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사의 역대 최대 개인정보 유출사건으로 국민들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일단 은행에 가서 체크카드부터 만들었다. 하지만 신용카드와 이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미 신용카드로 저질러 놓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남은 월급만 가지고 한 달을 보내는 것부터가 굉장히 힘들었다.
체크카드에 돈을 넣어 놓는 것도 습관이 안 돼서 쓰다 보면 잔액이 부족하기 일쑤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체크카드를 내미는데 "한도 초과입니다"라는 종업원의 말이 그렇게 무안할 수가 없었다. 잠드는 순간까지도 한도 초과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체크카드에 잔액이 없어서 신용카드를 쓰고, 또 잔액이 부족할까봐 신용카드를 썼다. 신용카드 개수는 줄어들었지만 결제금액은 어느 순간 원상 복귀 되었다. 비싼 물건은 하나도 사지 않았고 나름 아껴쓰려고 했는데도 말이다. 카드 명세서를 다시 들여다봐도 결국엔 다 쓸 곳에 썼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저 카드 값이 많이 나오면 몇 달 긴장하고 노력했다가 그리고 다시 풀어졌다가 또 화들짝 놀라서 좀 긴장하고 하는 생활이 2년 이상 반복되었다. 어렵다는 취업도 하고, 정말 독한 사람만 성공한다는 담배도 끊어봤지만 신용카드를 없애는 것은 그보다도 몇 배는 어려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별다른 대책 없이 신용카드를 일단 잘라버렸다. 통장에 돈이 없으니 불입하고 있던 보험을 하나 해지해서 해약환급금으로 한 달을 버텼다. 그리고도 할부가 끝날 때까지 석 달 정도를 바짝 아끼며 살아야 했다.
하고보니 담배 끊는 것과 똑같더라. 담배 끊을 때도 하루에 한 갑 피던 걸 조금씩 줄여서 끊으려 할 때는 늘 실패했었다. 끊으려면 한 번에 확 끊어야 끊어졌다. 카드도 조금씩 줄여서 없애는 것보다 한 번에 없애는 것이 훨씬 쉬웠다. 담배 끊을 때 금단현상이 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신용카드도 마찬가지다.
쓸 거 다 써가면서 아무런 불편 없이 신용카드를 없애려 하면 절대 안 없어진다. 한두 달 바짝 불편함을 견뎌내면 그 다음부터는 무척 편해진다. 얼마나 편해지냐고? 인생에서 결제일이 사라지는 거다. 월급날이 되어도 지난 달에 받은 월급이 남아 있다. 결제금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으니 월급날이 즐거워진다. 단지 카드만 잘랐을 뿐인데 말이다.
신용카드 사라진 이후 내 통장... 돈이 남아 있더라 물론 한동안은 카드가 없어서 불안했다. 노트북을 바꾼다거나 정장을 새로 사야할 때처럼 상대적으로 큰 돈이 들어갈 때 '다시 신용카드를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신용카드가 사라진 이후 내 통장에는 늘 돈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돈 쓸 일이라는 건 알고보면 굉장히 사소한 일이었다.
마트에서 물건을 샀는데 돈이 모자를 때는 그냥 몇 가지 빼면 됐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다 샀을 것이다. 알고보면 돈이 없는데도 자꾸 돈을 쓰는 습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사방 천지가 은행이고 내 통장에는 늘 돈이 들어있기 때문에 정말 써야하는 일이라면 그냥 은행 가서 돈 뽑아오면 그만이다.
이후로 6개월 만기 적금을 자주 만든다. 그래야 중간 중간 목돈 지출이 생길 때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3만 원짜리, 5만 원짜리 적금이 만기되면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똑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카드 할부로 살 때보다 저축을 통해서 살 때가 만족도가 훨씬 높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도 부모님이 그냥 쉽게 사 준 물건보다는 내가 노력해서 산 물건이 훨씬 더 애착이 갔었다.
신용카드로 인해 너무 쉽게 손에 넣고 카드 결제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물건에 대한 애착도 금방 없어져 불필요한 물건들을 끊임없이 사 모으고 있음을 깨달았다. 알고 보면 신용카드의 눈꼽만한 할인혜택의 대가는 열심히 일한 대가를 받는 월급날의 즐거움과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의 즐거움과 애착이었던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신용카드 없으면 불편하지 않나요?"난 되묻는다.
"돈 편하게 버세요?"알고보면 기껏 힘들게 벌어놓고 쓸 때는 너무 편하게 써서 돈이 안 모이는 것이다. 돈은 불편하게 쓰는 것이 맞다. 게다가 그 불편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훨씬 더 자유롭고 즐겁게 돈을 쓸 수 있게 된다. 신용카드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가위로 자르고 전화로 해지 신청하면 된다. 쉬운 걸 어렵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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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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