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해도 "앙코르"... 이상한 아저씨 밴드

[임재춘의 농성일기⑤ - 2013년 8월 23일] 콜밴과 카혼에 관하여

등록 2014.02.11 14:27수정 2014.02.14 11:2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a


a


a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음악을 몰랐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기타 회사 다니면서 소리를 만들기는 했지만, 낼 줄도 들을 줄도 몰랐습니다. 투쟁을 하면서도 가수들이 노래를 불러주면 고맙기만 했을 뿐입니다.


콜밴을 만드는 과정은 문화연대와 상황을 공유하면서입니다. <꿈의 공장>(2010년작/김성균) 첫 상영회 자리(2011년)에서 '킹스터 루디스카' 밴드가 제안하였습니다. 밴드 구성은 기타 2개, 베이스 1개, 타악기로 카혼 1대였습니다. 카혼이란 악기는 생긴 걸로 봐서는 악기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 악기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카혼의 중간은 큰북소리, 윗부분은 드럼(작은북), 짝짝이 소리의 리듬악기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카혼의 그림은 이윤엽 판화가님이 그려주셨습니다. 첫 연주는 문화노동자 연영석의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다할 줄 아나>였습니다. 한 달 연습하여 첫 무대에 오르는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안 틀리면 되지….' 긴장 때문에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콜밴의 멤버는 이미 중년이다 보니 노래의 다양성을 추구하지 못하고 우리 세대의 노래밖에 부르지 못합니다. 70·80세대의 노래로 제한적입니다. 그렇지만 콜밴을 하면서 투쟁 사업장을 돌아다니고, 투쟁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카혼은 리듬악기이다 보니 박자 맞추기가 너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4박자를 똑같은 리듬으로 쳐야 하는데 나 같은 초보자는 리듬감을 찾는 게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박자가 늦어지고 빨라지고 엉망진창이 되고, 내가 틀리면 다른 멤버의 리듬감도 흔들려 멤버들이 매우 힘들어합니다.

두 손으로 할 때와 한 손으로 할 때가 다른데, 리듬감이 없을 때는 진짜 내 손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박자감이 생겨 "쿵치따치"가 그렇게 힘이 든 줄 모르고 치기도 했지만, 카혼이 중요한지도 몰랐습니다. 박자가 안 맞고 리듬감이 틀리면 나 때문에 틀렸다고 (다른 멤버가) 눈초리를 줄 때나 핀잔을 할 때는 짜증나고, '이걸 꼭 하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카혼의 중요성을 알고 공연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많은 관중 앞에서 안 틀리고 했을 때는 '이래서 밴드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 콜밴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생활은 리듬의 연속입니다. 무의식 중에도 노래 나올 때도 박자와 리듬을 떠올립니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두드리기도 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어려운 곡도 연주하고 싶고, 강약 조절을 잘 하는 카온 연주자가 되고 꼭 복직하여 안정된 직장에서 멋진 연주를 하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2013년 8월 23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농성장에 생기 불어넣는 '위대한' 선순환

a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안에서 농성할 때. 콜밴 연습의 흔적인 기타와 악보. ⓒ 최규화


기타와 보컬의 이인근, 또 다른 기타의 장석천, 베이스의 김경봉, 그리고 카혼의 임재춘. '콜밴'이라는 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밴드는 2011년 11월에 만들어져 그해 12월 28일 홍대 앞 클럽 '빵'에서 첫 공연을 선보인 이후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다. 소셜 펀딩을 통해 악기구입비를 마련했고,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지지의 마음은 '콜밴' 결성에 응원이 되었다.

작년 4월부터 콜밴은 매주 월요일 저녁 8시부터 연습을 한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클럽 빵에서 선보일 신곡을 첫째 주 월요일에 정하고, 그 뒤 3주 동안 연습해서 빵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 제의를 다 소화하지 못해 거절하느라 멤버들이 송구스러워 하는 모습을 간혹 보기도 한다.

이들은 설명이 필요 없는 뻣뻣한 중년들이다. 당연히 연주는 그리 훌륭한 편이 아니다. 실력은 늘어왔지만, 여전히 무대에서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콜밴의 상징(?)이다. 그래도 관객들은 "앙코르"로 화답하며 관객과 공연자들 사이의 독특한 유대관계를 보여준다.

작년 4~6월은 콜밴의 위기였다. 연습 시간은 대화 없이 거칠었다. 아이돌 그룹에서나 나온다는 소위 '멤버 불화설'이 솔솔 피어날 무렵이었다. 2월 1일 공장 안에서 농성하던 노동자들이 쫓겨난 이후, 공장 앞에 새로 만든 천막 농성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농성장은 한산해지는 날이 많았다. 매일 진행되던 촛불문화제를 주 2회로 줄였지만 빈자리는 늘어났다.

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곳곳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더욱 자주 벌어지고 있었다. 대한문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콜밴의 멤버들이 연행되기도 했다. 콜밴 운영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경우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흥이 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연습 도중 코드를 잘못 잡거나, 박자를 놓치면 과도한 핀잔들이 오고 갔다. 연습이 중간에 끊기고 애꿎은 담배연기가 자욱해지도록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곤 했다. 작년 4월부터 콜밴의 연습을 돕기 시작한 '옛정서 발굴밴드, 푼돈들'은 이 시기를 '대략 난감'의 시기로 기억한다.

하지만 유랑문화제가 탄력을 받아가고, 마침 해고노동자들이 출연하는 연극 <구일만 햄릿>이 준비에 들어갔다. 여러 뮤지션들과 '콜트 불바다'라는 거리공연을 하면서, 서로를 할퀴는 연습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콜밴의 연습시간은 차츰 평화(?)로워져 갔다.

돌아보니 콜밴은, 또 다른 무대를 만들어내며 위기를 극복해왔다. 해고자들은 농성이 싫어 도망가려다가도 콜밴 일정 때문에 마음을 바꿔 되돌아온다. 콜밴이 농성으로 지친 일상에 활력을 주기도 하고, 끈기를 부여한다. 시민들의 관심이 콜밴에게 격려가 되고, 콜밴이 농성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 콜밴이 농성의 딜레마가 되기도 하다 콜밴에 대한 인기를 확인하여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선순환.

감히 나는 이 선순환 앞에 또 다른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위대한"이라는. 음치와 박치는 있어도 음악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이들만큼 절절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또 있을까.
#콜트콜텍 #정리해고

AD

AD

AD

인기기사

  1. 1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2. 2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3. 3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4. 4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5. 5 [단독] 김건희 이름 뺀 YTN 부장 "힘있는 쪽 표적 될 필요없어"
연도별 콘텐츠 보기