 한국교육의원총회 의장. ⓒ 윤근혁


- 한 겨울에 머리를 밀었으니 춥겠다. 이전에도 삭발한 적이 있는가?
"교육자치 살리려고 하는 것이니까 춥지 않다. 어떤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머리털을 깎기는 평생에 처음이다. 내 대에서 교육자치의 대가 끊기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왜 머리털을 깎았나?
"교육의원이 없어져 교육자치제가 사라지면 교육계에 역사적 죄를 짓는 것이다. 면면이 이어져온 교육자치제의 대가 끊기는 것이다. 요즘엔 잠이 안 온다. 전국에 있는 78명의 교육의원 대표로서 머리털이라도 깎아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 시의원이 있으니까 교육의원은 없앨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아니다. 교육의원을 없애는 것은 24년간 지속된 교육자치를 없애는 짓이다. 교육의원 없는 교육감은 생각할 수 없다. 대통령은 있는데 국회가 없는 것과 뭐가 다른가? 교육의원이 사라지면 교육자치도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 어렵던 1, 2 공화국 때도 교육의원을 뽑았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뒤 1961년 시도교육위를 없애 버렸다. 그 뒤 독재정부를 거쳐 1991년부터 시·도교육위가 심의의결기구로 부활했다. 교육의원을 뽑는 교육자치는 6월 민주항쟁이 얻어낸 민주주의의 열매다."

- 그런데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들 가운데 교육경력을 갖지 않은 이들도 많다.
"시·도의회는 사정이 다르다. 국회의원들은 보좌진이 10명이다. 그런데 시도의회 의원들은 보좌진이 한 명도 없다. 교육의원의 경우 교수학습지도, 교육평가, 교육과정, 교육통계, 교육재정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유·초·중·고 근무 경력을 가진 교육의원이 꼭 필요한 이유다."

- 여야가 시·도교육감 후보의 교육경력은 부활하기로 했는데.
"교육감 직선제를 유지하면서 교육의원만 없앤다는 것은 극단적인 모순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교육감을 임명할지언정 교육의원은 직선을 통한 교육자치로 견제와 균형을 해야 교육이 바로 선다. 교육의원이 교육자치의 핵심이다. 더 나아가 이번에 교육의원제도가 일몰되면 교육감 선거도 다음부터는 없어질 것이다. '교육감 임명제'라는 집권당의 노림수에 발맞추고 있는 민주당이 이런 점을 깨달아야 한다."

- 왜 여야 의원들이 교육의원 일몰제 폐지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보나?
"시·도의원들이 대부분 국회의원 핵심 측근들이다. 그들이 교육위원회 내부를 들여다 보니까 지역구 사업에 이보다 더 좋은 텃밭이 없다는 거다. 탐식성의 결과다. 국회의원들은 교육적인 이유는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 욕심을 앞세우고 있다고 본다. 교육의원들이 없어지면 유·초·중·고는 정치권의 텃밭이며 영지(영주가 거느리는 땅)로 전락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꽃 피운 교육자치, 그런데 민주당은..."

a  "바쁘다"면서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

"바쁘다"면서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 ⓒ 윤근혁


- 아까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이야기를 듣지 않고 그냥 가버렸는데….
"사실 교육자치제는 유신 쿠데타 세력이 없앤 것을 민주주의 세력이 되살려낸 제도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교육자치도 활성화된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교육의원 일몰제 폐지에 소극적이라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어도 크게 있다."

- 그렇지만 교육의원들 면면을 보면 '퇴직 교장들의 잔칫상'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그걸 예방하기 위해 교직원의 기본권을 달라는 것이다. 현재 78명의 교육의원 가운데 교육혁신운동을 해온 분들이 13명이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이 교육의원으로 많이 진출해야 하는데 이를 잘못된 법률이 가로막고 있다. 교사가 교육의원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교육자치는 더 발전할 것이다. 핀란드는 국회의원 가운데 교사 출신이 30%다. 국회의원들이 말로는 선진화라고 하면서 이런 교직원의 기본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 교육의원 일몰제 폐지를 위해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당장 오는 6일부터 교육시민단체 대표들이 국회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일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교육의원총회도 적극 결합할 것이다. 국회가 2월 중순까지 교육의원 일몰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전국 교육의원들이 모두 사퇴할 것이다.

현재 78명의 교육의원 가운데 사퇴서를 낸 사람은 60여 명이다. 유권자가 뽑아주신 교육의원 임기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선택이지만, 교육의원들로선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다. 교육계는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작은 이의도 없이 우리와 뜻을 함께 하고 있다. 국민들이 성원해 주셨으면 한다."

a  시도 교육의원들이 낸 사퇴서.

시도 교육의원들이 낸 사퇴서. ⓒ 윤근혁


- 끝으로 최 의장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이기 때문에 묻는다. 서울시교육청이 사상 최초로 예산안에 대해 재의를 요청했는데.
"문용린 교육감이 재의를 요구한 이유는 오는 6월 선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수 아이콘으로서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의원조차도 '몇  푼 안 되는 돈을 갖고 왜 혼란을 일으키느냐'고 비판할 정도였다.

문제를 삼은 것은 전체 예산의 0.6%뿐이었다. 혁신학교 예산 중 일부와 비정규직 명절 수당 10만 원씩 올린 것을 트집 잡았다. 이것은 교육적 요구가 아니라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한 목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2월 중순쯤에 내려고 한다.
"그것은 의미 없는 행정력 낭비다. 의안 상정은 위원장 고유권한인데 나는 개정안을 교육위원회에 상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이 기존 학생인권조례를 어겼기 때문이다. 개정안을 입안할 때 학생인권위와 학생참여단의 논의 절차를 거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이 또한 보수 진영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인 행동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교육의원 일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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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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